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금붕어의 행색이 말이 아니다.
점점 동작이 느려지더니 오늘 아침에 보니 아예 지느러미가 바닥에 닿아 있다.
이 놈이 우리 집에 온 것이 아마 4~5년 내지 5~6년이 된 것 같다.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얘기다.
아는 분 중에 실내 정원을 만드는 분이 계셨다.
나보다는 나이가 대여섯 살 많은 그는 실내정원 업자라기보다는
심미안을 가진 작가에 가까워 보였다.
좀 시들기는 했지만
그 때만 해도 사진에 관심이 있던 때라 그의 정원을 한 번 찍을 수 없을까
말문을 열다보니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됐고
그것이 연유가 되어서 그 집에 자주 들러 함께 커피를 마시곤 하던 그런 분이었는데
어느날인가 가 보니 작고 돌로 된 멋진 물허벅이 있지 않은가?
좀 신기해 보여서 자세히 보고 있자니
'이번에 중국에서 수입한 겁니다. 이게 뭐 같아 보여요?'하시는데
내가 보기엔 물이 고인 작은 연못용의 돌이 아닐까 싶기도한데
그 분의 설명으로 그것이 중국에서 개의 밥그릇,
그러니까 구유와 같은 것이란다.
나중에 어머니가 사시는 시골에다 하나 놔 드려야겠다고 했더니
정색을 하고 하나 가져 가라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니고 나중에나 하나 사겠다고 하니까
생각해서 주는 것이니까 아무 부담갖지 말라는 그 분에게
배춧잎 한 장이라도 쥐어 드리고 가져 온 것이 지금까지 있는데
그 얼마 후에 거기다가 붕어를 기르면서 우리집에서는 붕어 연못이 되었고
아마 먼저 기르던 붕어가 죽고나서 다시 들여 오면서
지금 한 마리 남은 늙은 붕어를 기르게 된 것일게다.
그 녀석 중에 하나는 아주 활발한 녀석이었고
남은 녀석은 그렇게 활동적이지 못했는데
얼마 후에 보니 주둥이 앞에 누런 돌기가 생겨나서 궁금하기는 했지만
두 마리의 붕어를 구분해 주는 특징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대로 두었었다.
유난히 똘똘했던 녀석은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는데
혹인지 뭔지 모르는 것을 간직한 이 녀석은 끈질기게 살아 남아서
내가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게까지 살아 온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게 일종의 암이었고
점점더 악화되어 지금은 주둥이 부분을 거의 다 덮고 있으니
오늘에 이르러 붕어의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아마 두어달 전부터 먹이를 먹는 횟수가 줄어들었는데
처음에는 먹이를 주면 뛰어 오르다시피 입을 벌리고 받아 먹고는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주변을 맴돌면서 먹더니
최근에 들어서는 먹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먹이를 주고 나서 물의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봐서는
먹이를 먹지않고 그대로 썩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어서
주는 횟수와 갯수를 줄여 주었는데도 역시 물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어제는 아주 적은 갯수의 먹이를 떨어뜨려 주고 천천히 관찰을 하였는데
전혀 먹이 주변에 가질 않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혼자 중얼거렸다.
"이젠 너도 나이 들고 병도 깊었나 보다.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겠니? 안타까워서 못 보겠다."
그랬더니 이녀석이 눈을 천천히 껌벅이면서 대답했다.
"주인님, 오랫동안 주인님의 가족과 살아서 내가 가족의 역사를 다 알아요.
별로 모범적이진 못했지만 그런대로 현상유지를 해 온 것을 보면 그래도 다행인데
좀 더 좋은 모습을 봤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나와 놀아주고 말 걸어 준게 고맙수.
뭐 인생이 그렇다시피 물고기도 마찬가지죠.
내가 처음 와서는 돌 어항에 갖혀서 오로지 하늘만 바라보고 살 때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때 주인님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었죠.
이제 유리 어항으로 옮겨서 환하고 좋았지만
주인님 말고는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관심을 가진 사람도 없어서
꼭 환하고 넓은 곳이 좋은 것만은 아닙디다.
이제 힘이 빠져서 바닥에 지느러미가 닿지만 그래도 어쩌겠수.
다만 힘들지 않게 죽어야할텐데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나요?"
체념한 듯한 녀석의 말투에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법.
초라한 붕어의 행색은 살피노라니
그래도 온갖 풍상을 겪고 이제 생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 온 것이 대견하기도 하다.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지는 녀석에게 백약이 무효라는 생각도 들지만
저 암덩어리가 자라지 않게 약이라도 쓰거나 잘라내 버렸다면
조금 더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후회가 남기도 한다.
"그렇게 했다가 더 일찍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냥 내버려두고 바라봐 줘서 고마워요."
녀석의 힘없는 미소에 안타까움과 후회가 교차되는 오후다.
지난 글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