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동네에는 왕릉이 몇 군데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홍·유능은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곳입니다.
능 안에 들어 간 것은 몇 번 안되지만
능 주변으로 산책로가 있어 자주 산책을 나가는 곳이죠.
얼마 전 이조 왕릉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리고 때를 같이하여
왕릉 내에서 취사행위를 하는 좋지않은 소식도
방송되곤 하였습니다.(고기를 구워 먹었는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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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서늘한데 햇볕이 뜨겁습니다.
모처럼 마누라와 둘이서 산책을 갑니다.
평소 자주 다니는 길로 가자고 했지만
햇볕이 강하니 짧게 가자고 합니다.
숲이 우거져 응달이 많은 곳을 향해 나섭니다.
굵은 나무 밑에 작은 풀들이 많은 이런 풍경을 좋아합니다.
가는 길에는 담장쳐진 농장과 잘 지어진 전원주택이 있습니다.
그 길에 조경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노인네가 사시는데 그 집의 꽃은
늘 저의 피사체가 되어 줍니다.
요즘 연로하셔서 건강이 나빠지신 '선생님'을 상징하던 꽃입니다.
계절은 여름인데 벌써 상처를 입어서 계절을 앞서가는 잎들도 있습니다.
옻나무로군요^^
일설에 의하면 홍·유능 주변의 토질은 능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합니다.
일본놈들이 민족의 정기를 말살시키려는 의도에서 토질이 나쁜 곳에
왕릉을 쓰게 하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홍·유능 주변의 토질중에는 습하거나 토질이 불규칙해서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번 장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큰 고목 소나무가 쓰러져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물이 흐르는 토질이고 토질이 너무 물러서
고목의 뿌리가 활착이 잘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래 된 나무인 듯 한데 안타깝습니다.
다른 나무와 서로 묶어 주던지 아니면 버팀목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과
이것도 자연의 순환이니 아깝지만 그냥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교차합니다.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 이은의 묘는 대중에 공개하지 않는 곳입니다.
왕조 몰락의 아픔을 간직한 영친왕의 묘는 '영원'이라고 부르는데
묘의 크기도 줄어들어 겨우 체면유지만 하게 해 놓았다고 보여집니다.
밤에 나와 보면 능 주변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왕래가 없습니다.
왕릉이라도 무덤은 무덤인가 봅니다.
예산 때문인지 영원엔 철제로 된 펜스만 쳐 있습니다.
홍·유능의 전통 담장과는 구분되는 부분입니다.
그 바깥,
홍·유능의 담장 바깥에는 시멘트로 둘러진 담장이 또 있습니다.
원래 능의 경내와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으려고 설치한 것 같은데
눈에 거슬리는 건축물입니다.
그 담장 위에도 풀이 자라고 있네요.
생명의 끈질김과, 망한 조선 역사의 한을 한껏 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햇살이 따가운 곳을 지났습니다.
작은 밭뙤기, 상추와 옥수수와 강낭콩이 심겨진 곳 한 쪽에
해바라기가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극과 극으로 민심과는 비뚤어져 가는 요즘 정치인들 생각이 났습니다.
존경과 존중이 없어진,
방황하는 세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그래도 이 놈은
자신의 의지와 존경과 존중을 일깨워 주는 듯합니다.
집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렇게나 자란, 늙은 무궁화나무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지금 나라가 어떻게 되어가던
이 꽃은 때가 되면 피고 또 질겁니다.
그래서 역사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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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왔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홍·유능이 있어서
신축예정인 아파트, 지역조합에 든 아파트의 건축은 힘들어질 겁니다.
그래도 처음 생각,
'능이 있어서 발전은 더딜테니까 좋다'는
그 생각은 꼭 잡고 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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