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살구

구름선비2009.07.12 06:37조회 수 434댓글 1

    • 글자 크기


제가 어렸을 때
아니,
성년이 되고 나서도 저의 외가집엔 늙은 살구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무는 늙었지만 그 위세는 대단해서 높이도 높이려니와
둘레가 어른 서너 사람이 감싸도 남을 만큼 큰 그런 고목이었습니다.
살구가 익어 갈 무렵
이렇게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동네 아이들, 노인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죠.

언제인가 한 번 그 나무에 올라가 보고 싶은 생각에
무모한 도전을 했다가
올라가는데는 성공했지만
내려 올 수 없어서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울음소리를 듣고
주변 어느 어른의 도움으로 내려왔을겁니다.

------------------------------------------------------------------------

새벽에 일찍 잠이 깨었는데
며칠 전 녹음할려고 해프닝을 벌였던 맹꽁이가 또 웁니다.
빗소리에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다시 녹음을 시도해 보았지만
진한 빗소리 때문에 맹꽁이 소리는 묻히고 말더군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우산을 챙겨들고 맹꽁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봤습니다.

집에서 들어도 빗소리가 요란한 것을
우산을 쓰고 나가면 더 소리가 커 진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내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이제는 날이 훤하게 밝아와서 그쳤는지
맹꽁이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우산을 쳐 대는 빗소리에 포기하고 들어올려는데
살구 한 알이 눈에 띕니다.

살구나무와 매실을 접붙인 수종인 듯 한데
아파트 주변에 많이 심어놓아
낮이면 아이들이 매미채를 가지고 따는 것을 보았고
간혹 한 알 주워서 맛을 보면 그런대로 괜찮은….

주변을 둘러보니
꽤 많은 살구가 떨어져 있습니다.

떨어진 충격에 대부분 상처가 났지만
그 중에는 아직 덜 익어서 그런지 과육을 잘 보전한 것들도 있습니다.

좋은 것만을 골라서
양 손 가득히 들고 들어오면서
옛날 외할머니 댁에 있던 그 늙은 고목나무가 생각났습니다.

노인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는데
저도 옛날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나이가 들어가기는 하나봅니다.

양 손에 살구를 쥐었으므로 우산도 접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물에 잘 씻어서 탁자위에 올려 놓고 보니
꽤 먹음직스럽네요.

살구를 보면서 살구나무의 옛추억과
사라진 유년,
성년이 된 후에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 그리워집니다.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댓글 1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드디어 복구했습니다. 와일드바이크 심폐소생의 변!39 Bikeholic 2019.10.27 2746
188076 ▶◀ [ 謹弔 ] 깜장고무신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319 뽀스 2008.07.09 9215
188075 바이크 투어맵 다운로드.161 amakusa 2006.07.19 8984
188074 촛불이 쉬쉬하니, 다시 노무현전대통령님이 한말씀하셨습니다.159 dunkhan 2008.06.18 7318
18807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144 공체선 2007.04.02 8003
188072 글 좀 올려 주세요138 STOM(스탐) 2007.04.26 1942
188071 강간범 잡아 넣고 왔습니다......129 다리 굵은 2006.04.05 19780
188070 ======더블 에스트롱~댓글 레이스 突入.~======120 더블 에스 2007.09.17 8459
188069 쫄바지는 몸매가 되는분들만 입으면 안되나요?115 madmagazine 2007.09.28 8576
188068 <b>"기적"을 믿으며 드리는....호소문</b>114 뽀스 2008.06.16 20528
188067 "칠십오님" 사망사고 경위 입니다.[펀글]114 독수리 2007.04.02 19296
188066 꼬리글 100개에 무모하게 도전해 봅니다...109 인자요산 2008.01.04 2083
188065 깜장 고무신님 현재 의식불명 상태입니다.104 Bikeholic 2008.06.06 7495
188064 ▶▶화끈한 만남을 원하세요? 어서오세요~◀◀103 부루수리 2007.06.21 2744
188063 이형기님을 보내며...97 pigmtb 2006.06.07 1888
188062 인라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 심하네요.97 raxel 2006.03.09 4089
188061 엘스워스 모멘트 프레임 먹다... 96 뻘건달 2007.02.20 19640
188060 산악자전거대회 참가자 경기중 숨져!!95 hksuk 2006.09.30 6644
188059 [동영상] 28일 여성시위자 단체로 짓밟고 곤봉으로 때리는 전경92 그리운벗 2008.06.29 2663
188058 아래 동네수첩이 헛소리인 이유92 natureis 2006.01.03 2703
188057 오늘, 산악자전거대회 도중, 사망 사고라는데....91 잔차나라 2008.09.28 8258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