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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토요일의 결심

보리오빠2008.08.02 15:53조회 수 788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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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돼서 자전거 탄 지 7년쯤 되나 봅니다.

2001년 어느 날, 점심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중 부도 맞아서 파격세일 한다는 자전거를 6만원 인가 주고 산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우와! 21단 기어달린 자전거가 6만원, 웬 떡이냐?”

하면서 무척 흐뭇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자전거로 등하교했지만 기어 달린 자전거를 가져보지는 못했거든요. 하지만 기어가 없어서 불편하거나 불행했던 기억은 없습니다.  

기어가 없어도 나의 자전거는 집과 학교 사이 호남선 철로 위로 놓인 계룡육교를 단숨에 올랐고 신나게 내리쏘았습니다. 물론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언덕길도 많았지만 기어가 없는 탓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내가 어떤 언덕을 끝까지 못 오르는 이유는 내 힘이 모자라기 때문이었고, 언덕에서 친구 놈보다 일찍 자전거에서 내리게 되더라도 그것은 그 놈보다 힘이 약한 탓이었습니다. 자전거 탓이 아니라.  

지금 저는 27단 기어가 달린 trek을 탑니다. 가격으로 따지면 중고등학교 시절에 타던 것보다 수십배 혹은 백배쯤 비쌀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자전거를 타는 일이 그만큼 더 즐거워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언제부턴가 툭하면 자전거 탓을 합니다. 남들보다 속도가 나지 않거나 언덕을 잘 오르지 못하는 것은 내 자전거를 티타늄과 xtr로 휘감지 않았기 때문이고, 체인에 기름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빠르거나 쏜살같이 언덕을 올라가는 라이더를 만나면 제 눈은 제일 먼저 그가 탄 자전거의 프레임에 새겨진 영문(英文)을 더듬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 이제라도 이런 유치하고 비겁한 행태를 던져버리고, 터질 것 같은 심장의 박동과 거친 호흡 그리고 튀는 땀방울만 생각하렵니다. 잔차질의 본질에 집중하는 거지요.

끝으로, 제가 이런 결심을 한 이유가, 어제 저녁 새 안장(SLK, selle Italia)과 새 헬멧(regas, OGK)을 구입하고 체인(XT)까지 바꾸느라 카드를 긋고서 아내에게는 그 금액을 절반으로 속인 데 대한 죄책감 내지 발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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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공감합니다.

    '타는 일'에 골몰할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관심이 매커니즘 쪽으로 기울다 보면 끝이 없더군요.

    처음 엠티비를 접했던 가슴이 벅찼던 시절,
    밤에 자다가 깨기라도 하면
    자전거거 있는 베란다로 습관적으로 나가
    비싸지 않은 자전거를 요모조모 들여다보며
    어루만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의 땀을 매개로
    몸과 자연을 소통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좋은 글입니다.
  • 보리오빠글쓴이
    2008.8.2 17:24 댓글추천 0비추천 0
    "나의 땀을 매개로 몸과 자연을 소통시키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는데..
    단 한 줄로 정리하시네요.

    YOU WIN!! ^^
  • 흠...시각을 보니....청죽님이 지금 시각에 인터넷을 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 우리 동호회에서 의정부를 간다고 했는데..아마 가질 않은 모양입니다....(큭!!)

    호암사를 들러...캡틴님 한테 잠시 들린다는 것 같았는데....
    아마 코스를 다른 곳으로 정했는지....

    (전..금일....불참입니다만...)

    ......................

    자전거를 타는 일....
    그것이 시간과 장소와 관계없이 즐거울 때가 가장 좋았을 때가 분명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날은...자전거를 끌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지하 2층과 3층 주차장을 오가며...한시간 가까이 달렸지요....
    결국은 경비원 아저씨에게 쫒겨나다시피(??) 하였지만....

    지금은 그때 보다는 확실히 덜 한듯 합니다...
    자꾸 남의 자전거만 눈에 들어 오고....(이러다 지름신 찾아 오실라!!)
  • 풀민님. 조만간 자미사에도 나가 봐야겠습니다.
    다들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곰솔, 열시미, 비원,그리고..
    열매누님(날 어리게 보고 누님이라 자칭한 원죄가 평생 갈 것임)
    은 다들 무고하신지요.
  • 보리오빠글쓴이
    2008.8.2 17:34 댓글추천 0비추천 0
    몇 년 전,
    제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일부러 먼 거리를 돌아 출근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전거 때문에 술자리 회식자리가 귀찮게만 느껴지던 시절.

    mashhito soda라는 일본인이 지은 "스피드 도둑"이라는 만화가 너무 공감되고 감동적으로 느껴지던 시절.

    하지만 주차장에서 달려볼 생각은 못 했네요.

    YOU WIN!!
  • 주차장은 약과입니다.
    당직하던 밤에 책상들을 한 쪽으로 밀치고
    좁은 공간을 만들어 원을 그리며 한 시간여를 타기도 했습니다.

    =3=33=3333=3333333333
  • 보리오빠글쓴이
    2008.8.2 17:39 댓글추천 0비추천 0
    "당직하던 밤에 책상을 한 쪽으로 밀치고..."

    이거 해보고 싶은데..
    요즘엔 컴퓨터 배선과 각종 통신 선로 때문에 책상을 밀칠 수가 없다는.
  • 당직실에 모셔놓고 밤새 닦았습니다. ==33=33=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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