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조금 내렸습니다.
일찍 잠자리에 든 다음날은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노인네 증후군' 일까요? ㅎㅎ
왈바게시판에 올라 온 새 게시물을 다 읽어 보았고
내 게시물에 댓글 다신 분들이 고마워서 다시 댓글을 달았는데도
다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발코니로 나가 보니 안개비가 내리고 있는 듯 합니다.
직장 후배에게 새벽에 안개 낀 날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하였으나
지금 전화를 하면 아마 입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 친구도 사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침 잠이 많은 친구이고 사전에 약속도 없었으니
실례가 될 것은 뻔합니다.
또,
열정이 많은 친구도 아니니까요.
하는 수 없이 혼자 가기로 합니다.
고양이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장농위에 모셔 둔
삼각대를 꺼내는데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나면서
마누라도 깨어났습니다.
이 시간에 삼각대 챙겨 나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밖으로 나가 보니 안개비가 맞을 만 합니다.
비가 온 후에 느끼는 상쾌함이 몰려 옵니다.
학교 모퉁이를 지나 오솔길에 들어서서 보니
가로등의 불빛도 환상입니다.
안개와 더불어 풍경을 빛나게 하는군요.
잘 지어 진 전원주택을 지나면서 보니
그집 노인네가 정성을 들여 가꾸는 적단풍에
물방울이 보석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프로는 아닌 듯 한데 몇 그루의 나무는
참 멋드러지게 가꾸어놓았습니다.
오늘 가는 곳은 아무때나 찾아 가는
홍유능 산책로입니다.
산책로와 고목나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나무를 좀 찍을 생각인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산책로에 접어드니 벌써 운동을 나온 노인들이 눈에 띕니다.
참 부지런한 분들입니다.
고목나무 숲,
그것도 새벽녘에 보는 숲은 아름답습니다.
비를 맞은 나무줄기는 희미한 빛과 대비되어
더욱 검고, 무성하게 자라나는 새 잎이 진한 연두색깔을
마음대로 자랑하는 듯 합니다.
주변에 이런 길이 있다는 것,
언제나 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른 이 시간에 여길 왔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산책로가 고요속에 아름답습니다.
저기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급히 삼각대를 세우고, 리모콘을 누릅니다.
긴 시간동안 노출되기 때문에 호러 필름에 나오는 사람과 같이흔들리겠죠?
고목나무 밑,
잡목들도 비를 맞아 상쾌한 바람에 흔들립니다.
비온 후의 흙의 향기를 맡기에는 바닥에 내려가 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긴 시간 동안 노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삼각대는 필수이고
그러면 작은 나뭇가지의 흔들림을 찍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고목을 한 번 찍어 봅니다.
한 단계 노출을 줄여 봅니다.
주밍(Zooming)을 하면 어떨까?
나뭇가지가 멋있게 늘어진 곳에 왔습니다.
과수원의 철망이 있어서 문제지만 그래도 찍고 싶은 곳입니다.
조금 멀게 찍어 봅니다.
역시 지저분한 것을 많이 포함합니다.
굳게 닫혀진 묘포장 안의 나무가 안개를 배경으로 멋있게 보입니다.
큰 나무 하나, 작은 나무 하나
가운데 있는 전봇대가 거슬리기는 합니다.
좋아하는 나무를 찍고 다시 산책로로 갑니다.
노인들이 쉬는 벤치를 지나
담장을 봅니다.
오늘따라 담장의 모습이 멋있어 보입니다.
빗방울이 조금 더 굵어지고 바람도 붑니다.
옷을 껴입고 나왔지만 슬슬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담장 주위로 보는 고목나무들
이제 소나무 숲을 찍을 때로군요.
소나무의 굵기가 좀 가늘지만 오늘은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담고 싶습니다.
한 곳에서 여러 각도의 사진을 찍습니다.
모르죠. '소발에 쥐 잡기'로 한 장 건지게 될 지도~~
그래도 여기가 가장 나은 것 같습니다.
초대 시의원을 지낸 농사꾼, 이 분은 벌써 논물을 다 봤습니다.
별안간 생각이 나서 카메라를 돌렸는데 배경이 지저분하군요.
바람이 점점 심해지고
한기도 느껴집니다.
이제 집에 가야 될까봅니다.
좀 아쉽지만
아침일찍,
좋아하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기쁨이 온 몸을 감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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