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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두 톨

구름선비2008.09.23 22:03조회 수 621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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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시장도 없고
복권을 파는 곳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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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며칠 전에 같이 근무하는 막내 직원이 무언가
내밉니다.
무심코 받아 보았더니 2천원짜리 로또 복권입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임이지만 명석하여 시키는 일을
마음에 들게 처리하는 직원입니다.

곱게 간직하였다가 추석이 끝난 지난주 맞춰 보았더니
모처럼 5등에 당첨되었습니다.
물론 바꾼 것을 이번 주에 맞춰 보니 다시 꽝이 되었지만
적은 돈으로 웃을 일을 만드는 신임 직원이 대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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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이라도 한 장 살려면
동네에서 벗어나 버스로 두 정거장은 가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라이딩 코스를 변경하는 것입니다.

한 주를 즐겁게 보낼려면 복권만한게 없습니다.

복권은 되려고 사는데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나고 나면 그저 허무한
남가일몽이 되지만 그래도 몇 천원짜리 이웃돕기려니,
몇 천원으로 즐기는 일주일 간의 즐거움이 이것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자주 사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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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비가 좀 내렸고 많이 탈 생각도 없어서
가까운 동네 싱글로 갑니다.
업힐이 시작되는 곳에 서 있는 감나무 밑에서 병이 들어서 떨어진 감을 주워
한 입 물고는 꽤 힘에 겨운 업힐을 하는데
전에 같이 타던 젊은 동호인을 만났습니다.
몸이 좋지않아 결혼도 포기하고 사는
눈 속에 슬픔을 간직한 젊은이입니다.

그와 지난 이야기, 주변 코스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헤어져서 터덜터덜 업힐을 합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무뎌지고 다시 팔을 다쳐서 무뎌진
체력은 회복될 줄 모릅니다.
직장 고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여자들 폐경기에 해당하는
'갱년기'랍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쉽게 피곤하고, 얼굴이 붉어지고….

며칠 전에 풋밤을 항 웅큼 주웠던 작은 정상의 밤나무를 쳐다보니
아직도 꽤 많은 밤이 달려 있습니다.
발에 힘을 주어 나무를 차 봅니다.
이런! 아직 어린 나무라 쇠가 달린 클릿 신발로 인해 나무에 자국이 남는군요.
안되겠습니다. 그냥 몇 번 흔들어 봅니다.

밤송이 몇 개가 후두둑 떨어집니다.

이번 가을은 적극적으로 밤을 주으러 다니지 않았지만
라이딩 때마다 주워 온 것이 집 김치냉장고에
점차 쌓여가면서 늘어나는 양 만큼의 넉넉함이 있습니다.

저의 자전거 뒷브레이크 레버에는 작은 주방용 집게가 달려 있습니다.
언제나 밤송이를 집어서 깔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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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를 사러 가는 길에 밤나무가 자주 눈에 띕니다.
대부분 주워간 흔적이 있지만 그래도
종종 알이 큰 밤을 발견하고 흐믓한 마음으로
져지 주머니에 주워 넣습니다.

밤의 질도 여러가지라서 밤송이는 크지만
작은 알밤이 4~5개나 되는 것이 있는가하면
밤송이는 작아도 한 개 또는 두 개의 실한 것도 있습니다.
아마 환경문제이거나 기온 상승에 의하여 이상한 밤송이가
생겨난 듯 합니다. 옛날에는 거의 3개 미만의 알밤이 들어 있던 것에 비하면
이상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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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조금 타고 로또 판매소에 도착했습니다.
늙은 할머니와 아들같은 젊은 장애인이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복권을 주면서 꼭 '고맙습니다.'하고 말하는 할머니의 인사가 고맙습니다.
받는 기분도 즐거워 같이 고개를 꾸벅이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운 그런 집입니다.

젊은(실은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키가 작은 것 같습니다.)
아드님은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지만 손님에게 친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내 일에 대한 즐거움, 그 일로 인해 생활하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묻어나는
그런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천원을 건네면서
오늘 주은 밤 중에서 가장 큰 밤 두 톨을 같이 건넸습니다.
양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거지요.

