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파란만장 [波瀾萬丈]
[명사]사람의 생활이나 일의 진행이 여러 가지 곡절과 시련이 많고 변화가 심함.
지난 가을 이 게시판에 딸내미의 수시에 대해서 쓴 적이 있습니다.
http://www.wildbike.co.kr/cgi-bin/zboard.php?id=Freeboard6&page=1&sn1=&divpage=16&sn=on&ss=on&sc=off&keyword=구름선비&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3212
대학 두 군데에서 수시 실기시험을 보았고 수능 성적에 따라 한 군데는 안정권, 다른 곳은
50%정도의 확신을 하고 있었죠.
대학에 무난히 가게 되겠구나 하는 가족들의 바램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수능에서 한 과목을 초치는 바람에 두 대학 모두 낙방을 한 것이지요.
비교적 쉽다고 생각했던 사회탐구의 한 과목에서 최저등급을 충족치 못하는 점수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1점 차이라는군요.
비교적 어렵다는 H대의 실기를 보고 와서도 표정이 좋았었는데
수능을 보고나서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다시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 과목 하나 때문에 서울의 H대는 점수에서 걸리고
그 학교 지방캠퍼스에 응시를 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날이라 무거운 짐(미대생들의 보따리는 꽤 무겁습니다.ㅎㅎ)을 들고
지방캠퍼스 기숙사에서 1박을 하고 실기시험을 보고 온 딸내미는
'합격해도 안 간다.'고 했습니다.
'학교의 정문은 평지에 있지만
기숙사에 갈려면 산을 넘어 가야 하고,
대학 건물에 가는 것도 산을 또 하나 넘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 산을 넘는데 다른 수험생들은 부모들이 차에 태우고 왔는데
부모가 따라오지 않은 학생들 일부가 무거운 짐을 들고 산을 넘는데
눈물이 났다는 겁니다.
'그게 네가 선택한 길이고,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겪는 일 아니냐'고
아이를 윽박질렀습니다. 마음이 좋지 않더군요.
그 학교 말고도 서울의 두 학교에 응시해서 실기시험을 보았습니다.
한 군데는 전에 2차까지 합격했다 떨어진 S대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S여대입니다.
나중에 결과를 보니
H대는 합격, S대는 후보 29번,
또 다른 S여대는 후보 90번이더군요.
대학입학을 눈치전쟁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H대(지방캠퍼스지만)는 비교적 세다고 생각하는데 합격인데
약하다고 생각하는 S여대는 불합격이라니~~
가, 나, 다군과 상관이 없는 S대는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꼭 지원하는
그런 곳이랍니다. 후보 29번이었지만 몇 바퀴를 돈다고 합니다.
몇 바퀴를 돈다는 것은
합격한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더 좋은 학교에 이중으로 합격을 하였을 경우
더 좋은 대학으로 가서 예비 합격자가 합격이 되고 그것이 몇 바퀴를 돈다는….
최종적으로 두 군데는 합격을 하고,
S여대는 예비40번이었다고 합니다.
며칠간의 고민(저와 마누라의 고민이었지요.ㅋㅋ)끝에
지방에 있는 대학을 포기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명성에 있어서는 H대가 낫지만 학과가 취업의 폭이 좁을 것 같다는 문제와
그 산(山) 때문에 포기한 겁니다.(딸내미)
허긴 전부터 그 학교에 가는 것이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군대 간 아들녀석이 제대하면 같이 2학년이 되어
대학생이 두 명이 되고, 둘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다닐려면
자취가 불가피하여 세집 살림을 할 뻔 했습니다.
국공립대라 등록금도 3백만원 초반이라
5백만원대 중반의 H대 보다는 저렴하고~~
하급 공무원인 저야 돈이 덜 들어서 좋지만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잘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엊그제
아이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고친 필카의 먼지를 털어 들쳐 메고 갔는데
교실에 딸내미의 얼굴이 보이지 않더군요.
강당을 이제 짓고 있는 신생 학교라
시청각실에서 조촐하게 졸업식을 거행하고
다른 학생들은 TV 모니터로 바라다보는 그런 방식이더군요.
졸업하는 아이들은 어른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진한 화장을 하고 나왔더군요.
교복에 화장이라곤 전혀 하지 않고 간 딸내미와는 많이 다르단 걸 알았습니다.
식장에 가 봤더니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감동도, 아쉬움도 거의 없는 졸업식이었습니다.
수상자 중 몇 명은 교장실로 오라는 멘트가 있었는데
두 명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아 왔더군요.
자신감에서 시작해서
의외의 결과로 좌절했다가
겨우 대학을 가게 되는 아이를 보면서
이런 것도 작지만
파란만장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제 아이나 부모 모두 가지고 있던
高三病을 떨쳐버리고 등록금 걱정이나 해야겠습니다.
아이는 졸업과 동시에 다니던 학원에서 보조교사로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