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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꿋은 내 잔차를 차냐?

........2001.11.02 07:00조회 수 24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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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운동을 잘 못했다.
특히 달리기나 스피드를 요구하는 대부분의 운동은 잘 못했다.

대신 힘쓰는 운동은 이상하게도 재미있고, 잘했다.
예를 들면 체력장에서도 달리기, 왕복달리기  이런거는 잘 못했는데,
투포환 던지기, 턱걸이, 몸일으키기 같은 것은 언제나 만점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이제와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지, 그때는 왜 잘하고 뭘 못하는지 감도 별로 없을 때였다.

스포츠를 본격적으로 한 것은 대학교 가서부터인데,
신입생 서클에 들려고 기웃거리다가 럭비부에 들었다.
하지만 이건 맨 진흙탕속에 뒹굴고, 끝나고 나면 흙투성이에 지저분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내게 이것은 악몽과도 같았다.
운동장 위에는 테니스코트가 있었는데, 여기는 흰 테니스복에
산뜻한 스타일로 잼있게 테니스를 치는 남녀커플들이 꽤 있었다.
오~ 스타일 되는구만~ (^o^)

초여름날 럭비부를 탈퇴하고는
곧장 테니스 라켓을 샀다.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그렇게 해서 대학교, 대학원 내내 테니스를 쳤다.
다른 스포츠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근데, 난 왼손잡이이다.
테니스는 오른손으로 배우는 바람에 나중에는 좀 짝퉁비슷해져서
나와 같이 시작한 친구들에게 맨날 깨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는데, 테니스보다는 볼링을 많이 치게되었다.
난 원체 당구도 잘 못치고 해서 볼링도 같은 것인지 애버리지 150을 넘긴 적이 없었다.  별로 취미가 안 붙었다.
사내에 농구 클럽이 있어서 농구도 했는데, 별로 관심이 안 땡겼다.
검도도장도 한동안 다녔다.  수영장에도 매일아침 다녔다.
별로였다.  왜 이렇게 잼있는 스포츠는 없는 걸까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모든 스포츠를 접었다.  물론 바쁘다는 핑계로..(^_*)

그러다보니 몸무게가 장난아니게 불어버렸다.
이이런~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내가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그래서 짱구를 굴린 끝에,
이 나이에 품위에 맞게 골프를 쳐서
살도 빼고, 비지니스 교제도 하고 일거양득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석달치 수강등록을 하였다.  물론 복장은 완벽하게 하고...
흑~  아까운 돈만 날렸다.  10번정도 갔던가?
도대체가 취미가 안 붙는다.  이 무슨 고행인가?
남들은 누우면 천장이 필드로 보인다던데, 난 누우면 금새 코곤다.
그래도 석달 연습했다고 구라를 치고다니니,
사장님이 함 치자고 하여 필드에 나가서 머리를 올렸는데,
칠때 죽는줄 알았다.  그 땡볕에 이 무슨 고역이람...
골프 별로 잼 없어보였다.

올 가을이 시작될 무렵,
문득 잔차를 타고 싶었다.
그래서 싼거 하나 샀다가,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내게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팔고 좀 비싼거를 샀다. (음...여기서는 그걸 입문용이라고 하더만...-_-)

요즘 틈만 나면 헬멧에 유니폼에 신발신고 한강변과 양재천변을 막
달린다.
회사에서도 틈만 나면 왈바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눈을 감으면 내 잔거가 생각나고, 꿈에는 멋진 숲속과 들판을
내 자연의 힘으로 누비고 다니는 꿈을 꾼다.
심지어는 잔거를 갖고 세계를 여행하는 계획도 세운다.
당장은 해외출장에 갖고 갈 수 있도록 이것저것 준비도 해본다.
가면 잔거 용품등 잔뜩 사와야지 하면서...
내 컴의 백그라운드며, 스크린 세이브도 MTB 사진들이다.
집에는 서서히 잔거 용품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기 시작한다...

얼마전부터 울 마눌님과 사이가 서서히 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어디 좀 나가라고 등 떼밀어야 겨우
나갈까 말까 하던 게으름의 극치였던 남편이
이젠 주말도 모자라서 주중의 저녁에도 잔차들고 어디론가 갔다가
잠잘때쯤 되야 비실거리면 들어오니
마눌님 열 받기 시작하였나니...

급기야 시비를 걸고 넘어진다.
그리고 베란다에 고이 모셔둔 내 잔차 근처로 가서는
우선 잔차 용품들을 막 내던진다.
한번도 안 부딪친 내 파랑헬멧이 웃기게도 마눌님에 의해
박살나는 소리가 난다.  으윽...내 머리에 왜 통증이 느껴지던지..?
장갑은 날라가서 어디 쳐박히는지...혹시 밖으로 날라간것 아닌가?
베낭이며 유니폼을 들더니 갑자기 가위를 쥔다.
으아악~
주책맞게도 내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나오고,
마눌님의 눈에서는 살기와 함께 비난의 웃음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위협만 할 뿐...
지도 그게 얼매나 손해인줄은 아는 모양이지?

하지만 그 안심도 잠깐...
급기야 내 잔차 를 발로 툭툭 차기 시작한다.
'왜 애꿋은 내 잔차는 차냐?'
'이놈의 잔차하고 나가 살지, 왜 여기 있냐?  아예 끼고 살아라'
그러면서 잔차를 끌고 밖으로 나가 내다버릴려고 그런다.

잔차를 중간에 두고 갑자기 남녀간에 팽팽한 힘쓰기 한판이
장장 5분에 걸쳐 진행되었다.
울 마눌 힘이 보통이 아님을 새삼스레 느끼고는
항복을 선언하고,
복도로 잔차와 함께 쫒겨나왔다. (사실은 잔차에 기스날까봐 ^_^;;)
쩝~

나온김에 한바쿠 돌고 올까라고도 생각했지만,
법원갈 일 생길까봐 자제하고는
복도에서 흐릿한 불빛아래에서 잔차 점검하는 척한다.
(앞집 아줌마 : 쫒겨났어요?
나 : 아뇨.  잔차 수리좀 하려는데, 애 땜에 나왔어요... 디레일러가
      어쩌구, 스프라켓이 어쩌구...^%@$%^*%$%^
앞집 아줌마 : @_@...뭔 소린지???)

세시간만에 문이 열리고,
그날 난 마루에서 새우잠 잤다!

진정한 바이커의 길은 이렇게도 고독하고 힘든 수행과정을 거쳐야만 하는가?
오래간만에 취미에 맞는 MTB의 세계로 입문하려는 남편을
왜 마눌님은 그 꼴을 못보는 것인가?
자기 잔차도 하나 사 줬는데, 왜 타지는 않고...?
확! 팔아버릴까 보다!
(울 마눌님은 스포츠와는 정반대인 예술계통이라서
할 줄 아는 스포츠는 숨쉬기밖에 없답니다...)

오늘도 난  아들놈 어서 커서 부자간에 정답게 잔차타고
산에 가는걸 꿈꾼다.
그때까지는 마눌님의 구박에 꿋꿋이 버틸 수 밖에...

여러 선배님들께서는 이럴때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스파게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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