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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재옥이

탑돌이2008.09.29 22:30조회 수 1627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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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열흘 전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막 오후 일을 시작하려는 시각
휴대폰이 울립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데..재옥이가 죽었단다. 오늘 아침에 집에서..."

'살아 있는'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저녁 퇴근시간이 되자 마자 사무실을 나서 지하철로 향합니다.
내린 곳은 4호선 서울역... 목적지는 적십자 병원..

서두를 필요가 없을 거 같아 걸어서 갑니다.
80년대 서울역으로 상경하는 촌놈들을 기죽에 하곤 하던 "대우빌딩"은 이제는
수리중인지 커다란 천을 둘러 쓰고 있군요.
사망한 대우그룹의 운명을 보는듯 합니다.

그 반대쪽 그러니까, 서부역 쪽을 처다 보다가
오늘 죽은 재옥이가 운영하던 봉재공장이 생각났습니다.

서부역 근처 오래된 건물에 자리 잡은 재옥이의 공장에는 한때 10여명의
직공들이 옷을 만들어 남대문 시장에 납품 하였지요.
재옥이는 옷을 만들다가 하자가 난 제품을 모아 두었다가
친구들에게 "이게 일본에서 유행하는 최신 패션 이다. 니 마누라 갖다 줘"
하면서 떠 안기곤 했죠.

돈을 제법 벌었는지 90년대 중반에는 "포텐샤"를 "뽑고는 기념으로
친구들을 불러 홍대 근처 등심집에서 저녁도 샀지요.
맛있게 먹어대는 친구들을 굽어 보며 녀석은 흐믓한 미소를 짓더군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감옥 옥상 방수공사중 동료들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지었던 바로 그 표정 이었습니다)

이윽고 40이 다된 나이었지만 재옥이는 예쁜 여자와
결혼도 하였습니다. 친구들이 등뒤에서 "재옥이와 어울리지 않아. 너무
사치스럽게 생겼어"라고 쑥덕댔지만 그런대로 축복 속에 장가를 갔지요.

신혼 여행은 괌과 사이판으로 갔더랬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결혼 한달만에 온다 간다 말 없이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이불하나 해온거 없이 몸만 달랑 왔다가 다시 그렇게 가버린 거지요.

그무렵 재욱이의 일감은 중국과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게 넘어가기 시작 했고
사업이 어려워 질 때라 아내의 가출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재옥이는 한동안 술로 지새다가
알콜중독 치료소에 열흘동안 입원까지 했었습니다

그는 다시 입을 악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만리동 고개 지하에 봉재 공장을 다시 차렸지요.
종업원이라 해야 고향 후배 두어명..
그러나 재옥이의 기울어진 운명을 역전시키기엔 너무 늦었나 봅니다.

그가 다단계 판매의 마수에 걸려든 것도 두번째 공장을 처분한 직후였습니다.
6개월여 다단계 판매생활의 결말은 친구들과 그나마 남아 있던 주변인들과의
결별이었습니다.

자괴감에서인지 인생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친구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더군요.

막노동을 한다
폐인이 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그가 마지막으로 친구들 앞에 나타난 것 올 4월이었나 봅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며 사양하더군요.
인생 새롭게 살아야 겠다고.

그러나 그것은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였나 봅니다.

영안실에서 재옥이 형이 그러더군요.

몇달간 술만 마셨노라고
자다가 목마르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마셨노라고
오늘 아침에 일어 나 보니 죽어 있더라고.....


재옥이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중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을 부러워 하다가
영농후계자로 지정받아 농사를 짓다가
홀로 상경하여
가진것 배운것 없는 놈이
쟁쟁한 대한민국 사람들과 경쟁하다
전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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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4
  • ...............................................................
  • 힘든 삶을 살다 갔네요
    마음이 아프네요
    부디 편안히 쉬시기를~~~~
  • 가슴아픈 일이네요.
    친구분을 잃어 참으로 안타까우시겠습니다.
    저는 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친구분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이것저것 다 포기하고 자전거에나 한 번 빠져 보시잖고..쩝
  • 시홍이님에 이어 또 우울한 글이네요.

    형님 주변에 안된 분들만 계시는 건 아니죠?

