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야간에도 타실지.. 탄다면 공익들이 막을지.. 꼭 그런 상황이 생기길 바랍니다.. 재미있겠군요...
출처 : 주간조선
[내 인생의 자장면] (12) 영화배우 안성기
참 연기 가르쳐준 ‘철가방’배역
내 아버지(안화영)는 영화사(현진영화사) 사장이었다. 서울대 언어학과를 나왔는데 같은 학교 출신인 김기영 감독(의대), 그리고 박암 선생님과 영화계 ‘삼총사’였다. 1957년 여섯 살이었던 나는 아버지 친구인 고(故) 김기영 감독 눈에 띄어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아역까지 합쳐 지금까지 80여 편에 출연했는데 실질적인 데뷔작은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이라고 생각한다.
1979년 시청 근처 프레스센터 뒤 ‘성공다방’이라는 곳에서 우연히 이장호 감독을 만나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조감독은 배창호 감독이었다. 내가 왜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실질적인 데뷔작으로 꼽는가 하면 이 영화를 통해 진정한 연기가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서울 변두리 개발 지역의 풍경을 담은 작품으로 중국집, 이발소, 여관에서 일하는 덕배, 춘식, 길남의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서 내가 맡은 역은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이었다.
나는 중국집 배달부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실제로 중국집에 가서 행동 하나하나를 배웠다. 당시는 오토바이가 없어 걸어서 배달을 했는데 나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당시 배달부들이 그랬듯이 뒷주머니에 나무젓가락을 꼽고 터덜터덜 배달통을 들고 다녔다. 이장호 감독은 나보다 더욱 치밀해서 배달 나갈 때와 돌아올 때의 배달통 모습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디테일까지 주문했다.
촬영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그릇을 찾으러 갔는데 먹다 남은 음식을 개에게 주어 그릇을 잡으려고 하면 개가 으르렁대서 한참 동안 개와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대목이었다. 정말 개보다 못한 인생이었다.
이 덕배 역을 통해 나는 연기가 무엇인지를 알았고 대종상 신인상까지 타게 됐다. 상도 상이지만 촬영을 마치고 먹었던 자장면 맛은 정말 잊을 수 없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중국집에 가면 자장면을 먹을 것이냐 짬뽕을 먹을 것이냐 고민하지만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 자장면이 판정승을 거뒀고 지금은 짬뽕이 판정승을 거둔다. 당시에는 수타면이 자장과 어우러지면서 정말 환상적인 맛을 냈는데 지금은 수타면이 별로 없어서인 것같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중국 음식 하면 남들처럼 자장면이 떠오른다. 여섯 살때 처음 먹었던 중국 음식이 자장면이었고 패스트푸드 하나 없던 고등학교 시절 굶주린 내 배를 채워준 것도 자장면이었으며 군 복무하던 철원에서 휴가 나오면 처음 찾았던 것이 자장면이었다.
요즘엔 시간만 생기면 양재천에서 자전거를 타는데 낚시하던 사람이 휴대폰으로 자장면을 배달해 먹는 모습을 보면 나도 군침이 돈다. 자장면도 먹고 싶고 내게 연기란 무엇인가를 알려준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할도 다시 한번 생각난다.
출처 : 주간조선
[내 인생의 자장면] (12) 영화배우 안성기
참 연기 가르쳐준 ‘철가방’배역
내 아버지(안화영)는 영화사(현진영화사) 사장이었다. 서울대 언어학과를 나왔는데 같은 학교 출신인 김기영 감독(의대), 그리고 박암 선생님과 영화계 ‘삼총사’였다. 1957년 여섯 살이었던 나는 아버지 친구인 고(故) 김기영 감독 눈에 띄어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아역까지 합쳐 지금까지 80여 편에 출연했는데 실질적인 데뷔작은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이라고 생각한다.
1979년 시청 근처 프레스센터 뒤 ‘성공다방’이라는 곳에서 우연히 이장호 감독을 만나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조감독은 배창호 감독이었다. 내가 왜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실질적인 데뷔작으로 꼽는가 하면 이 영화를 통해 진정한 연기가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서울 변두리 개발 지역의 풍경을 담은 작품으로 중국집, 이발소, 여관에서 일하는 덕배, 춘식, 길남의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서 내가 맡은 역은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이었다.
나는 중국집 배달부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실제로 중국집에 가서 행동 하나하나를 배웠다. 당시는 오토바이가 없어 걸어서 배달을 했는데 나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당시 배달부들이 그랬듯이 뒷주머니에 나무젓가락을 꼽고 터덜터덜 배달통을 들고 다녔다. 이장호 감독은 나보다 더욱 치밀해서 배달 나갈 때와 돌아올 때의 배달통 모습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디테일까지 주문했다.
촬영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그릇을 찾으러 갔는데 먹다 남은 음식을 개에게 주어 그릇을 잡으려고 하면 개가 으르렁대서 한참 동안 개와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대목이었다. 정말 개보다 못한 인생이었다.
이 덕배 역을 통해 나는 연기가 무엇인지를 알았고 대종상 신인상까지 타게 됐다. 상도 상이지만 촬영을 마치고 먹었던 자장면 맛은 정말 잊을 수 없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중국집에 가면 자장면을 먹을 것이냐 짬뽕을 먹을 것이냐 고민하지만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 자장면이 판정승을 거뒀고 지금은 짬뽕이 판정승을 거둔다. 당시에는 수타면이 자장과 어우러지면서 정말 환상적인 맛을 냈는데 지금은 수타면이 별로 없어서인 것같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중국 음식 하면 남들처럼 자장면이 떠오른다. 여섯 살때 처음 먹었던 중국 음식이 자장면이었고 패스트푸드 하나 없던 고등학교 시절 굶주린 내 배를 채워준 것도 자장면이었으며 군 복무하던 철원에서 휴가 나오면 처음 찾았던 것이 자장면이었다.
요즘엔 시간만 생기면 양재천에서 자전거를 타는데 낚시하던 사람이 휴대폰으로 자장면을 배달해 먹는 모습을 보면 나도 군침이 돈다. 자장면도 먹고 싶고 내게 연기란 무엇인가를 알려준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할도 다시 한번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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