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전성기가 지난 것일까?'
실제로 체력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마음가짐이 흐트러졌는지
가끔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질문을 던지곤 한다.
종내엔 올마 한 대, 하드테일 한 대를 굴릴 요량이지만
우선 당장 여력이 없어 하드테일을 작년부터 접어 두고
부품을 이식하고 난 하드테일 프레임은 벽에다 걸어 두었다.
조랑말을 타고 산천을 유람하듯
풀샥을 끌고 지근 거리에 있는 산들을
설렁설렁 돌아다니는 요즈음인데
주로 혼자다.
이런저런 속박에서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홀로라이딩을 선호하는 위인이기도 하지만
항상 무언가에 좇기듯 경쟁적으로 달리는
하드테일이 주류인 지인들의 단체 라이딩이
선뜻 내키지 않는 것도 작지 않은 이유로 작용한다.
라이딩에 관한 추억은 늘 감미롭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감미로운 추억 속에
'설렁설렁 라이딩'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커피 한 잔 마시자고 초저녁에 지인을 만나
갑자기 의기투합하여 장거리 여행을 떠나
잠도 안 자고 200여 km를 라이딩한 일이나
'내일은 사촌 동생이나 보러 대전이나 다녀와야지'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어 훌쩍 다녀온 일이나
이른 봄 차가운 비를 맞으며 남해안 도로를 일주했던 일이나
기타 저질렀던 장거리 라이딩이 대부분 8월의 폭염 아래였거나
추위가 아직 덜 가신 진눈깨비 내리는 날씨였거나 해서
당시엔 상당히 고통스러웠다고 생각되는데
그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몇 년이 흐르면서
서서히 변신, '감미로운 추억'이란 무대를
온통 독차지하고 앉은 것이다.
필시 그것은 각인 때문이었을 테지만
어쩌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속의
고통이기에 애써 그 기억들을 순화시켜
감미로운 빛깔로 은근히 빚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전성기가 지난 것일까?'
어제 출렁거리는 풀샥으로 모처럼 호암사를 올랐는데
중간에 세 번 정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마흔 살에 시작한 잔차질.
힘과 요령과 지구력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던
적어도 내게는 전성기였다고 생각되는 마흔 중반 무렵엔
더블 크라운을 장착한 프리차로 몰라갔던 호암사가
아~ 이토록 힘들 줄이야!
두어 달 잔차질을 쉰 탓도 크겠지만
무엇보다도 꽤 오랜 동안 예전의 치열함을 잊은
설렁설렁라이딩 쪽에 더 혐의를 두고 있다.
그렇다고 요즘 주무기로 삼는
설렁설렁 모드를 단죄할 생각은 없고
더구나 무가치하게 생각하여 기피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다시 시간이 흐른 훗날에
오늘의 이 설렁설렁 라이딩을
감미롭게 추억하지 못할지라도
이미 그것은 애써 추억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의 삶 속에 지극히 순도 높게 녹아 있을 것이므로....
장거리 여행을 훌쩍 떠나는 증상이
언제 또 도질지 모르겠지만 우선 당장은
무한 자유를 찾아 설렁설렁 모드로
유람이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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