    좋은 곳으로 가시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TT

    쌀쌀한 가을 날씨에 더욱 우울하게 만드시네요.
  • 저두 친구분이 술에 빠질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이해합니다 아주 많이 많이 .......
    그분에게 책임져야할 처자식이 있었다면은 어땠을까
    처자식은 마음의 부담이면서 또 살아야할 이유가 되더군요
    남편이 부도내고 얼마후에 나와 아이들을 보고 그러더군요
    "너네들만 없었으면은 ........ " 좋겠다는 뜻이었겠지요 마음의 짐이니
    그래도 우리때문에 살 이유도 되었습니다
    우리도 몇번의 고비를 넘긴끝에 이렇게 숨을 쉬고 살고 있는데 ...........
    그래도 죽어야했던 그마음 이해합니다
  • 탑돌이글쓴이
    2008.9.29 22:59 댓글추천 0비추천 0
    좋은 가을 밤에 주책 없는 글로 심란하게 해 드렸다면 송구스럽습니다.
    친구가 불쌍해 한동안 왈바 출입이 뜸했는데 앞으로 재밋는 글로 자주 뵙지요.
  • 이렇게라도 얘기를 해야 마음이 덜 답답해집니다 ~
    얘기를 하면은 들어주는 사람도 있고 대답해주는 사람도 있고 ~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마음이 아프네요 좋은곳에 가서 편안하게 지낼거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동네 형, 누나, 친구, 동생의 일이네요.
    달랑 두반인 초등학교 친구중에 두엇이 그렇게 일찍 갔더군요.
    이승보다 저승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애나 어른이나 서민들은 참 살기 힘든 우리나라인가 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시홍이"를 보낸게 얼마 되시지 안았는데,
    아이구..이런...가을이라 더 마음이 더 저며오고 가을바람이 황량스럽기 그지없다
    느껴지실 땐 한 번 부르세요...술 한 잔 대접 드리겠습니다...형님...
    힘 내십시요. 가을의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가면
    하늘에선 꽃피는 봄에 새로히 태어난다는 글을 읽었는데
    설사 맞지 안더라도 그렇게 되시기를 빕니다.

    고인분의 명복을 빕니다..▶◀
  • 말 나온 김에 2일날 어때요? 역삼동쯤에서... 저녁 7시나 8시경...
  • 한편의 영화같네요.. 더불어 글솜씨가 프로이신거 같습니다. 혹시 문인이신지..
  • 제가 태어난 곳에서 있었던 일이라 마음이 더욱 아프네요...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아직.....전...제 주변에서..죽은(??) 친구가 없네요....
    다행이라고 생각 합니다....(하긴..아직 부음을 듣기에는 젊은 나이긴 하지만...)

    친구의 그런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지는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그리고 비슷하게 한 생을 살다가신...저의 외삼촌이 떠오르기도 하구요....
  • '전사하였습니다'...총칼을 안들었고 직접 목숨을 취하지는 않는 세상이지만 참...와닿는 말이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서울역으로 상경하는 촌놈들을 기죽게 하곤 하던 "대우빌딩"' 이란 부분도 참 공감이 갑니다.
  • 괜스리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다 힘들게 살다가셨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곳에서 편히 쉬시길....
  • 탑돌이글쓴이
    2008.9.30 20:50 댓글추천 0비추천 0
    많은 분들의 조의와 격려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가 돌보둠어 주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 세상을 먼저 하직한 친구들 중에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녀석이 있습니다.

    시골길을 걷다보면 그 녀석 생각이 더 나는데
    한 살 아래였고 겁이 많아서
    중학교 입시 과외공부를 하고 귀가하는 어슴프레한 길에
    꼭 앞에서 달렸었습니다.
    겁 많은 녀석을 놀리느라고…,

    저의 친구도 마누라는 가출하여 일본 가고
    늙은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술을 그렇게 마셔대더니
    '피를 토하였다.'는 대화를 마지막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요.

    탑돌이님의 글을 보니 그 녀석 생각이 더 나는군요.
  • 가신분 참 안됐습니다. 아마 이제나 평안을 찾으신건 아닌가 싶습니다.

    전사.....
    그렇군요... 참 전쟁같이 사는군요...우리 모두....
    온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전쟁같이 살까 싶은 의구심이 탑돌이님 글을 보면서
    뭉글뭉글 솟아 오릅니다.

    넓은벌 동쪽 끝으로 ...... 라고 시작되는 이런 노래가사 처럼 살수는 없을까 싶습니다.
    좀 여유있고 돌아보는 삶을....
    꼭 마지막에 가서 돌아볼수 밖에 없을 정도로 전쟁같은 삶이 너무 무겁습니다...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탑돌님의 글...잘보고 있습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치열하지도 않고....경쟁도 없는....
    다같이 편안한 ...그곳에서 그 친구는 다시 웃고있을 겁니다....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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