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길게 난 한적한 산길. 인적이 드물어 떨어진 밤이 고스란히 남아 지천이다.
"청죽님! 업힐 실력을 어느 정도는 갖춰야
잔차질도 즐겁겠죠?"
"그럼요. 고된 업힐이 있었으니
이런 시원한 내리막질을 보상받는 거겠죠."
잔차질을 하면서
사람마다 즐거움을 느끼는 관점이나 행동 양태가 사뭇 다를 테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잔차질의 즐거움은 '유유자적'의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이 '유유자적'의 느낌을 얻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3달 정도 부상과 심리적 불안정을 이유로 잔차질을 쉬다가
모처럼 한강이 보고 싶어 집을 나섰던 한 달여 전에 느낀 건데
물론 중간에 호승심이 발동하여 좀 무리한 측면도 있었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던 의정부 - 한강 구간의 거리가
얼마 가지 않아 엉덩이가 아프고 여기저기 쑤시면서
라이딩은 이미 '유유자적'의 궤를 벗어났었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유람 생활을 했던 건
물론 그의 사상이나 신조에 따른 것이겠지만
오랜 여행으로 다져진 체력이 있었기에
팔도 방방곡곡을 샅샅이 누빈 엄청난 도보 여행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취권에 나오는 소화자의 여유도
밑바탕에 깔린 내공이 있어야 부릴 수 있듯,
잔차질이 늘 고통스럽고 피곤하여
가다가 길옆 풀섶에라도 눕고 싶어진다면
이미 그건 즐거움이 아닌 것이다.
"저냥반은 안장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많아요"라며
친구 아지매들에게 남편 흉을 보던 마누라의 말처럼
잔차질이 일상이 되다시피하던 시절엔
지구력이나 체력이 당연히 따라서 갖춰져서
어떤 거리를 달리든지 잔차질은 항상 즐거움 그 자체였는데
고작 세 달을 쉬고 나니 즐거움이 고통으로 변했다.
그러나 아직도 안장에 앉아 페달링을 시작하면
눈앞으로 몰려드는 싱그러운 자연에
여전히 마음이 설레이고 여전히 무한자유를 느끼니
잃었던 체력과 적응력은 곧 돌아올 것이다.
더 젊고 더 체력이 좋다면
다운힐도 한 번 해 보고 싶고
시합에도 가끔씩 출전해 보고 싶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욕심이라는 걸 잘 안다.
가급적이면 모험적 상황 앞에 몸을 사리고
그저 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업힐이나 장거리 라이딩을
자주 하는 것이 나의 분수에 맞는 잔차질이며
유유자적하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전제 조건이자 마지노 선인 것이다.
나는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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