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선비의 유래가 있습니다.
유래라고 하니 뭐 대단한 것 같네요. ㅎㅎ
옛날 이십 몇 년 전에 직장 동료와 그야말로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는데
그 때 화제가 글씨 쓰는 동료의 號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같이 사진을 찍던 동료가 저에게
'구름을 잡는 사람'이란 뜻으로 '雲士'라는 호 아닌 호를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농담으로 그런 것인데 그게 좋더군요.
허긴 누가 저에게 호를 지어 주겠습니까. 그런 일이 아니면~~
왈바에 가입하고 얼마 후에 영문으로 된 ID가 마음에 들지 않아
雲士를 풀어쓰다 보니 우스꽝스런 '구름선비'가 탄생을 한 것입니다요.
하고자 하는 얘기는 그게 아닌데 쓰잘데 없는 방향으로 가고 말았네요. ㅎㅎ
성격은 급한 편인데 한글로 된 그저 그럴듯한 닉네임이 되고 보니
꽤 괜찮은 사람인줄 아는 분들이 있더군요. 고맙죠.
삿갓쓰고 한 잔 술에
시좃가락이나 읊어야 할 터인데
그냥 匹夫로 살아가는 것이 안타깝기는 합죠.
모처럼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마음 먹은 날이 어제이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왔는데
그래도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은 것은
자전거를 타는 횟수가 늙은이 마누라 가까이하는 주기만큼
그렇게 되고난 요즘부터의 일입니다.
어제는 그렇다 치고
오늘은 가까운 산에 산보나 다녀 오는 날인데
아침부터 구중중하니 모처럼 어머니께 가 보자는 마누라의 주문이
그렇게 싫지많은 않더군요.
산 좋고 물 좋은 저의 고향도
이제는 골프장이니 펜션이니
거기다가 고속도로가 놓이면서
전원주택도 많이 들어서서
옛날의 정취는 간 데가 없습니다.
서울 주변에 사는 동호인이면 한 번은 가 보셨을
화야산 임도 밑
그래서 저의 고향집 마당가를 거쳐서
처음 시작한 엘림농장으로 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마누라는 몇 년 전 생각으로
산에 가서 두릅이라도 좀 땄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사실 임산물이고 집 주변에 심은 나물이고 남아나지 않는 것이
요즘 인심이다보니 저는 그저 구름이나 잡아야겠습니다.
자전거를 뜸하게 타다보니 옛날 생각이 났고
필름 살 돈이 없어 쳐박혀 있던 필카는 어쩌지 못하고
미대에 간 딸내미 핑계로 산 싼 디카가 유일한 친구가 되고 있습니다.
몇 번 야생화도 찍으러 갔고
등산을 가면서도 가져가 보니
님도보고 뽕도 따는 것이 이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우선 주변을 둘러보니 배나무 꽃이 한창입니다.
전에 사진을 찍을 때도 사람을 찍는 것은 자신이 없어서
말 못하는 자연, 풍경이나 접사를 좋아했었습니다.
'풍경도 말을 한다'고 하시면 할 말 없지만요. ㅎㅎ
봄 꽃이나 찍어야겠다고 나섰는데 바람이 불고 빗방울도 간혹 떨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어머니가 심어서 길러 놓으신 두릅인데 이번에 내린 비로 연약한 새싹이 보기 좋습니다.
꽃잎에 맺혀있는 이슬을 찍었으면 좋겠는데 바람이 시샘을 하는 군요.
만만한게 금낭화입니다.
어디나 있는 꽃이지만
봄 꽃 중에 이만한 꽃도 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구도만 조금씩 바꿔서 계속해서 찍습니다.
좌측에 있는 나무가 자꾸 눈에 거슬리는데
꽃잎에 촛점을 맞추다 보면 그걸 또 잊어 버리네요.
이제는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금낭화를 한 참 찍다가 다른 것을 찍고 싶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웃집 노인 부부가 역시 두릅을 따고 있네요.
인사도 할 겸 그 곳으로 가보니
물소리가 시끄럽습니다.
큰 개울은 아니지만
어제 온 비로 물이 꽤 불어 있고
온통 흙탕물이지만 이걸 찍어야겠습니다.
카메라만 달랑들고보니
셔터 속도가 걱정이 됩니다.
주변에 마땅한 것이 없나 보니
막대기 하나가 눈에 띕니다.
이게 모노포드(Mono Pod, 일각대, 一字 모양의 삼각대 대용품)만은 못해도
그냥 핸디로 찍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봅니다.
F9에 1/8초 군요.
숨을 멈추고 슛!!
영점사격 하는 기분으로 셔터를 끊습니다.
주변에 지저분한 것이 많으면 어떻습니까
그저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면 되는 것을!!
하천이란게 청소를 규칙적으로해 주어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 못하다 보니 눈에 거슬리는 것이 많긴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놀아야 되는데~~
응석받이 시절,
내 응석을 받아 주던 분들은 이제 구십 다된 노인네가 되었습니다.
영감님은 낫으로 두릅을 당기고
마나님은 옆에서 잔소리를 해 댑니다.
내 어머니처럼 서울 가 있는 애들 생각하고 남겨 두었던 두릅이
곧 쇠기 때문에 나오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천인 야생화,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관심 밖입니다.
다리 밑을 들여다 보니 물이 떨어지는 것이 제법 그럴 듯 합니다.
이걸로는 안되겠고
유년시절 내 놀이터였던 폭포에 가 봐야겠습니다.
그 때는 꽤 높아 보이던 곳이
왜 이렇게 낮은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까지 물을 대는데 썼던
주황색 비닐 호스가 아무렇게나 물에 흔들립니다.
좀 더 곧게 생긴 나뭇가지 하나를 구했습니다.
저 폭포를 찍으려면 더 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시 숨을 멈춥니다.
이 짧은 시간의 승부를 위해 숨을 멈추면서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을 생각합니다.
이 찰나의 고민과는 달리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했다는 자책감이 듭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오로지 카메라와 나뭇가지와
손이 만나는 곳,
그리고 숨이 멈추어졌고
파인더 내로 보이는 풍경이 중요합니다.
비가 그친 뒤의 흙탕물이나
미미한 떨림이나
그것은 가쁜 숨을 참는 잠시 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老眼으로 사진이 잘 찍히고 있는지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그것 또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숨을 참습니다.
들여다 보는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주변이 아무리 지저분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파인더의 풍경은 최선입니다.
그 최선속에
시간이라는 요소가 약하다고 해서
지금 이 시간이 실패는 아닙니다.
그야말로 정성을 다하고 있으면 됩니다.
폭포 위,
그러니까 내 어머니의 집
그 위
다래나무 덩굴이나
뽕나무 숲이 있는 그 곳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건만
지나간 세월,
그 세월의 맷돌속에 연마된 예리한 감정만이
옛날과 같지 못합니다.
옛날에 불렀던 가요를 흥얼거리지만
그건 그저 입이 그럴 뿐,
마음속에서는 한 가닥
불안함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