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리합니다.
오늘 저녁부터는 장마전선이 다시 북상한다고 하니
불안한 마음입니다.
저녁 근무인 날이고, 내일이나 모레는 가까운 고향을 거쳐가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니 거기나 한 번 갈 요량이고
토요일엔 다시 장맛비가 내린다고 하니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오늘 밖에 없다는 생각, 지난 번에 갔다가 시간에 쫓겨
대충 셔터를 누르고 내려온 기억 때문에
오늘은 작정을 하고 나섭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천마산 계곡입니다.
지난 번 출사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었고
장마가 끝나기전, 물은 많이 흐르는 날을 택해서
다시 한 번 가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겁니다.
마누라가 깨지 않게 고양이 걸음으로
카메라 챙기고, 삼각대 챙기고
혹시 추울 것에 대비하여 바람막이를 걸치고
세수도 안 한 얼굴을 누가 볼세라
모자를 꾸욱 눌러쓰니 그저 그런 아저씨 얼굴입니다.
계곡입구엔 아침 일찍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기대하기는 안개가 끼어 있거나
물안개라도 풍부했으면 좋겠지만
도착해 보니 안개는 없습니다.
서늘한 계곡의 냉기가
잠이 덜 깬,
무언가 판단력이 덜 무르익은 얼굴을 때립니다.
삼각대를 세우고, 필터를 끼우고
조리개를 있는대로 조여 봅니다.
셔터가 열려질 시간이 너무 길군요.
기왕 돌려 본거 B 셔터로 한 번 찍어 봅니다.
너무 짧은 시간 노출을 했군요.
바로 지우고 조리개를 좀 열어 봅니다.
지난 번 한 낮에 왔을 때는
원하는 셔터 속도가 나오지 않아서
실망이었는데 일찍 오니까
이런 여유가 있어 좋습니다.
한 가지
폭포에 큰 나무 등걸이 걸쳐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 나무 등걸을 치워야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소리가 요란 하고 바닥의 깊이도 깊어 보여서
겁이 납니다.
어렵게 나무 등걸을 잡고 힘을 써 봅니다.
돌에 단단히 끼어서 꿈쩍도 않습니다.
주변을 정리하고 다시 해 보니
한 쪽은 움직일 만 합니다.
이 아침에 사진하나 건지겠다고
이런 힘을 쓰는 것을
누가 시키면 할려는지….
늙은 소나무 고사목인데
뿌리쪽은 관솔상태이고 줄기도 단단해서 그런지
무게가 많이 나갑니다.
몇 번 용을 써서 폭포 위에서는 떨어뜨렸는데
그 무게 때문에 더 옮길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그냥 있는 그대로 사진을 찍어야 겠습니다.
자연이 하던 그대로 있는 풍경은
사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떠내려오다 걸린 그대로의 나뭇가지,
낙엽들,
또 사람들이 버리고 간 포장지 등이 그것입니다.
아무리 뺄려고 해도 뺄셈이 안 됩니다.
사진은 뺄셈이라죠.
눈에 보이는 것 중에서 필요없는 것,
눈에 거슬리는 것을 빼고 나서
그야말로 알맹이만 찍어야 사진이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가 보면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사진으로 보면 멋있던 기억들 다 있으시죠?
사진에 나온 풍경 한 장은
이런 고민과 노력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라
그런 것인데
오늘은 틀린 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 아니 새벽 가까운 시간에 일어나서
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합니다.
상쾌한 아침,
계곡엔 종아리를 시원하게 해 주는 맑은 물과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했다는 행복감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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