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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셋트를 추방하다.

靑竹2008.10.19 22:00조회 수 1338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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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스치는 바람처럼 짧은 인생, 불꽃처럼 살다 가는 것도 좋겠고
아주 느리게 자연을 은유하며 살다 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이태 전인가 종합공구셋트라는 걸 장만했었다.
그러나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다든가
펑크가 나면 겨우 때우는 정도의 천부적 기계치라
육각렌치나 몽키 스패너 등, 몇 가지 외엔
공구 이름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어
장농 위에 얹어 두고 마냥 바라만 보는 꼬라지가
산꼴짜기에 홀로 사는 홀아비  모처럼 저잣거리에 나갔다가
싼 맛에 예쁜 다홍치마 한 벌 덜컥 사다 바람벽에 걸어 두고
어디에 소용할지 몰라 멀뚱멀뚱 바라보는 꼬락서니였다.

결국 내 잔차를 볼 때마다 이상 징후들을 발견해서
수리를 해 주시는 갑장이 아무래도 제주인이다싶어
몇 달 전에 쓰시라며 보내 드리고 말았던 것인데,
라이딩 도중에 잠시 쉬던 엊그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청죽님. 안장을 왜 이렇게 뒤로 하셨습니까?"

쉬는 시간에 나의 잔차를 살피던 갑장이 묻는다.

"엥? 그럴 리가 있나요?  정중앙일 텐데요?"

기계치 주제에 '정중앙'이란 단어를 감히 써서 우겼지만

"으흐흐..이리 오셔서 보십시오. 눈금보다 십몇 밀리는
뒤쪽으로 밀려 있습니다."


으흐흑..
그냥반이 정중앙에 다시 조립해 주신 걸 타 보니 다르다.
덕분에 늘 잘 오르던 텃산(?)들을 둘러보았는데
다시 예전처럼 수월하게 올라가진다.

어쩐지 얼마 전부터 페달링이 예전과 달리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고
업힐할 때도 이상한 징후들이 나타났었건만
그게 안장 탓이었을 줄이야.

적토마가 관운장을 만나고
오추가 항우를 만나야
비로소 하루에 천리를 가는 명마가 되지만
나같이 비실비실한 인간이 그 명마들을 만나면
초장에 낙마해서 경을 치고 말찌라...

에라~공구셋트 잘 보냈다.





나는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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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 친구분 아니였으면...........마냥 그렇게 다니셨을텐데 ^^
    좋은 친구를 두셨군요
  • "나는 친구가 좋다"라고 바꾸시죠 ~~~~~
  • ㅋㅋㅋ..몇달전 부터 종합수리세트 하나 들일까 말까 고민중인데
    포기해야겠습니다. 4년 가까이 자전거 타면서 수리한게 고작
    타이어 갈고, 펑크 때우고
    디스크 패드 갈아 낑구는 정도였는데
    확율상으로 종수세트에 들어 있는
    그 세세한 기능들을 다 사용해볼 기회가 영영 없겠지요.

    그나마 가지고 있는 툴세트를 자꾸만 잃어 버려
    몇달 째 공구 없이 지내다가
    오늘 샵에 가서 가장 간단한 놈 하나 업어 왔습니다.
    육각렌치 8개가 전부네요.
    이놈들도 제 실력에는 넘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뒤늦게 사진을 봉께로
    청죽님 몰라보게 몸이 불어나셨구랴

    어깨 핑게로 천보산은 멀리 하시고
    논두렁이러 설렁설렁 타시다가 언제
    예전의 날렵한 모습을 찾으시려고 그러십니다요 ==33=33333333
  • 靑竹글쓴이
    2008.10.19 22:20 댓글추천 0비추천 0
    제 자전거는 의외로 소심한 반면에
    친구는 굳이 좋다는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ㅋㅋ
    (나는 스탐님이 좋다)^^

    탑돌이님.
    정말 공구 사서 한 번도 써 보지 못하고 보냈습니다.
    저 아래 공구셋트를 노려보고 계신 선인님께서도
    이 글을 보시면 뭔가 느끼시는 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 청죽님..............푸르른글이 다시, 마구 마구 보여지기를 기대합니다 ㅎㅎ
  • 좋은 갑장 두셨다고 자랑하시는 청죽님.. 부럽습니다요
  • 기계치 그룸으로 다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구름선비만큼 정비를 하신다'더니

    정말 그렇군요. ㅎㅎ
  • 청죽님 아꿉습니다. 그 공구세트를 제가 업어왔어야 되는데 에휴...청죽닌 전 제자전거
    마눌자전거 애들자전거 동네 모든 자전거를 제가 수리해 주고 있습니다.
    울 딸래미 칭구들도 주말이면 아저씨 뭐가 안되요 이상해요 하며 저에게 먼저 옵니다.^^
    이상하게 정비해주는 재미가 좋습니다.
    동네 MTB타는 사람들 자전거를 모두 수리해주다보니 없는 공구로 인해 못해주니
    제가 답답해서 결국은질러버렸습니다.
    청죽님과 같이 한번 속초나 다녀오시지요...바람도 쐬고 산과 바다도 보고 좋습니다.
    2달전인가 혼자 다녀오긴 했습니다만...또 가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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