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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를 기다리면서

구름선비2008.10.31 23:20조회 수 1413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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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이 달이 가고 나면 아이들은 수능이라는 큰 행사를 치르게 됩니다.

고3의 부모라는 것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마음이라고하는데
아이들이 기특한 것인지
내가 아이들을 잘 낳아 놓은 것인지 큰 탈없이 가는 것 같아 다소 안심이 됩니다.
큰 아이도 그렇다할 과외 한 번 없이 대학을 갔는데
작은 아이도 작년 9월부터 미술학원만 다녀서
서울의 S대( 이니셜의 편리함, 묘미^^;;)에
수시 합격 했다는 것이 그런대로 자랑이 됩니다.

실은 자랑이라고 하지만 이렇다할 지원이나 격려나,
사랑을 준 것이 아니다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어려서부터 작은 일에서부터 자랑을 잘 하던 큰 녀석에겐
'겸손하라'며 입을 막았고,
매일 같은 그림만 그리는 둘째에겐
'다른 그림도 그리라'며 핀잔을 주었던 것이 생각나
어제 저녁부터 아이가 학원차를 내리는 곳에서
기다립니다.

미술하면 알아주는 H대의 수시는 수능이 끝나야 실기시험이 있고,
실기를 잘 했더라도 그 수능에서 일정 등급 이상을 받아야
입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는 학원에서 오자 마자
어깨를 늘어뜨리고 제 방으로 바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보니
잠시나마
딸에 대한 관심과 격려를 주고자 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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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난 후라 아직도
길이 젖어 있습니다.

라이딩을 나갈 때마다 타고 내려가는
침목으로 된 계단의 나무가 꽤 미끄럽게 보입니다.

길 모퉁이를 돌아 아이를 태운 차가 올 쪽을 바라봅니다.
안개가 자욱하군요.

녹색 LED신호등이 환상적으로 보입니다.
저 멀리 두 번째 신호등도 녹색입니다.

아이의 수능이나 남아 있는 실기시험도
저렇게 '파란 불'이면 좋겠습니다.

안개를 뚫고 차 몇 대가 지나갑니다.
아이가 타고 오는 차는 버스보다는 작지만
승합차 보다는 큰 차입니다.

차를 기다리면서
좌우의 풍경을 눈여겨 봅니다.

건너편 아파트의 출입문은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고
파란색 경고등이 회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경고등 옆으로 가로등이 있고
옛날 어린시절에 받았던 그림엽서에서처럼
가로등 불빛 아래 안개가 포근하게 보입니다.

가로등에서 가까운 곳에 단풍이 잘 든 나무 한 그루가 있고
빛을 따라 황홀한 노랑과 빨강의 빛이 춤을 춥니다.

멋진 랭글러 한 대가 다가오더니
내 앞에 주차를 하였습니다.
멋있는 차입니다.

젊은이 한 사람이 내리더니
길을 가로질러 건너갑니다.

등에 England라는 글씨가 써진
운동복을 입었군요.

혼자 실소를 합니다.
차는 미제이고, 옷은 영국제?
사람만 조선사람이구만~~

저 멀리 아이가 오고 있을
두 번째 신호등 쪽에서
자전거 한 대가 오고 있습니다.

안장이 낮은 접는 자전거를 탄 젊은이가
맥주집 앞에 뒷바퀴를 미끄러뜨리고 서더니
그 집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머리를 똑같이 깎은 중학생 계집애들과
풋내가 나는 젊은 연인이 지나가고 나도
버스가 오지 않습니다.

학교 앞이라 뻘겋게 칠해 놓은
차도도 안개에 쌓여
무슨색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안개색인듯 합니다.

의외의 장소에서 아빠가 기다리는 것에 대해서 놀랍게 생각한 딸내미가
'아빠, 나 학원에서 칭찬 받았다~~'면서 팔짱을 낍니다.
구상을 참 잘했다며 학원에 놀러 온 손님이 그러더랍니다.
어제의 일이었죠.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달려올지 모릅니다.

담배를 피워 물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별로 싫지 않습니다.
담배연기와 안개가 어울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노란 버스가 옵니다.

딸내미가 어디 탔나 봅니다.

앞에 앉았었군요.

이틀째 기다려 주는 아빠에게
오히려 고마워합니다.

이렇다할 격려도
사랑도 주지 못한 애비의 마음은 모르겠지요.

