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분들의 내용자체는 인정이 됩니다만 성경은 그런식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을 몰랐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전부 지옥에 갔다고 주장하는 것이야 말로 성경의 왜곡입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무조건 지옥행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들어간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연옥에 간다는 주장도 성경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복음을 듣고 그 것을 거부한, 즉 인간의 자유의지로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고 했지 복음을 듣지도 못한 사람들이 전부 지옥에 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싫어했던 부류는 특히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뒤를 이어 사도들도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고 그들로 인해 발에 묻은 먼지를 떨면서 단절해야만 했습니다. 지옥을 가는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봅니다. 그외에 고통받는 일반 백성들에 대해선 동정과 사랑으로 차분하게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으로 인도하신 것을 확인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이 이런데도 무조건 지옥을 들먹이며 강압적인 전도는 오히려 복음 전파의 방해물이 될 뿐입니다.
사실 지옥은 마귀들을 위한 곳이지 인간을 심판하기 위하여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사람은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고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듣지도 못한 사람이 무조건 지옥행이라면 심판을 왜 한다고 기록이 되있을까요?
그 판결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지 성경이 침묵한 사안에 대해 지옥간다는 주장은 성경을 왜곡한 억지 해석입니다.
그리고 목사나 신부 제도는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여자 집사 권사등도 성경적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목사제도 자체가 없는데도 여기에 더하여 여자목사를 내세우니...
자기의 도그마를 성경 몇구절과 연관시켜 마치 최종적인 진리인냥 내세우다 보면 무리수가 들어가고 억지해석이 끼여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용감무쌍하게 아무데서나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고 이것을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자기 최면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누가 제지를 하면 복음을 위해 핍박받는다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하는데, 성경은 그런식의 전도 방법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사도들과 그 제자들이 복음을 전한 것을 보면 신실한 그들의 생활이 있었고 차분하게 성경을 앞세워 전도를 했습니다. 생활의 열매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성경을 차분하게 문맥을 따라 읽으면 인간의 근원이 무엇이며 왜 고통을 겪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단순한 믿음, 생활 속에 나타나는 열매를 맺으라고 성경은 먼저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도와 말씀 전파는 다음의 순서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하게되면 엉키게 되고 본말이 전도되어 사람들의 눈쌀이 찌뿌려지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초대 교회는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기록되있는데 현재는 기독교라고 하면 정치와 맞물려 거부감을 먼저 주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적 실행이 없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본래의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 영향력이란게 교인수가 아닌, 초대교회 때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는 그런 영향력 말입니다. 감리교 초입 시절 은행은 감리교인이라는 말 한마디에 서슴없이 돈을 빌려주었다는 그런 평가가 없다는 것은 믿는 사람들이 정말 깊이 생각해 봐야할 문제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명제는 오늘날에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연옥에 간다는 주장도 성경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복음을 듣고 그 것을 거부한, 즉 인간의 자유의지로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고 했지 복음을 듣지도 못한 사람들이 전부 지옥에 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싫어했던 부류는 특히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뒤를 이어 사도들도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고 그들로 인해 발에 묻은 먼지를 떨면서 단절해야만 했습니다. 지옥을 가는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봅니다. 그외에 고통받는 일반 백성들에 대해선 동정과 사랑으로 차분하게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으로 인도하신 것을 확인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이 이런데도 무조건 지옥을 들먹이며 강압적인 전도는 오히려 복음 전파의 방해물이 될 뿐입니다.
사실 지옥은 마귀들을 위한 곳이지 인간을 심판하기 위하여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사람은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고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듣지도 못한 사람이 무조건 지옥행이라면 심판을 왜 한다고 기록이 되있을까요?
그 판결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지 성경이 침묵한 사안에 대해 지옥간다는 주장은 성경을 왜곡한 억지 해석입니다.
그리고 목사나 신부 제도는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여자 집사 권사등도 성경적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목사제도 자체가 없는데도 여기에 더하여 여자목사를 내세우니...
자기의 도그마를 성경 몇구절과 연관시켜 마치 최종적인 진리인냥 내세우다 보면 무리수가 들어가고 억지해석이 끼여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용감무쌍하게 아무데서나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고 이것을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자기 최면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누가 제지를 하면 복음을 위해 핍박받는다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하는데, 성경은 그런식의 전도 방법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사도들과 그 제자들이 복음을 전한 것을 보면 신실한 그들의 생활이 있었고 차분하게 성경을 앞세워 전도를 했습니다. 생활의 열매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성경을 차분하게 문맥을 따라 읽으면 인간의 근원이 무엇이며 왜 고통을 겪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단순한 믿음, 생활 속에 나타나는 열매를 맺으라고 성경은 먼저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도와 말씀 전파는 다음의 순서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하게되면 엉키게 되고 본말이 전도되어 사람들의 눈쌀이 찌뿌려지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초대 교회는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기록되있는데 현재는 기독교라고 하면 정치와 맞물려 거부감을 먼저 주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적 실행이 없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본래의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 영향력이란게 교인수가 아닌, 초대교회 때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는 그런 영향력 말입니다. 감리교 초입 시절 은행은 감리교인이라는 말 한마디에 서슴없이 돈을 빌려주었다는 그런 평가가 없다는 것은 믿는 사람들이 정말 깊이 생각해 봐야할 문제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명제는 오늘날에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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