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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지게와 자전거

靑竹2008.07.29 02:26조회 수 978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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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 번도 쉬시지 않으시는 걸까?'

'아버지는 천하장사가 틀림없어.'


삯군을 사서 농사를 짓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을 정도로  빈농이셨던 아버님은
오물과 섞여 무겁기만 한 거름이나  볏단을 잔뜩 지게에 싣고
야트막한 산을 두어 개 넘어야 하는 고단하고 기나긴 길을
대체로 쉬시는 법이 없었다.

당시 우리집 논밭이라고 해 봤자
자투리 땅이 여기저기 멀찌감치도 흩어져 있어
한 곳의 잡초를 뽑고 다른 밭의 잡초를 뽑으러
이동하는 일조차 참으로 고역이었다.

아버님의 무거운 지게에 비해 형편없이 가볍다고 할
괭이 한 자루와 낫 한 자루, 그리고 호미를 어찌어찌 웅크려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뿌리고 조금 남은 비료 포대를 움켜쥔 채
땀냄새 물씬 풍기는 아버님의 무거운 걸음을 따르노라면
괭이 등속을 둘러멘 어깨가 아파오고
비료포대를 움켜쥔 손아귀가 저려와
괭이를 땅에 끌어보기도 하고 비료포대를
아버님 몰래 땅에 살짝 내려놓기도 해 보면서
허둥지둥 따라가기 바빠
무거운 아버님의 걸음을 살피기는 커녕
쉬지 않으시는 아버님을 꽤나 원망했었다.

그러나 난 미련하게도 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그런 무거운 걸음이 6남매를 거느리신 식구 여덟의 가장이시자
삯군을 살 형편이 되지 못했던 아버님의 절박함이었단 사실을 알았다.

대저 농사일이라는 게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밭에 잡초가 무성해지고 때아닌 늦가을비를 맞은 볏단은
차일피일 지체할 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농기계들이 워낙 좋아졌지만
소달구지 부리는 집이 부유한 집이었들 정도로
열악하던 시절인지라 모든 일을 아버님의 손발로
모두 감당하셔야 했으니 그 절박함이 오죽하셨으랴.


두어 달 잔차질을 않다가
모처럼 산에 오르자니 죽을 맛이다.

'여기는 예전에 쉬지 않고 올라가던 코스지?'

누가 법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니건만
스스로 올가미를 만들어 놓고 생땀을 쏟으며 페달을 밟는다.
처음에 오를 때야 상당한 난이도로 생각되어 오를 꿈도 못 꾸고
서너 번 끌바를 해서 오르던 곳이었지만
자주 오르다 보니 익숙해진 곳인데
두 달여 잔차질을 쉰 인간이 부실해진 엔진은
전혀 고려에 넣지 않고 쉬지 않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채 비몽사몽 페달을 밟자니
사위가 노랗게 보이고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온다.

더구나 60kg가 나가야 정상인 체중이
72kg가 나가니(풀민님 지둘려..엉엉)
비료포대 반 포대 이상 더 짊어지고 올라가는 꼴이다.

'후~ 이거 내가 왜 미련하게 이러고 있지?'

그런데 그렇게 숨을 고를 틈도 없는 와중에
무엄하게도 아버님께서 무거운 지게를 지신 모습을
문득 떠올렸던 건 왜일까?


천하 말술의 주량과 엄청난 카리스마의 소유자셨던
아버님의 요즘의 모습은 목소리조차 퍽이나 잦아드셨다.
앙상하고 꾸부정하신 모습으로 점차 힘을 잃어가시는
아버님을 밤 늦게 생각하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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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 그래도 그 구부정한 모습의 아버지가 계시잖아요.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지게를 져 보았습니다.
    그렇게 작고 초라할 수 없었습니다.
    동란과 할아버지의 난봉으로 어려서부터 져 오던 지게를
    늙도록 지지 않고 돌아가신 것을 보면
    그 지게에 피곤해서였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 옛날
    어리고 철 없는 자식들을 두고
    잠시라도 쉴 틈이 없으셨던
    우리 아버지들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아버지 살아실제 섬기기를 잘 하라는데
    그게 잘 되지 않네요.

