'왜 한 번도 쉬시지 않으시는 걸까?'
'아버지는 천하장사가 틀림없어.'
삯군을 사서 농사를 짓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을 정도로 빈농이셨던 아버님은
오물과 섞여 무겁기만 한 거름이나 볏단을 잔뜩 지게에 싣고
야트막한 산을 두어 개 넘어야 하는 고단하고 기나긴 길을
대체로 쉬시는 법이 없었다.
당시 우리집 논밭이라고 해 봤자
자투리 땅이 여기저기 멀찌감치도 흩어져 있어
한 곳의 잡초를 뽑고 다른 밭의 잡초를 뽑으러
이동하는 일조차 참으로 고역이었다.
아버님의 무거운 지게에 비해 형편없이 가볍다고 할
괭이 한 자루와 낫 한 자루, 그리고 호미를 어찌어찌 웅크려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뿌리고 조금 남은 비료 포대를 움켜쥔 채
땀냄새 물씬 풍기는 아버님의 무거운 걸음을 따르노라면
괭이 등속을 둘러멘 어깨가 아파오고
비료포대를 움켜쥔 손아귀가 저려와
괭이를 땅에 끌어보기도 하고 비료포대를
아버님 몰래 땅에 살짝 내려놓기도 해 보면서
허둥지둥 따라가기 바빠
무거운 아버님의 걸음을 살피기는 커녕
쉬지 않으시는 아버님을 꽤나 원망했었다.
그러나 난 미련하게도 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그런 무거운 걸음이 6남매를 거느리신 식구 여덟의 가장이시자
삯군을 살 형편이 되지 못했던 아버님의 절박함이었단 사실을 알았다.
대저 농사일이라는 게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밭에 잡초가 무성해지고 때아닌 늦가을비를 맞은 볏단은
차일피일 지체할 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농기계들이 워낙 좋아졌지만
소달구지 부리는 집이 부유한 집이었들 정도로
열악하던 시절인지라 모든 일을 아버님의 손발로
모두 감당하셔야 했으니 그 절박함이 오죽하셨으랴.
두어 달 잔차질을 않다가
모처럼 산에 오르자니 죽을 맛이다.
'여기는 예전에 쉬지 않고 올라가던 코스지?'
누가 법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니건만
스스로 올가미를 만들어 놓고 생땀을 쏟으며 페달을 밟는다.
처음에 오를 때야 상당한 난이도로 생각되어 오를 꿈도 못 꾸고
서너 번 끌바를 해서 오르던 곳이었지만
자주 오르다 보니 익숙해진 곳인데
두 달여 잔차질을 쉰 인간이 부실해진 엔진은
전혀 고려에 넣지 않고 쉬지 않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채 비몽사몽 페달을 밟자니
사위가 노랗게 보이고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온다.
더구나 60kg가 나가야 정상인 체중이
72kg가 나가니(풀민님 지둘려..엉엉)
비료포대 반 포대 이상 더 짊어지고 올라가는 꼴이다.
'후~ 이거 내가 왜 미련하게 이러고 있지?'
그런데 그렇게 숨을 고를 틈도 없는 와중에
무엄하게도 아버님께서 무거운 지게를 지신 모습을
문득 떠올렸던 건 왜일까?
천하 말술의 주량과 엄청난 카리스마의 소유자셨던
아버님의 요즘의 모습은 목소리조차 퍽이나 잦아드셨다.
앙상하고 꾸부정하신 모습으로 점차 힘을 잃어가시는
아버님을 밤 늦게 생각하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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