오늘도 팔짱을 끼고
안개가 점점 짙어지는 길을 걸어서

얘기 꽃을 피우며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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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 구름선비님 글을 읽다보니
    우리집 작은애 입시때가 생각이 나는군요
    아이들이 올바르게 잘 크는 이유는
    부모로서 잘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잘 크고 있는겁니다 ^^
    따님이 자랑스럽겠습니다 ^^
  • 같은 고 3을 둔 아비의 마음인데...구름선비님과는 좀 다른 입장인 듯하여.....
    부럽기도 하고....

    저의 큰 넘도 수시에 붙어 지금 알바로 시간을 떼우고(??) 있긴 합니다만....
    원하던 대학이 아니라..참 마음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전공과는..사회복지학과....저로서는 나름 전망도 괜찮고....나중 1급 자격증만 획득한다면...
    그나마 청탁(??)이라도 해서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듯하여...
    적극 추천하였지만....

    정작 큰넘은 시쿤둥!!!

    누군(??) 마치 애인 기다리는 연인의 마음으로 버스 정류장에서...딸내미를 기다리는데...(흑!!)
    저는 요즘..12시 넘게 들어 오는 넘 ..마음 졸이며..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에미야 원래 초저녁 잠이 많기로 유명하여...잠자리에 든 지 오래....
    들어 오는 넘..늦은 저녁 챙겨 줘야 하고....
    기껏.... 하는 소리....
    " 다먹었으면..반찬은 냉장고에...그룻은 설겆이 통에...."
    "에~~안녕히 주무세요......"

    그리고 쿵!!!(자기 방 문닫는 소리.....)

    에고...팔짱은 커녕..팔을 꺾어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아~~~흑!!!
  • 풀민이님 남자애들 다 그래요 ^^
    커서 대학들어가고 군대에 다녀올때만해도 그때만 해도 내 아들인데
    취업을 하면은 이젠 내아들도 아니고 옆집아저씨가 되는겁니다
    한단계 넘어서 결혼을 하면은 내자식이 아니고 장모의 자식이 되는거고요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합니다 ^^
    그래도 나은것이 딸아이가 더 상냥하고 더 부모를 챙겨주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것은 또 아들아이 입니다 ^^
  •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라는 말이 있는 것 처럼,
    따님이 선비님 처럼 잘 해내리라 생각 합니다.

    따님 입학 하고 나믄,
    "벙개"도 치실꺼쥬~!!.....>.<::ㅎ 건강 쾌차 하시옵소서...^^
  • 풀민이님도 원...걱정도 팔자셩.....풀민님 보다 덩치가 크디 큰디....늦게 들어 온다고
    걱정이셔유....스트레이트가 어퍼 컷 같은 강도를 가진 아드님이건만....>.<:::
  • 제 딸애도 S대인데요.ㅋㅋㅋ(어~ 정말 편하다)

    선비님.
    한편으로는 머잖아 품을 떠나보낼 생각에
    아주 가끔씩은 미리부터 서운해지시진 않습니까?

    (풀민님은 툴툴거리시지만 마시고 아직 체력이 있으실 텐데
    늦둥이 한 개 맹글어 보실 생각은 않구..)

    =3=33=333=333333=3333333333333
  • 그러게요...청죽님....건장한 아들래미 둘씩이나 낞으실 체력이시믄....
    딸래미 정도야.....다 섯 정도 거뜬히 낞으실 체력이시쥬....^^b
  • 하이고...냐일....출근을 혀야 되는디....내..짐 머하고 있는지....술이나 좀 깨고 자야긋네예....^^::
    안냥히 주무세요...청죽님...^^
  • ㅋㅋㅋ
    술 얼렁 깨세요.
    안녕히 주무십시오.
  • 구름선비글쓴이
    2008.11.1 08:25 댓글추천 0비추천 0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 주셨네요. ㅎㅎ

    줌마누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에 많은 가르침이 됩니다.
    저도 요즘 그런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는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풀민이님,
    씩씩한 분위기에서 살고 계신데
    부드러운 분위기 만드실 의향 없으세요? ㅋㅋ
    청죽님도 응원하시는데….

    스카이님,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뭐해서
    한 잔 하고 들어오셨군요.

    靑竹님,
    그 S대 참 편하죠?
    세월이 수상하니 낭만도 줄어들고
    가을비를 맞아서 그런지 더 맴이 안 좋은데
    단비같은 초록 글씨의 글이 아쉽습니다.

    민초(맞나?)들을 위해
    애린 가슴 한 편에서라도
    초록 좀 짜내 주세요.

