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변의 갈대숲도 밑둥부터 서서히 갈색으로 변해가는 게
가을이 깊어감을 나타내건만 왜 이렇게 덥다냐..헥헥
'갑자기 머리가 왜 시원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를 더듬다가 깜짝 놀라
옆에서 달리던 갑장께 소리쳤다.
"허~ 커피를 마시던 자리에 헬멧을 놓고 그냥 왔네요"
그런데 이런 장면에선 의당 '푸하하핫' 하고 웃으면서
날 놀려야 정상인데 말없이 앞서서 유턴하는 갑장의 표정이
엷은 미소를 띠었을 뿐 사뭇 진지한 게 외려 찜찜하다.
'음..저냥반이 날 놀리지 않고 저렇게 진지한 건
혹시 내 건망증을 치매로 보고 저러시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도 뭐 크게 자신은 없지만
아무래도 오해일 확률이 높은데?'
단속이 한층 심해진 탓인지
예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천변의 노점상들이
요즘은 거의 자취가 안 보인다.
삼복의 폭염을 무색케하는
이름뿐인 가을날인 어제의 폭염에
한강으로 향하는 중랑천길을 달리는 내내
머리에 눌러쓴 헬멧이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타는 듯 따가운 햇살에 잠시 그늘을 찾던 중,
마침 노점상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잔차를 대고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잠시 쉰 다음,
1킬로미터 정도 달리다 헬멧이 생각나 부랴부랴 되돌아갔더니
벤치에 헬멧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다시 한강을 향하여 3~4km정도 더 달렸는데
"청죽님"
"네?"
"혹시 커피 값 내셨어요?"
"내가 낼 사람유?"
"헉! 저도 안 냈어요!"
"이런..그런데 그 쥔장은 우릴 두 번이나 보고도
왜 돈을 달라지 않았을까요?"
"그냥반 증상도 우리와 비슷한 거 같습디다"
'쩝..이냥반이 아까 날 놀리지 않고 사뭇 진지했던 이유는
동병상련하는 마음에 기인한 거였구나..흑흑 우리 어떡햐'
대충 헤아려 보니 십여 년 잔차질을 하면서
라이딩 중 헬멧을 쉬던 장소나 식당 등에
놓고 나온 일이 족히 여나므 번은 되는 것 같고
배낭을 놓고 다닌 것도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중, 산정에 배낭을 두고 내려온 일이 두 번인데
그때마다 배낭을 되찾으려 능력을 초월한 업힐로
그야말로 게거품을 물어야 했다.
꼴에 잔차를 손본답시고 림브레이크를 푼 다음
브레이크를 조립하지 않고 풀린 채로 그냥 달리다
돌발상황 앞에서 기대했던 제동력이 생기지 않자
황급하게 길옆의 풀밭으로 다이빙한 일도 있었다.
일행들이 대체로 증상이 이러니
예전에 송추정신병원의 왼쪽으로 나 있는 길로
업힐을 하러 갔을 때 그 길을 처음 가 보는 선두가
"왼쪽 길유 오른쪽 길유?"하고 묻자
일행인 아지매 한 분이
"호호호 일행들 상태로 봐선 오른쪽이 맞는데
예약들을 안 하셨으니 오늘은 그냥 왼쪽으로 가세요..호호호"
하며 조언을 해 준 덕에
정신병원 단체 입원을 모면한 일이 있다.
뚝섬으로 한바퀴 돌아오던 길에
그곳에 들려 커피 한 잔씩 더 청해 마신 다음
아까의 외상값이라며 돈을 더 지불하자
기억에 없다며 깜짝 놀란다.
계절이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요즘처럼 갈팡질팡 방황하는 시절엔
애꿎은 건망증(죽어도 치매는 아님) 환자만 양산되나보다. 케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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