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MB "서울광장 '집회천국' 돼도 감수"
오마이뉴스 원문 기사전송 2009-06-16 09:00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기자]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끝난 다음날인 지난 5월 30일 오전 경찰이 서울광장에서 밤샘 촛불추모 행사를 한 시민들을 강제로 몰아낸 뒤 경찰버스로 차벽을 쌓아 봉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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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 광장이 집회나 시위의 천국이 돼 시청이 심한 소음에 시달린다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 시청 앞 광장이 시정은 물론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 바란다."
얼핏 보면 전형적인 진보진영 사회단체의 주장 같다. 그러나 이 발언을 한 사람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도, '전문 시위꾼'도 아닌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서울광장 조성사업이 한창이던 5년 전인 2004년 2월,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대통령은 모 일간지에 이 같은 의지를 밝혔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 퇴진" 구호를 가장 강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개방을 요구하는 서울광장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만든 공간이다. 이 대통령은 2002년 7월 서울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시청 앞 광장 조성을 추진했고, 불도저 같은 속도로 2년도 안 된 2004년 5월 1일 서울광장을 개방했다. "5월 1일이면 시청 앞 광장이 시민 품으로 돌아옵니다." 당시 서울 시내 곳곳에 붙어 있던 현수막 글귀였다.
시청 앞 광장이 경찰 품으로 돌아온 사연
이명박 대통령은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뒤 청계천 복원사업, 강북 뉴타운 건설 등과 함께 시청 앞 광장 조성을 주요 사업으로 내걸었다. "시청 앞뿐 아니라 가능한 곳이면 어디든지 시민 공간으로 돌려주고 서울시내 곳곳에 녹지공간을 확충하겠다"는 것이 '친환경'을 내세운 이명박 당선인의 포부였다.
월드컵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을 때였다. 붉은 물결은 광화문을 넘어 서울시청 앞까지 이어졌다. 이를 놓고 "광장이 돌아왔다"는 학자들과 언론의 분석이 이어졌다. 같은 해 7월 2일 이명박 시장은 취임사에서 "월드컵 기간에 시민들이 차지했던 시청 앞 광장을 '시민광장'으로 바꾸어 영구히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몇 년 전부터 시청 앞 광장 조성을 요구해오던 문화연대·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도시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명박 시장의 광장 청사진을 환영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시청 앞 광장 조성추진위원회'에 시민위원으로 참여했다. 김은희 도시연대 사무국장은 "이때만 해도 '드디어 광장이 열린다'는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공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발생했다. 추진위는 2003년 1월 설계공모에서 당선작으로 확정된 '빛의 광장' 계획을 착공 나흘 전인 2004년 2월 갑자기 폐기하고 광장에 잔디를 깔기로 했다. 그해 5월에 열리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일정에 맞춰 공사를 마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시민위원들에게는 사전설명도 없이 이뤄진 결정이었다.
추진위원장이었던 강병기 도시연대 대표 역시 언론을 통해서 잔디광장에 대한 소식을 처음 접했는데 당시 쓴 글에서 "(잔디광장에 대한) 보도는 오보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황기원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조성에 적극 참여하는 위원회라고 해서 열심히 일했던 위원들은 무능과 순진을 자괴할 수밖에 없었다"고 허탈감을 나타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에는 잔디광장에 대해 "서울시가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잔디를 깔았다"는 시민들의 반대의견이 활발하게 올라왔다. 시민단체들도 "(서울시 계획은) 광장이 아니라 잔디공원"이라고 일축했다. 비워진 공간을 잔디로 채우고 집회를 제한한다면 사실상 폐쇄형 광장이라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서울광장의 잔디는 시민들과 사회단체들의 발목을 잡았다. 서울시는 '잔디를 보호한다'면서 시시때때로 광장 통행을 금지했다. 특히 개장 후 첫 1년에는 210일 동안 광장 출입을 막아 '광장'이라는 표현이 유명무실한 상황이었다.
개장 직후 하이서울페스티벌 기간 동안 잔디가 밟혀 죽자 서울시는 매주 월요일을 잔디 휴식의 날로 정했고 '잔순이(서울시가 만든 잔디의 애칭)가 바라는 몇 가지 소망'을 발표했다. "뾰족한 구두를 신고 들어오면 잔순이가 아프고 한자리에만 너무 오래 있으면 잔순이가 숨을 못 쉰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민이 아닌 잔순이가 광장의 주인이 된 셈이다.
▲ 지난 2004년 5월 서울광장의 모습. 잔디가 훼손되면서 새 잔디를 심은 구역에 '진디가 쉬고 싶어해요'라는 안내문이 내걸려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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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주인은 시민이 아닌 '잔순이'였다
더 큰 문제는 광장 개장에 맞춰 2004년 5월 발효된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다. 조례는 서울광장의 사용 목적을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신청이 중복될 경우 공익을 목적으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행사, 공연과 전시회 등 문화·예술행사를 우선 허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적어도 7일 전에 사용신청을 마쳐야 한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기가 쉽지 않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은 48시간 이내에 집회를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게 사용허가를 받아도 광장 사용료를 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잔디 손상 등에 대한 손해배상도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서울광장이 조성될 때부터 "서울시가 집회의 자유를 막으려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려면 광장은 비워둔 채 도심 주요 도로를 점거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불법집회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예언한 듯하다.
