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들어 볼 방송이 있다며
볼륨을 높입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질색을 하지만
저는 '날나리 신자'입니다.
마누라가 너무 강요를 한다고 생각하고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지론으로 살지요.
제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새벽기도를 다녀 온(그렇지 않은 날도 있지만)후
마누라가 극동방송을 켜 놓는 시간입니다.
출근을 위해서 알람을 맞춰 놓은 시간쯤 해서
매일 라디오를 켜 놓는 것이지요.
우리 속담에 '좋은 노래도 세 곡'이란 것이 있듯이
매일 설교를 듣는다는 것,
매일 찬송가를 듣는다는 것도 지겨운 일입니다.
그래서 라디오를 꺼 버리거나 TV나 컴퓨터의 스피커
볼륨을 더 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도 그런 날인데요.
쉬는 날이라
아침식사를 하고 나른한 기분에
침대에 누웠습니다.
어제 집 칠판에 보니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생각되는 프로그램이름과
시간이 메모가 되어 있고
'내일 꼭 들어봐야 된다'더니
그 시간이 되니 라디오의 볼륨이 높아진 것입니다.
피곤하거나 졸려서 누운 것이 아니고
아침에 눕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누운 것이라
곧 일어났습니다.
내용도 모르고 잡혀 일어난 거지요.
멋적어서 컴퓨터를 켜고 왈바에 접속했습니다.
잠시 후
진행자의 멘트에 마누라의 이름이 나오면서
'남자의 부분은 남자 진행자가 해 주시지요'라고 하네요.
(진행자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마누라가 사연을 올렸다는 것을 알고
MP3를 찾아 녹음기능을 찾는데
사연은 거의 다 읽어 내려가네요.
내용이 뻘줌하네요 ^^;;
뒷 부분만 녹음하고나서
극동방송 홈피에 가 봤습니다.
아래는 마누라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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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편이 달라졌어요!
원** (IP : 12*.18*.24*.3) 2008-11-05 22:53:38 28
(11월 7일에 방송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날 남편과 함께 듣고 싶습니다 )
"오늘은 딸래미 마중이나 나가야겠어" 남편이 말합니다.
'왠 일이래요 그런 생각을 다하고..'
며칠 전 늦은 시간, 남편이 입시생인 딸이 안쓰럽다며 외투를 걸치고 현관문을 나섭니다.
그 이후 계속 밤마다 딸과 함께 즐겁게 현관문을 열지요.
그 뿐만이 아니라 11월7일이 결혼 기념일인데 휴가를 냈답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믿질 않았는데 정말이라네요.
제가 믿을 수가 없었던 이유는 21년을 살면서 단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거든요.
결혼기념일이든, 생일이든 통 관심도 없었고
혹시나 하고 말을 꺼내면 "나 혼자 결혼했냐?"
"생일은 무슨 생일 그런게 어딨어 다 귀찮어"
하며 무시 했었던 남편인데
시간이 가고 나이 50이 넘으니
사람이 변하네요.
낙엽이 홍유릉 뒷 길에 흩날립니다
가을 빛이 낙엽 위로 쏟아지고
가을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아옹다옹 살아온지도 어언 이십여년
서로의 모난곳을 다듬기에 아파야 했던 시간들
이제 당신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옵니다
한 풀 꺾인 듯한 모습
인생의 가을에 스산함이 묻어나는 당신의 야윈 모습에
가슴이 저며옵니다.
이제 우리 서로 안쓰러움이 더해가는 나이
서로 보듬으며 감싸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서로 마주잡은 손 기도의 손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
당신과 나를 위해
이 땅에 평화를 위해
인생의 동반자로
기도의 동역자로
우리 결혼 이십 일주년을 맞아
당신께 정중히
손을 내밉니다.
사랑합니다.
(사진은 작년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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