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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밥

구름선비2008.11.19 21:44조회 수 2394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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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어느 날
마누라가 어디선가 연밥 한 개를 가져왔습니다.

썩음썩음한 오디오 스피커 위에 놓고 보고 있는데
보면 볼 수록 모양이 신기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 아파트의 모습을 보는 것도 같고
씨앗이 나온 모습을 보면
작은 어류들이 보금자리에서 눈만 삐죽이 내 놓고
쳐다보는 것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녹색이 좀 남아 있더니
이제는 거무틱틱하게 변했고
혹시나 먹을 수 있을까 하여 씨앗을 꺼내 씹어 보았지만
빈탕입니다.

연꽃은 불교를 연상하게 하는 꽃이죠.
초파일이면 절마다 등이 달리는데
연꽃모양이라 연등이라고 하나 봅니다.

오늘 저녁
이 연밥을 쳐다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름다운 꽃잎을 떨구고
남은 모습은 아름다움과는 멀지만
이 둔한 사람, 생각 없이 사는 사람에게
잠시 인생이라든가,
살아가는 한 구비에 대하여 고민하게도 합니다.

숭숭 뚫린 구멍에서 씨앗을 멀리하고 보면
블랙홀을 연상케합니다.

인생이 무엇이기에 싸움질을 하며
니전투구를 하는지~~

그저 잡다한 것을 빨아들여
저 심연 속으로 몰고 갈 것도 같습니다.

자신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싸우고 또 싸우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연밥의 꼭지를 잡고 앞으로 숙여 봅니다.

수많은 눈들이 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간혹은 토실토실한 것도 있지만
작고 여윈 검은 눈입니다.

얼마 전부터 결연하여 알게 된
동남아 최빈국의 어린아이 사진에서 본
그 눈입니다.

옛날 군대생활을 하면서
발표력을 높여 보겠다고
전 부대원이 모인 앞에 섰을 때
그 쳐다보던 동료들의 눈입니다.
항상 긴장하고 있었던
그럼에도 자부심을 느꼈던 그 병사들의
눈입니다.

일순
먹이를 채 가기 위해 맹수 옆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애나의 눈인 것 같기도 합니다.


씨앗을 들고 흔들어 봅니다.
바짝 마른 건조하고 경쾌한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가랑잎을 간지럽히는
작은 싸락눈의 소리와 같습니다.

가을 날
스산한 바람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아마 이 속에는
아침 안개와,
찰랑이는 물결과
청개구리의 노래가 깃들어 있을 겁니다.

그 옛날
단오날 펄럭이던 우리 누님들의
치마폭 색깔
아니,
무희들의 화려한 의상 색깔을 떨구고
겨울 삭풍을 기다리는
슬픔이 깃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연탄개스에 유명을 달리한
큰어머니의 동생,
저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참 많은 아픔을 간직한 시절이었죠.
연탄 두 장을 새끼줄에 꿰어서 들고 언덕길을 올라가는
헐벗은 판자촌 아이의 콧김이 들어 있을 것도 같은….

가을이 이미 무너졌고
찬 기운이 가득한 하늘을
가는 유성,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 소리,

아니면
머리가 짧고, 얼굴은 긴
이름 모를 베이스 연주자의 깡마른 손이
이 연밥
거죽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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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가끔 구름선비님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감성이 풍부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하고 너무 다르시네요.
    한번 같이 라이딩 할 기회가 있겠지요.
  • 잔잔한 에쎄이......
    잘 보고 갑니다~~^^~
    어느덧 찾아온 겨울한파가 매섭습니다.
    건강 하세요~
  • 연밥을 앞에두고 꼼꼼하게 들추어보고 이것저것 연상해 보는 글쓴이의 다정한 마음이 그려지네요.
  • 자전거계의 철학자 같습니다.^^
  • 호오... 아무리 생각해도...술 취한 수많은 부류들의 휴먼들을 상대하느라...
    제가 보기엔 나이(?)에 걸맞지 않은-선비님 죄송- 글이 가능한지도 모릅니다. ㅋㅋㅋ

    아무튼 선비님이나 청죽님이나 참~~ 글들이 의미 있고 예쁘고 그 안에는 수많은 은유가 있음은 부인 못합니다.

    예전 고구마싹이 생각나는...
  • 늘 느끼는 것이지만....
    구름선비님 글들은.....생각을 하게(??) 하는 힘이 있는 듯합니다.....
  • 연밥에 씨알을 어항이나 물에 담가 놓시면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싹이납니다.
    신기하죠 연꽃 길러보세요.. 전 저거보면 벌집이 생각납니다.
  • 사진을 한참 보았습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연밥 하나속에 구름선비님 철학이 많은 지난일을 생각하게 하시내요
    작고 검은 여윈눈 !
    연탄한장에 세끼줄을꿰어 ~~~이런거 요즘 사람들 아실라나 ! ^^*
  • 매우 서정적인 글이네여 ^^
    눈발까지 날리는 오늘 춥고 쓸쓸한 내 맘이 따뜻함을 느낍니다,,,,
  • 구름선비글쓴이
    2008.11.20 14:53 댓글추천 0비추천 0
    여기 남양주에도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땅에 떨어지자 마자 녹아 버리지만
    그래도 첫 눈이라 반갑습니다.

    tom124님,
    감성이 풍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꼭 그렇게 보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ㅎㅎ

    lady99님,
    항상 좋은 댓글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추위에 떨지 않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순님,
    거창한 글은 쓰지 못하고 주위에 있는
    보이는 것, 경험한 것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daboom님,
    당치도 않습니다. ㅎㅎ

    십자수님,
    오늘 집에 계신가요? 아파트 밖을 보시면
    눈이 제법 오고 있죠?

    전에 뜻하지 않게 문자를 씹어서 미안합니다.

    풀민이님,
    풀민이님처럼 멋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토양(?)이 약하여 좋은 글은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하얀미소님,
    그런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어개는 씨앗이 좋은 것 같으니까
    한 번 실험해 보아야겠습니다.

    lesaac님,
    참 멋있게 사시는 분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모님(누님)
    저는 연탄을 들고 다녀 보지는 않았지만
    조금 도시(?)로 나가보니 그렇더군요.
    오늘 직장에서 얘기를 꺼내보니
    나이가 좀 적은 친구들도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본 것도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ronin78님,
    날씨가 차 지니 어려가지 생각이 난 모양입니다.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 조그만 사물 하나를 앞에 놓고 요모조모 뜯어보시며
    이렇듯 뛰어난 감성으로 상념에 잠기시는 걸 보니
    가을을 꽤 많이 타시는...아차차..지금은 겨울이죠?
  •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디테일이 뛰어난 수작입니다.
    사진 한장에서 우주를 보고 갑니다.
    늘 건강하소서...
  • 좋은글임에도 불구하고,
    연밥 사진만 보면, 몇 년전에 인터넷 상에 떠돌던 '연밥소녀' 사진이 생각나요~ 으 끔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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