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간만에 임도라이딩 제의를 받았습니다.
허리가 아팠는데 침까지 맞으며 준비한 라이딩입니다.
DH로 전향한, 3년은 족히 같이 타던 동호인의 호의죠.
그동안 너무 외로와 했고, 라이딩 회수가 줄어들어
이제는 제가 동호인이랄 것도 없는 상태였구요.
소풍가기 전날 밤같이
잠을 설쳤습니다.
아홉시에 자주가는 Shop앞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지만
일찌기 준비를 하고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45분 전에 출발합니다.
도착해 보니 출발 20분전, 더운 날씨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햇빛에 나가면 덥고, 그늘에 있으면 한기가 있습니다.(저만 그렇겠죠. ㅎㅎ)
그저 대형 양판점 직원들이 출근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고 섰습니다.
지금 쯤이면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이 올것이라고
두리번거리기 시작합니다.
저희 직장이 있는 동네라
직장 후배들이 지나가는 것도 보입니다.
어제 저녁
마트에 가서 오이 다섯개를 사 왔습니다.
비상식량을 가져오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 터
나이 든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품목입죠.
똑딱이 카메라를 가져가면 좋겠지만
그래도 동호인들을 좀 더 좋은 화질로 사진을 찍어주고 싶습니다.
가방이 무겁습니다.
물을 반 만 채웠습니다.
만날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동호인들의 모습이 없습니다.
"아마 늦잠을 자는게야"
조금 일찍 나왔어도 조금 기다리기로 합니다.
10분이 넘었습니다.
전화를 해 볼까 하다가 조금만 더 기다리자는 생각입니다.
15분이 지났습니다.
"혹시 불발이 된 걸까?"
"분명히 아홉시였는데…."
카메라를 꺼내서 Shop을 한 방 찍습니다.
틀린 것 같습니다.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느니
그냥 가야겠습니다.
코스를 기록할려고 GPS를 챙겨왔으니
더 그렇습니다.
GPS를 꺼내서 제로에 맞춥니다.
지난 트랙을 지우고 새로 시작합니다.
항상 혼자 다니다시피 했으니
오늘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못 가면 못 간다고 문자나 주지"
"아홉시가 분명했고 나오기 전에 번개에 댓글이 변동이 없는 것을 보고 왔는데…."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며
시내를 지나 국도엘 들어섭니다.
차량이 많지도 적지도 않습니다.
가끔 지나가는 버스와 대형 트럭에서 내뿜는 매연이 싫습니다.
지구력도 없지만 도로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게 국도를 지나 지방도를 지날 즈음
문자가 오네요.
눈을 가늘게 뜨고 문자를 확인합니다.
"선비님 어디셔요?"
늦은 사람이 문자는 왜 보내누?
잠깐 자전거를 멈추고 간단하게 답변을 보냅니다.
"너구내 고개~~"
복잡하게 보낼 수 없는 것이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고
여러 자를 쓸려면 시간이 오래걸리기 때문입니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잠시 쉽니다.
푸른 오월의 숲은 어디를 보나 아름답습니다.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초입은 조금 힘든 업힐입니다.
오래 간만에 나온 길이라 더 힘듭니다.
이마에서 나온 땀방울이 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네요.
그렇게 업힐 구간이 끝날즈음 전화가 오네요.
"어디쯤이시라구요?
"임도에서 업힐 끝나고 평지 나오는데예요."
"먼저 가셨어요?"
"이십 분이 지나도 안 오길래…."
"아홉시 반이잖아요."
"아홉시가 아니구요?"
"예"
이런, 이런!!
또 실수를 했구나.
쑥스럽습니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 터덜터덜 올라갑니다.
한 30분 기다리면 될 것이지만 그러기도 싫습니다.
참 더운 날입니다.
임도의 응달 구간으로 달릴 때는 시원하지만
햇볕이 따가운구간도 있습니다.
큰맘먹고 반팔을 입고 나왔더니
팔이 다 따갑습니다.
약수터에서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오이의 갯수가 부끄럽습니다.
오이를 한 개 들고 으적으적 깨뭅니다.
별로 맛이 없습니다.
주변에 꽃이나 찍을려고 가 봤더니
저처럼 외로운(?)벌레가 한 마리 꽃에 앉아 있습니다.
착각하고 먼저 나와서 동료가 없는지도 모릅니다.
약수를 뜨러 오신 영감님께 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합니다.
사진이 영~~ ㅠㅠ
언제나 쉬면서 사진을 찍는 곳에 들러서도 맥이 풀립니다.
이런 사진이나 찍고 바로 일어섭니다.
오이가 무겁습니다.
한 개 더 들고 아구아구 집어 넣습니다.
오이가 왜 그렇게 큰 지 모르겠습니다.
중간을 지나니 노면이 평탄한 곳과 돌이 많은 구간이 반복 됩니다.
참 좋은 임도인데 오늘은 왜 그렇게 힘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네요.
임도를 내려와서 그 동네 아는 분이 하는 부동산엘 잠깐 가 보니
'외출중'이라는 팻말이 걸려있습니다. 되는 일이 없습니다.
터덜 터덜 무거운 발걸음을 옮깁니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열로 숨은 막히고
엉덩이와 손바닥이 아픕니다.
그렇게 돌아 온 집,
마누라가 없습니다.
몇 번이나 전화를 하고나서야 겨우 통화를 합니다.
"멀리 나가 있다."고합니다.
계단에 앉아서 마누라를 기다립니다.
바람은 그런대로 시원한데 되는 것이 없단 생각이 듭니다.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봅니다.
사진이 검게 나온 것이 몇 장 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매뉴얼로 사진을 찍어 봅니다.
다 그렇습니다.
카메라가 고장인 듯 합니다.
M(매뉴얼)
A(조리개 우선)
S(셔터 우선)
P(프로그램)
여기서만 셔터속도가 엄청 빨라지니
검게 나오는거지요.
흥분해서 왜그런지 모르고
오토로 찍어 봅니다.
커다랗게 찍은 아파트가 내 마음같이 답답합니다.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공지글을 봅니다.
정확하게 09:00이라고 써 있네요. ㅠㅠ
돋보기를 쓰지 않고 까페 공지글을 보았나 봅니다.
09:00와 09:30을 같은 글자로 보다니ㅠㅠ
"그저 늙으면 죽~~"
※ 카메라는 고장이 아니더군요. 나도 모르게 노출보정을 건드려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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