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스치는 바람처럼 짧은 인생, 불꽃처럼 살다 가는 것도 좋겠고
아주 느리게 자연을 은유하며 살다 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이태 전인가 종합공구셋트라는 걸 장만했었다.
그러나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다든가
펑크가 나면 겨우 때우는 정도의 천부적 기계치라
육각렌치나 몽키 스패너 등, 몇 가지 외엔
공구 이름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어
장농 위에 얹어 두고 마냥 바라만 보는 꼬라지가
산꼴짜기에 홀로 사는 홀아비 모처럼 저잣거리에 나갔다가
싼 맛에 예쁜 다홍치마 한 벌 덜컥 사다 바람벽에 걸어 두고
어디에 소용할지 몰라 멀뚱멀뚱 바라보는 꼬락서니였다.
결국 내 잔차를 볼 때마다 이상 징후들을 발견해서
수리를 해 주시는 갑장이 아무래도 제주인이다싶어
몇 달 전에 쓰시라며 보내 드리고 말았던 것인데,
라이딩 도중에 잠시 쉬던 엊그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청죽님. 안장을 왜 이렇게 뒤로 하셨습니까?"
쉬는 시간에 나의 잔차를 살피던 갑장이 묻는다.
"엥? 그럴 리가 있나요? 정중앙일 텐데요?"
기계치 주제에 '정중앙'이란 단어를 감히 써서 우겼지만
"으흐흐..이리 오셔서 보십시오. 눈금보다 십몇 밀리는
뒤쪽으로 밀려 있습니다."
으흐흑..
그냥반이 정중앙에 다시 조립해 주신 걸 타 보니 다르다.
덕분에 늘 잘 오르던 텃산(?)들을 둘러보았는데
다시 예전처럼 수월하게 올라가진다.
어쩐지 얼마 전부터 페달링이 예전과 달리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고
업힐할 때도 이상한 징후들이 나타났었건만
그게 안장 탓이었을 줄이야.
적토마가 관운장을 만나고
오추가 항우를 만나야
비로소 하루에 천리를 가는 명마가 되지만
나같이 비실비실한 인간이 그 명마들을 만나면
초장에 낙마해서 경을 치고 말찌라...
에라~공구셋트 잘 보냈다.
나는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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