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몸무게를 쟀을 때(오른쪽) 심각한 영양실조를 보였던 베네샤 루이스(4)가 회복돼, 지난 11일 아이티 남동쪽에 위치한 베에도란지에서 걷고 있다.(왼쪽) 올 초 곡물가 폭등으로 식량위기를 겪은 아이티에선 8~9월 4차례의 열대성 폭풍우가 덮치면서 식량위기가 심해져 793명이 숨졌다. 베에도란지/ AP 연합
저처럼 귀엽고 천진난만한 아프리카 아이들은 예전의 나처럼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 찌던 체질의 말라깽이가 아니라 그야말로 피죽도 못 먹어 저렇게 된 말라깽이다. 열강들은 아프리칸들을 수없이 잡아다 노예로 부리고도 모자라 국가란 개념이 별로 없던 부족들을 이리저리 편의대로 갈라 수많은 식민지 신생국들을 만드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종족간, 부족간의 끔찍한 내전이 끊이지 않게 만든 한 원인이 되었다. 인류의 시원이라는 저들의 영광은 언제쯤 오려는지.
라이딩 도중 앞에 가는 일행이
헐거운 맨홀뚜껑을 밟고 지난다.
"탱! 딸그랑"
그 뒤로 내가 거길 지난다.
"텅! 콰다당"
사뭇 다른 파열음에 그만 속으로 감탄하고 만다.
'와~ 고수는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다르군.
저렇게 소리를 죽여가며 사뿐히 지나는 걸 보니"
자전거를 바꿔서 타 보자기에 바꿔서 타는데
그의 잔차는 하드테일이고 나의 잔차는 풀샥이다.
"풀샥이라 푹신하니 좋죠?"
하고 물었더니
"아뇨? 왜 이렇게 딱딱해요?"
한다.
"헛? 그럴 리가 없는데요?"
옆으로 다가가 자세히 보니
체중을 가만히 얹었을 때 샥이 들어가는
새그가 거의 먹지 않고 그대로가 아닌가?
"당연하죠. 청죽님께서 저보다 체중이
십 몇 킬로는 더 나가시니 하하하"
그제야 비로소 난 말라깽이가 아니고
작은 키에 체중이 74킬로나 나가는
묵직한 '건데기'라는 걸 깨달았다.
내 자신이 체중이 왜소하고 비쩍 마른 인간이라는
아주 오래된 고정관념을 아직도 벗지 못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체중이 52kg.
이 체중은 조금도 변함없이 무려 25년 가까이 유지됐었는데
나의 형제들인 여섯 남매들이 하나같이 말라깽이었었다.
오죽하면 말라깽이 자식들이 안쓰러우셨던 어머니께선
티비에서나 현실에서나 뚱뚱한 사람들을 보면
"허이고~ 풍채 한 번 좋네"
하고 부러워하셨을 정도다.
그렇게 오래도록 말라깽이로 지내다 보니
어떤 사람을 만나도 나보다는 체격이 클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점점 굳어져 갔다.
그래도 깡은 대단했다고 자부한다.
아버님을 도와 어릴 때부터 곡괭이질이며
삽질, 톱질, 농약살포기 분무기질을 거의 매일 한 덕분인지
왜소하고 깡마른 체격에도 불구하고 힘이 약하진 않았다.
서울로 전학을 온 뒤 반 아이들이 팔씨름을 하느라
시끌벅적한 가운데 끼어들어
"나도 한 번 해 보자"
하고 끼어들었는데
깡촌에서 전학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까무잡잡하고 깡마르고 쬐그만 놈이 덤비니
아이들이 배꼽을 쥐면서 웃고 난리가 났었다.
"으하하하하!!! 떽! 아무나 끼는 게 아니다 얘"
그러나 막무가내로 끼어들어 팔씨름을 시작했는데
하나,둘 꺾어나가다 결국 가장 힘이 센
육상부원 녀석마저 오랜동안 엎지락뒤치락거리다
꺾어버렸다.
혁명적인 분위기에 놀란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팔씨름에 진 녀석들은 오늘 컨디션이 안 좋다느니
어젯밤 이웃집에서 싸우는 통에 시끄러워
잠을 설치는 통에 힘이 없다느니 핑계를 대면서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전날의 믿을 수 없는 패배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계속 도전을 해 왔었다.
결국
"이상한 놈. 너 무슨 무술 배우냐?"
하는 의아해하는 물음과 함께 항서를 받아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깡말랐던 내게 변화가 왔다.
마흔 초중반을 넘기면서 점차로 불기 시작한 몸집이
이제 딸뇬한테서 '이왕표'란 놀림을 받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미니 이왕표?"
"우하하하! 아빠! 미니라는 꼬리표 붙여서 튀시려구? 어딜?"
아닌 게 아니라
파자마에 런닝셔츠 차림인 거울 속의 날 보니
사이즈가 작은 런닝셔츠를 입어도
26인치의 허리며 왜소한 어깨 언저리가 늘 남아돌아
헐렁하던 예전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런닝셔츠가 팽팽하고 배가 불룩한 띨띨한 인간이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저게 정말 나의 모습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이십 몇 년을 말라깽이로 지내며 뇌리에 각인되었던
'난 말라깽이야'라는 고정관념의 관성은 지금도 여전하니
부지중에 차이가 나는 맨홀뚜껑 소리를 듣고
정확하게 소화하지 못했던 것이다.
십여 년 잔차질의 경험으로는
체지방을 태워 체중을 줄이는 유산소 운동으로
좋아하는 싱글코스 라이딩보다는
아무래도 도로라이딩이 훨씬 더 유효하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있다.
아무래도 도로라이딩이 지속적이고 꾸준한
그리고 장시간의 유산소 운동이 좀 더 가능한 게
이유일 것 같다.
요즘 거의 열흘 이상 거의 매일 50여 킬로 이상
도로라이딩을 했더니 체중이 3kg이상 줄었고
배도 조금 들어간 게 눈에 띈다.
(식구들은 모두 인정하지 않지만..ㅠㅠ)
일전에 강촌 시합코스를 타면서
앞에 가시는 갑장을 따라가느라
마지막 고개에서는 난생 처음 다리가 풀리는
경험을 했다.
어머니처럼 나도 한때는
어느 정도 뚱뚱한 모습을 동경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그 생각을 거둘 때가 온 것 같다.
말라깽이 시절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던 것이다.ㅋㅋ
'까짓..52kg까지는 안 되더라도
대충 60kg 언저리로 되돌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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