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의 마지막 수확물들. 가시가 좀 있긴 하지만 "가시를 피해 혀를 기막히게 놀려 잎사귀만 따 먹는 기린을 상상하십시오"라는 갑장의 조언이 아니어도 맛있게 잘만 먹었다.ㅋㅋ
약수터에 배낭을 놓고 내려오는 통에
초입부터 다시 업힐, 죽어라 페달을 밟느라 초죽음이 되질 않나,
꽤 쌀쌀한 날씨에 라이딩하다 장갑을 어디다 벗어놓은 것도 모르고 집을 향하다
맨손으로 전해져 오는 금속 브레이크 레버의 차디찬 촉감에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엇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손이 시린 거야?"
하지만 마누라는 이내 사태를 눈치챈다.
"아니? 장갑은 어쩌시고?"
"옴마야! 그러고 보니 장갑이..이런이런!"
"저냥반이 늘 그렇지. 하여간 집 찾아서 오시는 것만으로도 신통한 거유."
주위 사람들에게 이러한 증상이 가벼운(강조)건망증의 일종이라고
누누이 설명을 하지만 생각처럼 잘 먹혀들지 않을 뿐더러
치매 증상이 거의 확실한 것 같다며 다수결을 무기삼아
나로선 상당히 억울한 진단을 내리곤 한다.
그런데 같이 자주 다니다 보니
이 증상이 동행에게 옮아간 것 같다.
집에 오면 휴대폰을 두고 가시질 않나,
차의 후미등을 켜 놓은 채로 지방 출장을 가시질 않나,
열쇠를 차안에 두고 차문을 잠그시질 않나,
휴대폰을 산에 두고 왔다며 같이 찾을 겸해서 라이딩을 가자시질 않나.
이냥반의 최근의 맹활약은 마치 나의 증상이 차도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으니...
그런데 요즘 새로 알게 된 싱글코스를 타기 위해
흥복산을 거의 다 올라갔는데
이냥반이 고글을 산아래 어딘가에 벗어두고 오르신 바람에
둘이서 오르던 길을 되밞아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중간에 찔레순을 맛보기 위해 임도 도랑을 건너
잠시 入山(?)했던 장소에 떨어진 고글을 찾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업힐을 하면서 심각한 대화가 이어졌다.
"갑장께선 원래 이런 증상이 있으셨던가요?"
"아닙니다. 아무래도 청죽님으로부터 옮은 것 같습니다.
책임을 단단히 지십시오. 흐흐"
"그런데 요즘 갑장님을 뵈니 제 증상보다 훨씬 심각하신 것 같은데
혹시 다른 증상이거나 제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옮으신 것 아닙니까?"
"발뺌할 생각 마세요. 이 치매바이러스가 제게서 변종 바이러스로
업그레이드 되어서 그렇지 감염 경로는 청죽님이 맞습니다."
그의 주장에 좀 억울한 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내가 깜빡 잊은 물건들을 워낙 여러 번 찾아 주신
고마운 일들이 떠올라 별반 대꾸도 못했다.
덕분에 산을 두 번 올랐는데 별로 나쁘지 않았다.
꽤 짙어진 활엽수의 무성한 잎을 뚫고 그늘진 지면까지 내려오는
요 며칠 한낮의 열기는 꼭 한여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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