그 젊은이가 웃습니다.
저도 따라 웃지요.

돌아오는 발걸음이 더 가볍습니다.
복권이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번 한 주는 그냥 즐거울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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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밤 두 톨과 로또 한 장에 얽힌 잔잔한 우리네 삶의 모습을
    느끼게 하는 글이네요.
    건강히 잘 지내셨는지요.

    저도,
    지난주에 홀로 라이딩 갔다가 딱...밤 두톨 주웠습니다...고것두 쥐밤....^^

    근디...
    갱년기래도 남,녀의 차이는 좀 있다고 하던데요.
    숨이 쉽게 차고 맥박이 빠르며 얼굴이 화끈 거리시거시며 식은 땀이 나시면,
    갱년기에 오는 증상이기도 하실 수 있으나
    위와같은 증상들은 갑상선 항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구요,
    호르몬의 이상으로도 올 수 있다고 하던데요.

    한 번 진료 상담 해보심이...

    건강 하세요...^^
  • 거리시거시며---->거리시거나.....로 수정 드리옵니다...(오타의 지존...^^::)
    조만간..오타를 내면 오타 1나 당 10점씩 감점하는 페널티를 당하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되면,
    저는 뒤로가는 ...점수가 자명하겠군요..^^ㅎ
  • 저도 잔잔한 수필 잘 읽었습니다.
    선비형님 몸 잘 추스리세요... 과격라이딩도 삼가시구요.
    부러지면 잘 안붙습니다. ㅋㅋㅋ

    쮸꾸마... 수축 튜브 꼭 사와라... 안그럼 춘천에서 누님표 짬뽕 안멕여준다...ㅋㅋㅋ

    희준이한테 전화 해보고... 팀차 언제 이동할건지...

    그나저나 그건그래한테 정말 미안한데...
    너무 미안해서 쪽지도 못보냈다... 에이그 참...

    그건그래야 미안해...대신 밥 한끼 살께.TT.
  • 어제 아범님께서 새벽에 친구분 하고 낫들고 나가시더니
    퇴근후에 보니 커다란 다라에 밤이 한말은 되보이네요...
    요즈음 밤은 커서 좋기는 한데 맛이 들하네요...
    시골서 갔고온 조그마한 밤이 단맛이 더있는거 같습니다.
    우면산에도 밤 엄청 많은데...
    다음주에나 우면산 밤 줏으러 함 가야겠습니다.
  • 구름선비글쓴이
    2008.9.24 07:09 댓글추천 0비추천 0
    스카이님,
    갑상선 항진증에 대하여 찾아봤습니다.
    일부 일치하기는 한 것 같은데 병원에 한 번 가 봐야겠습니다.
    스카이님의 의학 상식은 십자수님을 능가하는 것 같습니다. ㅎㅎ
    그 쪽을 전공하신 것 같지는 않은데~~

    십자수님,
    그저 일기에 가깝지 수필까지는 아니구요^^;;

    천성적으로 겁이 많고
    체력이 약해서 과격라이딩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쉽게 피곤하고 체중도 빠져서
    허리가 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건강검진을 통해서 발견한 증상이라곤
    역류성 식도염과 미란성 위염 정도인데
    그것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우현님,
    저도 요즘 느끼는 것인데
    큰 밤(제가 주워 온 것엔 큰 것은 거의 없습니다만)은
    콩밤(작은 것)에 비해 맛이 덜한 것 같습니다.

    우면산에도 밤이 많이 있군요.
  • 어제 자전거로 퇴근하는 길에 보니 밤송이가 많이 떨어져 있더군요... 저도 집게하나 가져 다녀야 겠습니다.~~~~^^ 아침에 읽는 좋은 글 때문에 오늘 하루가 즐거워질것 같습니다 ㅎㅎㅎ
  • 연인산에 다녀왔는데
    거기도 노변에 밤송이가 있는 곳에 멈춰서 주우면
    한 되 남짓은 주울 수 있었습니다.
    씨알이 작아도 씹으면 고소한 게
    맛이 좀 싱거운 개량종과 비교할 수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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