    이제 11월이 되고 말았군요.
    이 달도 웃을일이 가득하게 시작하세요.

    읽어 주신 여러분~~
  • 우리네 교육 풍토라고 해야 하나요? 아님, 생활 방식이 아빠들이 대개는 아이들 학교 생활이나 진학 문제에 그다지 신경을 안쓰고 있는, 아니 못쓰고 있는 형편이라고 해야겠네요...그런 면에서 보면 선비님께선 그야말로 선비님이십니다. 제 아이도 작년에 겨우 대학에 들어 갔는데, 이 놈의 못난 아빠의 욕심이 원치 않는 전공을 선택한 자식 녀석에게 이젠 장학금 좀 받아 보라고 졸라 대고 있네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부모들이 늘 자식들에게 하는 말이 욕심내지 말아라 하면서 우리 부모들이 더 욕심을 내는 건 어떤 연유인지요?ㅎㅎㅎㅎㅎ 오늘 늦은 밤에라도 아가들 방에 가셔서 이불이나 잘 덥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자, 자 우리 대한민국의 엄마 아빠들 기우들 내시구요.... 화이팅입니다.
  • 참, 이 참에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대부분의 아빠들께서 아이들 학교 생활이나 진학 문제에 관심을 못 보이고 계시는데, 올 해 제가 변변치는 않지만 고3 담임을 맞고 있습니다. 혹시 아이들 진학 문제로 궁금증이 있으신 분들께 다소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쪽지나 메일 등을 이용해 문의해 주신다면 성심을 다해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구름선비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한편의 서정적인 수필을 보는것 같습니다.^^
    우리네의 삶의 현장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가 가슴 한편을 찡하게 만듭니다.
    저야 뭐, 이제 다들 대학 졸업하고 나름 지들 밥벌이는 하고 다닙니다만,

    되세겨 보면 과연, 제 아이들에게 구름선비님이 보여주신 것 처럼 아빠의 정을 주었는지
    새삼 생각하게 하네요.
    저도 뭐 특별하게 신경 안쓰고 그저 사고나 치지말고 다녔으면 하는 바램 이였죠^^
    참고로 저는 딸만 둘 입니다.
    저보고 딸딸이 아빠라고 놀리던 친구나 후배넘들 지들도 딸딸이 아빠가 되었지만.........^^
    역시 키우는 재미는 딸이더군요^^

    구름선비님의 소망처럼 좋은 대학엘 가서 아주 훌륭한 제목이 될것 입니다.^^
    축하드려요 구름선비님.^^

    함께 라이딩 해본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척에 계신대도 찾아 뵙지도 못하구....................
  • 비 개인 날 아침 깔끔함 수필 하나를 읽고 나니 많이 먹어 더부룩했던 배가 사그르르,,,,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애 고마울 뿐입니다.

    댓글들도요...
  • 매일같이 눈팅만 하는 회원아닌 회원인데 글솜씨로보아 굉장히 다정 다감하실거란 생각이 묻어나는군요 구름선비님, 청죽님 연배는 저보다 훨씬 많으신거같구 한번쯤 잔 술 기울이며 만나보고 싶네요 11월의 첫날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글 고맙습니다
  • 구름선비글쓴이
    2008.11.1 19:28 댓글추천 0비추천 0
    잔차나라님,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 *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아이들 다루시기 얼마나 힘드십니까?
    저희 직장에 찾아오는 애들은 문제가 있는 애들이라서 그런지
    참 말이 아니더군요.
    더구나 3학년 담임을 맡으셨으니
    얼마나 힘드실지 예상이 됩니다.

    말발굽형님,
    한 번 뵈어야 되는데
    젊은 놈이 노인네 같이 되었습니다.
    항상 주시는 말씀 감사합니다.

    십자수님,
    가까이 살면서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건강하시다는 얘기만 들어야 하는데
    부상이시라니….
    변변찮은 글을 항상 호평을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mgmtb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우일모'가 저를 위해서 생겨난 고사성어라는 생각을 자주하는
    아주 답답한 사람입니다.

    청죽님과는 비슷한 나이입니다.
  • 따님과 팔짱끼고 걷는 모습...넘 부럽습니다.
  • 깊어가는 한 가을밤에 잔잔한.....아주 잔잔한 수필 감상 잘하고 갑니다....~~~ㅎㅎㅎ
    댓글이 늦었습니다....
    구름선비님~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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