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열흘 전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막 오후 일을 시작하려는 시각
휴대폰이 울립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데..재옥이가 죽었단다. 오늘 아침에 집에서..."
'살아 있는'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저녁 퇴근시간이 되자 마자 사무실을 나서 지하철로 향합니다.
내린 곳은 4호선 서울역... 목적지는 적십자 병원..
서두를 필요가 없을 거 같아 걸어서 갑니다.
80년대 서울역으로 상경하는 촌놈들을 기죽에 하곤 하던 "대우빌딩"은 이제는
수리중인지 커다란 천을 둘러 쓰고 있군요.
사망한 대우그룹의 운명을 보는듯 합니다.
그 반대쪽 그러니까, 서부역 쪽을 처다 보다가
오늘 죽은 재옥이가 운영하던 봉재공장이 생각났습니다.
서부역 근처 오래된 건물에 자리 잡은 재옥이의 공장에는 한때 10여명의
직공들이 옷을 만들어 남대문 시장에 납품 하였지요.
재옥이는 옷을 만들다가 하자가 난 제품을 모아 두었다가
친구들에게 "이게 일본에서 유행하는 최신 패션 이다. 니 마누라 갖다 줘"
하면서 떠 안기곤 했죠.
돈을 제법 벌었는지 90년대 중반에는 "포텐샤"를 "뽑고는 기념으로
친구들을 불러 홍대 근처 등심집에서 저녁도 샀지요.
맛있게 먹어대는 친구들을 굽어 보며 녀석은 흐믓한 미소를 짓더군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감옥 옥상 방수공사중 동료들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지었던 바로 그 표정 이었습니다)
이윽고 40이 다된 나이었지만 재옥이는 예쁜 여자와
결혼도 하였습니다. 친구들이 등뒤에서 "재옥이와 어울리지 않아. 너무
사치스럽게 생겼어"라고 쑥덕댔지만 그런대로 축복 속에 장가를 갔지요.
신혼 여행은 괌과 사이판으로 갔더랬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결혼 한달만에 온다 간다 말 없이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이불하나 해온거 없이 몸만 달랑 왔다가 다시 그렇게 가버린 거지요.
그무렵 재욱이의 일감은 중국과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게 넘어가기 시작 했고
사업이 어려워 질 때라 아내의 가출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재옥이는 한동안 술로 지새다가
알콜중독 치료소에 열흘동안 입원까지 했었습니다
그는 다시 입을 악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만리동 고개 지하에 봉재 공장을 다시 차렸지요.
종업원이라 해야 고향 후배 두어명..
그러나 재옥이의 기울어진 운명을 역전시키기엔 너무 늦었나 봅니다.
그가 다단계 판매의 마수에 걸려든 것도 두번째 공장을 처분한 직후였습니다.
6개월여 다단계 판매생활의 결말은 친구들과 그나마 남아 있던 주변인들과의
결별이었습니다.
자괴감에서인지 인생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친구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더군요.
막노동을 한다
폐인이 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그가 마지막으로 친구들 앞에 나타난 것 올 4월이었나 봅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며 사양하더군요.
인생 새롭게 살아야 겠다고.
그러나 그것은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였나 봅니다.
영안실에서 재옥이 형이 그러더군요.
몇달간 술만 마셨노라고
자다가 목마르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마셨노라고
오늘 아침에 일어 나 보니 죽어 있더라고.....
재옥이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중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을 부러워 하다가
영농후계자로 지정받아 농사를 짓다가
홀로 상경하여
가진것 배운것 없는 놈이
쟁쟁한 대한민국 사람들과 경쟁하다
전사하였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막 오후 일을 시작하려는 시각
휴대폰이 울립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데..재옥이가 죽었단다. 오늘 아침에 집에서..."
'살아 있는'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저녁 퇴근시간이 되자 마자 사무실을 나서 지하철로 향합니다.
내린 곳은 4호선 서울역... 목적지는 적십자 병원..
서두를 필요가 없을 거 같아 걸어서 갑니다.
80년대 서울역으로 상경하는 촌놈들을 기죽에 하곤 하던 "대우빌딩"은 이제는
수리중인지 커다란 천을 둘러 쓰고 있군요.
사망한 대우그룹의 운명을 보는듯 합니다.
그 반대쪽 그러니까, 서부역 쪽을 처다 보다가
오늘 죽은 재옥이가 운영하던 봉재공장이 생각났습니다.
서부역 근처 오래된 건물에 자리 잡은 재옥이의 공장에는 한때 10여명의
직공들이 옷을 만들어 남대문 시장에 납품 하였지요.
재옥이는 옷을 만들다가 하자가 난 제품을 모아 두었다가
친구들에게 "이게 일본에서 유행하는 최신 패션 이다. 니 마누라 갖다 줘"
하면서 떠 안기곤 했죠.
돈을 제법 벌었는지 90년대 중반에는 "포텐샤"를 "뽑고는 기념으로
친구들을 불러 홍대 근처 등심집에서 저녁도 샀지요.
맛있게 먹어대는 친구들을 굽어 보며 녀석은 흐믓한 미소를 짓더군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감옥 옥상 방수공사중 동료들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지었던 바로 그 표정 이었습니다)
이윽고 40이 다된 나이었지만 재옥이는 예쁜 여자와
결혼도 하였습니다. 친구들이 등뒤에서 "재옥이와 어울리지 않아. 너무
사치스럽게 생겼어"라고 쑥덕댔지만 그런대로 축복 속에 장가를 갔지요.
신혼 여행은 괌과 사이판으로 갔더랬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결혼 한달만에 온다 간다 말 없이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이불하나 해온거 없이 몸만 달랑 왔다가 다시 그렇게 가버린 거지요.
그무렵 재욱이의 일감은 중국과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게 넘어가기 시작 했고
사업이 어려워 질 때라 아내의 가출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재옥이는 한동안 술로 지새다가
알콜중독 치료소에 열흘동안 입원까지 했었습니다
그는 다시 입을 악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만리동 고개 지하에 봉재 공장을 다시 차렸지요.
종업원이라 해야 고향 후배 두어명..
그러나 재옥이의 기울어진 운명을 역전시키기엔 너무 늦었나 봅니다.
그가 다단계 판매의 마수에 걸려든 것도 두번째 공장을 처분한 직후였습니다.
6개월여 다단계 판매생활의 결말은 친구들과 그나마 남아 있던 주변인들과의
결별이었습니다.
자괴감에서인지 인생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친구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더군요.
막노동을 한다
폐인이 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그가 마지막으로 친구들 앞에 나타난 것 올 4월이었나 봅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며 사양하더군요.
인생 새롭게 살아야 겠다고.
그러나 그것은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였나 봅니다.
영안실에서 재옥이 형이 그러더군요.
몇달간 술만 마셨노라고
자다가 목마르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마셨노라고
오늘 아침에 일어 나 보니 죽어 있더라고.....
재옥이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중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을 부러워 하다가
영농후계자로 지정받아 농사를 짓다가
홀로 상경하여
가진것 배운것 없는 놈이
쟁쟁한 대한민국 사람들과 경쟁하다
전사하였습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