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가 코팅이 많이 벗겨졌다며
커다란 프라이팬을 버리려는 마누라를 말렸었는데
그 덕분에 올겨울에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집에서 군고구마를 굽기에는
이 철판(?)프라이팬이 참으로 안성맞춤인 것이다.
고구마를 은박지로 일일이 싸는 방법도 좋지만
그러려면 은박지가 많이 들므로 효율적이지 않다.
고구마를 켜켜이 쌓아도 이렇게 커다란 은박지로
프라이팬 위를 밀봉해 열기가 빠져나가는 걸 막아 주고
아주 약한 불에 한 시간 정도 서서히 구우면
겉은 물론 속까지 고르고 완벽하게 익는다.
맛?
물에 삶은 고구마의 맛과
불에 익힌 군고구마의 맛은
적어도 내 느낌으로는 천양지차다.
당연히 군고구마의 손을 들겠다.
호박고구마들에 둘러싸인 시커먼 놈은
타서 그런 게 아니고 껍질과 속살이 짙은 자주색인
자색고구마라는데 나도 오늘 처음 본다.
'얼렁 맛을 봐야지..푸헬헬헬'
[장모의 정성]
젊어서 낭군을 여의고 혼자가 되신 장모는
정말 대단한 여장부다.
4남매를 홀로 키워내면서도
빈농에서 논을 60여 마지기까지 늘린 양반이니
그네의 근검절약하는 생활이 얼마나 철두철미했는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이젠 당신께서 팔순이 넘으셨으니
자식들이 서울로 모시겠다고 해도
아무도 없는 촌가에서 막무가내로 홀로 지내신다.
가끔씩 들려 며칠씩 지내곤 하는 공간 즉,
아들들이 사는 도시의 아파트란 주거 공간이
그녀에겐 도무지 숨막히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낮엔 불편한 다리일망정
내 밭과 내 논을 싸목싸목 다니며 돌보고
밤이면 아직 죽지 않고 버티고 있는 아래,위 또래 노인네들을
마실을 다니며 만나고 웃고 떠드는 일상이 몸에 절었으니
더구나 도시가 주는 답답함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이다.
'따르릉'
"여보세요? 엄마야?"
"잉..오늘 고구마 몇 박스 보냈어.
우에 치는(위의 것은) 좀 상한 것잉께
싸게싸게 쪄서 먹어야 혀. 통화료 많이 나와. 끊어!!!"
'짤깍'
아무튼 고구마와는 원수지간이었던 내가
작년 가을 무렵부터 장모님 덕에 화해를 하게 되었다.
장모가 보내는 고구마는 그녀가 직접 농사지은 것이 아니다.
걷이를 끝낸 다른 집 고구마밭을
절룩거리는 불편한 다리로 돌아다니시며
미처 걷어가지 못한 고구마를 이삭을 줍듯 주우신 것인데
그러다보니 쇠스랑이며 호미에 찍혀 상채기가 난 게 태반이고
상한 것도 많았다.
"아이 참, 궁상맞게 뭘 이런 걸 다 보냈대?
버릴 게 태반이네. 하여간 노인네가 씨잘데기 없는 일을 해요"
마누라는 내 눈치를 흘끔 살피며
불경스럽게도 제 어미를 타박하는 시늉을 냈다.
난 그런 마누라를 잠시 바라보고는
이내 고구마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난 뒤
참으로 오랜 동안 상념에 젖어들었었다.
'대관절 장모는 마실을 다니기도 힘든 걸음걸이로
이 정도의 고구마를 모으시려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 건 물론이었고
고구마에 얽인 가난한 시절의 지긋지긋한 기억이
주마등같이 이어지며 더욱 상념에 잠겼더랬다.
주책없는 마누라는 그런 나의 모습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
또 헛소릴 했다.
"여보? 이거 그냥 내다 버릴까요?"
"응? 무슨 소리야? 벌받을 소릴?"
철천지 원수라 입에 대지 않았던 고구마였다.
커다란 양푼에 담아 수돗물에 흙을 씻어내고
상하고 병든 데를 꼼꼼하게 도려내는 등
도시로 이사온 뒤 처음으로 그 원수를 정성스레 다듬어
솥에 쪘다.
'뚜르르'
"엄마! 나야"
"잉..왜?"
"손서방 참 희안한 양반이네?"
"왜 그란디?"
"다른 건 안 먹고 곧잘 버리는 양반이
엄마가 보내 준 고구마는 버리는 거 하나 없이
어찌나 결사적으로 다듬어서 쪄 먹는지 정말 신기해.
나도 질리고 애들도 질려서 이제 아무도 안 먹는데
그 많은 고구마를 손서방 혼자 다 먹었다니까요?
이 냥반이 평소 고구마가 싫다며 입에 대지도 않았다는 거 아뉴"
"얼래? 뭔 일이다냐? 별일이네.호호호"
뭐 하나 그녀에게 해 드리지 못한
지지리도 못난 사위지만
장모는 그런 사위가 자신이 보낸 고구마를
맛있게 먹었다는 소식에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단다.
이젠 사위에게 고구마를 보내는 일이
그녀의 커다란 낙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녀가 보낸 고구마를 먹으며
젊어서 과부가 된 한 여자의 가엾은 한을
조심스럽게 맛본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일년 중 대부분을
고구마만 줄창 먹고 사는 어린시절이었기에
고구마를 향한 철모르는 적대감은 실로 대단했었지만
그녀가 보낸 고구마를 먹으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시절을
가슴이 아프도록 그리며
고구마에게 화해를 구하고 용서를 빌며 먹는다.
그녀가 보낸 고구마를 삶으면
수확한 고구마를 두 가마니나 지셔서
다리가 부러질 듯한 지게를 버겁게 지시고
고개를 둘이나 넘도록 쉬지 않으시던
아버님의 어깨에서 무럭무럭 피어오르던
땀냄새 물씬 풍기던 그 김이 솥에서 피어오른다.
고구마를 먹으며 자주 눈을 흐린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니'
'그게 고구마라니...'
아무튼 작년에 4박스,
올해 4박스, 참 많이도 먹었다.
거의 나 혼자서 먹은 것이다.
올해분 마지막 두 박스는 모두 구워서 먹었다.
고구마 만세!!
군고구마 만세!!!
남자 육상 백미터의 신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가
고구마와 비슷한 얌이란 뿌리식물을 많이 먹어서
그런 불가사의한 힘을 낼 수 있다고 서방의 과학자들이
분석했더군요.
혹시 고구마를 많이 먹으면
자전거도 잘 타게 되지 않을까요?
=3=33=3333
나는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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