실제로 서울광장 사용 사례를 보면, 서울시 입맛대로 허가를 내준다는 혐의가 짙다. 서울시는 "추모행사는 허가대상이 아니다"며 서울광장 내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설치를 불허했지만, 지난해 6월 특수임무수행자회의 위령제는 허가했다. 특수임무수행자회는 LPG 가스통을 틀고 과격시위를 벌여 처벌받은 전력도 있었지만 광장 사용에 제약은 없었다.
또한, 서울시는 6·10항쟁 22주년 범국민대회 때 광장 사용을 불허하면서 "서울광장은 정당의 정치적 행사로서 사용을 허가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2005년 12월 16일 한나라당의 '사학법 강행처리 무효집회' 때는 광장을 내줬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집회에 참여해 촛불을 들었다. 명백한 옥외야간집회인 만큼 이 대통령 자신이 '불법시위자'인 셈이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에 대해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광장을 바라보는 가치의 충돌"이라고 정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장을 '도심 환경미화' 수준으로 이해했고 임기 내에 사업을 마무리해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과 한반도대운하 사업, 오세훈 서울시장의 동대문플라자 디자인시티 프로젝트도 이름만 '친환경'일 뿐 결국은 전시행정이며 토건사업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광장에서 촛불 들었는데...
▲ 지난 2005년 12월 16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사학법 강행처리 무효 대규모 장외집회에서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을 들고 서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897년 아관파천을 마치고 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이 덕수궁 대안문(현 대한문) 앞쪽에 원구단을 설치하고 도로를 놓은 것이 서울광장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고종보호 시위가 일어났다.
그 후 1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곳에서는 저항의 역사가 이어졌다. 3·1운동과 4·19혁명, 한일협정 반대시위는 물론 6·10항쟁, 여중생장갑차사망사건 추모 촛불시위, 탄핵반대촛불시위, 광우병쇠고기반대촛불시위 등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이 이곳에서 펼쳐졌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얼마 전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시위대와 관중이 뒤섞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는 국가가 광장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과거처럼 광장을 탄압하려고 한다면 계속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서울광장 사용문제가 논란으로 떠오르자,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 등 시민단체들과 야당들은 지난 7일 조례개정운동에 나섰다. 이들의 조례 개정안은 광장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사용목적에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진행"을 추가했고, 사용 2일 전에 신고서를 접수하도록 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현재 서명운동을 함께 진행하는 '수임인' 활동을 신청한 사람만 650여 명. 오는 24일 서울시가 조례개정안 개폐 청구안 접수를 공표하면 본격적으로 서명운동이 시작된다. 현행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6개월 동안 유권자 1% 이상이 서명할 경우 조례 개폐를 청구할 수 있는데 서울시의 경우 8만968명 이상이 서명해야 한다.
그러나 전체 시의원 102명 중 96명이 한나라당인 서울시의회가 개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미 지난 2006년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광장 사용을 거부당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진정에 대해 "조례가 자의적 적용 및 해석이 되지 않도록 집회 허가기준과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개정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조례 개정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광장에 대한 시민의 뜻을 보여줄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 사안에 대한 정치적 심판을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광장과 한반도대운하, '녹색 칠한 토건사업'
새로운 논란의 대상은 오는 8월 개장하는 광화문광장이다. 벌써부터 보수언론과 경찰은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13일자 기사에서 "광화문광장은 정부중앙청사를 끼고 있는 명실상부한 수도의 중심인 데다 청와대와도 가까워 시위표적이 되지 않도록 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경찰청 관계자의 말을 빌려 "서울광장 이용 조례보다 훨씬 강력하고 구체적인 '집회·시위금지' 조항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보도했다.
반대로 진보진영에서는 "광화문에서도 집회의 자유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28일 광화문광장에 대해서도 서울광장과 대동소이한 조례를 제정했다.
김은희 사무국장은 "광화문광장은 집회시위의 천국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광장의 모습"이라면서 "이전 정부에서는 서로 밀고 당기면서도 우리가 광장을 선점할 수 있었는데, 현 정부는 광장을 금기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근 팀장은 "광화문광장 조례를 보면 아예 공식행사 외에는 광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다"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도록 만든 것이 광장인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행사만 한다면 광장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단기적으로는 충돌이 있겠지만 멀게 보면 광장은 열릴 수밖에 없다"면서 "앞으로는 도시공간의 공공성에 대해 토론하고 서울시의 전시행정 사업을 비판하는 단계까지 논의가 발전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서울광장' 개장식이 열린 지난 2004년 5월 1일 오전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청앞에서 이명박 시장의 가면을 쓰고 이미지 행정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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