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사패산이 가까와 자주 오르다 보니
초창기 몇 군데 내리던 곳을 무난히 돌파하기에 이르렀으나
이태 전쯤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자전거를 게을리하게 되니
체중도 무척 늘었고 근력도 눈에 뜨이게 줄어
오르자니 요즘은 그저 죽을맛이다.
그렇지만 위인이 변변찮은 꼬라지임에도
말도 안되는 좌우명을 꿍꿍이에 새기고 다닌다.
'한 번 정복한 길은 절대로 내리지 않는다.'
요즘 다시 열정을 되찾아 열심히 타긴 타지만
예전의 체력을 찾기란 아직 요원한 것 같다.
특히 그놈의 체중 ㅡ,.ㅡ. (특히 뱃살)
그래도 몸무게가 조금씩이나마
줄어가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 낙담하기엔 이르다.
'내리지 말아야 하는데'
누가 강요하거나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혼자 만의 속꿍꿍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낑낑 오르면서 온갖 작전과 요령을 짜낸다.
한 구간을 돌파하고 나서 완만한 경사가 나오면
그저 넘어지지 않을 속도로 세월아네월아 꿈지럭거리며
피비린내 물씬 풍기는 것만 같은 거친 호흡을 추스린다. 헥헥.
십수 미터 정도의 알토란 같은 완만한 경사 구간을 만나면
커다란 들쥐를 삼킨 비얌보다 더 꿈지럭거리며 숨을 고르는데
그러다 보면 호흡이 어찌어찌 가라앉긴 가라앉는다.
두어 번의 고비를 넘기니 드디어 약수터에 도달.
'자! 고지인 매표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매표소까지 가려면
나무계단 옆으로 치고 올라가야 되는 곳이 대여섯 군데 나온다.
그 중 두어 군데는 울퉁불퉁한 턱에 마사토가 깔려 있고 경사도 있어
헛바퀴가 곧잘 돌게 되는 경우를 각오해야 하는데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자칫 조향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옆의 나무 계단 쪽으로 넘어지거나 바깥쪽 턱에 걸려 좌초하고 만다.
약수터 옆의 나무뿌리들을 넘어 나무계단 두 곳을 우회하여 오르고 나니
가빠진 숨은 이제 좌우명을 과감히 깨뜨릴 것을 명령한다.
'그래, 무리야. 다음에 나오는 계단 밑에서 좀 쉬었다 가자'
그런데 계단 쪽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초딩들이 자연학습을 나온 것인지
인솔교사와 함께 왁자지껄 계단을 내려오는데
한 초딩이 막 깨뜨리려던 나의 좌우명을 고스란히 구해 주었다.
"아저씨 멋있다. 여기도 타고 올라가시나요?"
"그러~~~엄. 당근 타고 올라가야지"
(어쨌거나 아이들의 꿈을 깨면 안 된다)
모진 숨을 몰아쉬면서 흔들리는 핸들바를 움켜쥐고
안간힘을 쓰는데 녀석의 말이 뒷통수를 또 때린다.
"와! 아저씨 괜찮으시겠어요?"
"어억...그르훼~!!!!"
('어, 그래'를 발음한다고 했지만
거친 호흡은 국적 불명의 언어를 파생시켰다)
아무튼 인솔 여교사의 박수까지 받으며
무사히 오른 것은 하늘의 가호가 있었음이렸다?
이제 정말 내려서 좀 쉬었다 가야 된다.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저 웬수같은 초딩 일행들이
안 보이는 곳까지만 더 오르자.
아뿔싸! 가장 힘든 나무계단에 도달할 무렵,
위에서 또 한 무리의 초딩들이 시끌벅적 내려온다.
일행이 또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야 한다. 이 아이들은 무시하기로 하자'
생각하고 잔차에서 막 내리려는데
이 무서운 초딩들 사이에서 얄타회담이 이미 열렸으며
듣지 말았어야 할 회담 내용을 얼핏 들은 난 사색이 되고 말았다.
"와! 멋있다! 자전거다!"
"여기 오는 자전거들은 이런 곳쯤은 다 타고 올라가"
"그래그래, 맞아! 나도 몇 번 봤어! 정말 신기해!
저 열강 수뇌들, (헉 아니닷!)
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을 또 주어야 하는데
조금 전까진 시지프스의 노역이면 됐는데
턱까지 차오른 숨은 이제 시지프스의 고단함에
프로메테우스의 고통까지 강요한다.
그래도 똥말에 박차를 가하며 아둥바둥 핸들바를 움켜쥐고
겨우겨우 비틀거리며 오르는데 성공하긴 했다.
인솔교사의 '대단하시네요'소리만 얼핏 들린 것 같은데
뒤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는 귓전에서 부서지는지
가물가물 멀어져 간다.
'아이고'
지상 과제를 모두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굽어진 길을 조금만 더 올라 저 초딩 무리들을
시야에서 지워야 한다.
그리고 배터지게 쉬자.
그런데 그 찰나,
앞에서 또 초딩 머스마 세 녀석이 내려오는데
덩치도 제법 큰 것이 6학년 정도 돼 보인다.
날 보더니 건네는 말도 포스가 있어 보이는 게
낙오병은 절대 아니고 6학년이 확실한 것 같다.
"와! 자전거 쩐다!"
"와! 정말!"
"아저씨, 저기 타고 올라가 보세요!"
"시끄러웠! 이녀석들아!!!!"
(꿈이고 뭐고)
"에에!! 이 아저씨는 여기 못 올라가나 봐"
"켈켈켈 (실성해간다) 얼렁 집에 가서 숙제들이나 했!!!"
옆길로 조그맣게 난 오솔길로 이십여 미터를 헤집고 들어가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보는데 하늘이 많이 노란 게
꼭 황사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에효~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것도 좋지만
앞으론 내꿈도 종종 꾸어야지'
좌절하지 말자. 토종임에도 74킬로까지 불었던 체중이
현재 체중 71킬로, 60킬로 대를 호복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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