    혼자 남은 어머니 마져 돌아가시고 나면
    그 때나 철이 좀 들어서
    땅을 치고 통곡을 하겠지요.

    저의 직장에 찾아오는 노인 중에
    아버지 연세와 같은 분을 만나면
    아버지 생각이 불현듯 나더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지금은 주무시고 계시겠죠?

  • 또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 정말 좋은글입니다.
  • 어렸을 때....아버지를 잃은 저로서는....꿈에서도 아버지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네요....

    지금 내 아들은 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기억할까..하고 생각은 해보지만....
    꾸부정하지만...가정을 위하여..묵묵히 희생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닐 듯 싶습니다.

    짊어진 지게의 무게만큼이나....삶의 무게를 버티고 지내오신 모든 아버지들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흠!... 청죽님 몸무게가...72kg 밖에..안되는구나....기다리긴....뭘 기다리라고.....
    아직도 시멘트 한 포대 정도는....더 있어야겠구먼.....쩝!!!)
  • 나중에 내 아들은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풀민이님 글이 가슴에 박히는군요.

    산으로 들로 한강으로 어지간히 끌고다니던 아부지 ㅋㅋㅋㅋ
    내 좋아서 끌고 다녔지,아들놈 좋으라고 끌고 다니지는 않았지요 ㅋㅋㅋㅋ

    그런데 왈바에 늙다리들은(물론 저를 포함) 가을에 살 안찌고
    더워지면 살찌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런 모습의 아버님이 이제는 안계시니 살아생전 잘해드리지 못한 것만 후회됩니다...
  • 초록색 글자를 보니 이제 왈바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수 년동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 한번 안해보고 살았었는데
    정말 그 조그마한 체구에 어떤 그런 힘이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었던것 같습니다....
  • 워낙에 어릴적에 돌아가셔서...TT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고... 다만 장성에서 정읍으로 이사 갈 때 소달구지에 장농과 몇가지 가재도구를 싣고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무렵에야 도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일찍 죽은(7살 때)제 동생 순복이 낳고 저 세 살때 돌아가셨지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참도 고생을 많이 하셔서...어머니께 잘 해 드리려고 노력은 하지만... 다 제 기준입니다.

    순복이 참 예뻤는데...그러고 보니 제 둘째 딸아이 지금 나이때 죽었군요.흑~~!
  • 예전에 본 글인지 만화인지..... 기억이..........-_-;; 쩝~~~
    어느 아버지가 자식을 가르치면서 통곡했던 그런 내용인것 같은데....
    자신이 자식이었을때 자식이 잘못하면 그 아버지는 자신의 부덕한 소치라면서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막 내려 쳤을때 그 자식은 가슴이 철렁하면서 아부지!! 다시는 안그러겠읍니다
    지가 잘못했어라~~ 하면서 아버지의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울었던 기억에
    그 자식이 장성하여 자식을 키우다가 자기 자식이 잘못하여 예전의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방법으로 자식을 불러 놓고 내가 너를 잘못키웠구나!! 다 내 부덕함이다 하면서
    자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내리치니까 ...
    이 자식이 한다는 소리가.............
    엄마 엄마!! 아버지가 미쳤나봐 !! 자기 종아리를 두들겨 패고 그래...-_-;;
    세월의 흐름은 어찌 막을수가 없나 봅니다
  • 숙연한 글입니다.
    자식들에게 제가 어떤 아버지로 비춰질지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 어머니 돌아가신후 형제들과 친척, 주변에서 아버지를 시설로 모시라고 권유했지만, 나 혼자 따로 나와 아버지와 13개월 생활했는데, 오후 6시에 잠깐 일좀 보고 10시에 돌아와 보니 혼자 돌아가셨더군요. 눈가에 눈물 자국을 보니 88세 장수는 하셨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한게 죄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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