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어느 날
마누라가 어디선가 연밥 한 개를 가져왔습니다.
썩음썩음한 오디오 스피커 위에 놓고 보고 있는데
보면 볼 수록 모양이 신기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 아파트의 모습을 보는 것도 같고
씨앗이 나온 모습을 보면
작은 어류들이 보금자리에서 눈만 삐죽이 내 놓고
쳐다보는 것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녹색이 좀 남아 있더니
이제는 거무틱틱하게 변했고
혹시나 먹을 수 있을까 하여 씨앗을 꺼내 씹어 보았지만
빈탕입니다.
연꽃은 불교를 연상하게 하는 꽃이죠.
초파일이면 절마다 등이 달리는데
연꽃모양이라 연등이라고 하나 봅니다.
오늘 저녁
이 연밥을 쳐다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름다운 꽃잎을 떨구고
남은 모습은 아름다움과는 멀지만
이 둔한 사람, 생각 없이 사는 사람에게
잠시 인생이라든가,
살아가는 한 구비에 대하여 고민하게도 합니다.
숭숭 뚫린 구멍에서 씨앗을 멀리하고 보면
블랙홀을 연상케합니다.
인생이 무엇이기에 싸움질을 하며
니전투구를 하는지~~
그저 잡다한 것을 빨아들여
저 심연 속으로 몰고 갈 것도 같습니다.
자신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싸우고 또 싸우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연밥의 꼭지를 잡고 앞으로 숙여 봅니다.
수많은 눈들이 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간혹은 토실토실한 것도 있지만
작고 여윈 검은 눈입니다.
얼마 전부터 결연하여 알게 된
동남아 최빈국의 어린아이 사진에서 본
그 눈입니다.
옛날 군대생활을 하면서
발표력을 높여 보겠다고
전 부대원이 모인 앞에 섰을 때
그 쳐다보던 동료들의 눈입니다.
항상 긴장하고 있었던
그럼에도 자부심을 느꼈던 그 병사들의
눈입니다.
일순
먹이를 채 가기 위해 맹수 옆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애나의 눈인 것 같기도 합니다.
씨앗을 들고 흔들어 봅니다.
바짝 마른 건조하고 경쾌한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가랑잎을 간지럽히는
작은 싸락눈의 소리와 같습니다.
가을 날
스산한 바람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아마 이 속에는
아침 안개와,
찰랑이는 물결과
청개구리의 노래가 깃들어 있을 겁니다.
그 옛날
단오날 펄럭이던 우리 누님들의
치마폭 색깔
아니,
무희들의 화려한 의상 색깔을 떨구고
겨울 삭풍을 기다리는
슬픔이 깃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연탄개스에 유명을 달리한
큰어머니의 동생,
저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참 많은 아픔을 간직한 시절이었죠.
연탄 두 장을 새끼줄에 꿰어서 들고 언덕길을 올라가는
헐벗은 판자촌 아이의 콧김이 들어 있을 것도 같은….
가을이 이미 무너졌고
찬 기운이 가득한 하늘을
가는 유성,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 소리,
아니면
머리가 짧고, 얼굴은 긴
이름 모를 베이스 연주자의 깡마른 손이
이 연밥
거죽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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