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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지... 미쳤지....

technogym2003.03.20 01:21조회 수 38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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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지... 미쳤지....

해운대로 이사를 온지 일년 동안 매일 같이 동백섬을 나가며
동백섬을 뺑뺑이 돌면서 마라톤 훈련에 열중인 그들을 보며 난 "또라이"라는 단어로
와이프를 안심(?) 시켰다.
동아 마라톤이 열리기 보름전만 해도 훈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열중인 그들을 보며
달리기는 취미일뿐 시합까지 찾아 나서는 그들을 가정 파괴범이라 지칭하면서
휴일을 가족들과 함께 하질 않고 지방을 돌아 다니며 원정길에 나서는 것을
목소리 높이며 비난을 했었는데....

우연히...
헬스클럽 회원이신 피부과 원장님이 빡빡한 스케쥴로 참가 신청한 동아마라톤 배번이 있는데
나에게 참가를 해 보질 않겠느냐고 권유를 해 왔다.

2월에 달리기 동호회에 가입을 해서 18km 구덕포 달리기를 따라가며(힘이 들어 죽는줄 알았다.)
50대 후반의 백송님의 활기찬 러닝모습을 보고는
나는 이제 마흔인데 쉰이 넘은 그들을 보며 달리기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매일 아침 동백섬 다섯 바퀴 달리기를 빼먹지 않았다.
동아 마라톤이 다가오자 인터넷 동호회 게시판에는 "동아대비 마지막 LSD"라는
동호회 가입 한달도 못되어 뜻도 이해 못하는 훈련을 다음주 일요일 6시에 실시를 한단다.
일요일 아침 와이프와 함께 동백섬을 나가다 집 앞으로 지나가는 달리기 행렬에서 백송님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기에 와이프를 내 던져 놓고는 그 행렬에 얼떨결에 끼였다.
자다 말고 준비 운동도 안된 상태에서 함께 뛰며 백송님께 물었다.
- 지금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 신선대를...
백송님의 말씀이 도무지 알수가 없다.
신선대가 어딘지... 얼마의 거리인지...
하지만 이왕 합류 한 것 한번 따라 나서 보자는 마음으로 행렬의 뒷자리를 묵묵히 따라 뛰었다.
그런데...

광안리를 지나고... 이기대를 들어서 ... 그래도 계속 달린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와이프와 아이들이 기다릴텐데,
이제는 돌아가겠지... 하는 마음이 5분에 한번씩 나는 것은 아이들과 와이프가 기다린다는 핑계보다는
상상 할수도 없이 달려온 많은 거리와 신선대 정상까지의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언덕들
그리고 쉼없이 전진만하는 독한넘들의 동아마라톤 대비 마지막 마라톤훈련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른다, 손목에 시계를 차지 않았으니...
하지만 신선대 정상에서 보여주는 부산 앞 바다는 힘든 고통 이후 잠시의 휴식에서
이때까지 보아온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장면을 펼쳐 보이며
나에게 이 세계에 뛰어 든 것을 반기는 것 같았다, 정말.
하지만 이 휴식도 잠시...
다시 해운대로 돌아가며 내 딛는 발걸음이 내 걸음이 아니다.
그 이유를 집안에 들어가 나를 대하는 가족들의 표정과 부엌에 놓여진 시계가 알려준다.
6시 30분에 보고 나갔던 시계는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새벽 어둠속 혼자 내던져 두고 도망간 남편을 기다리던 와이프의 눈길이 매서워 보인다.

아마 이날 참여한 "동아대비 마지막 LSD" 훈련에서 동아마라톤 참가를 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고 보면 될까?
감사(?)의 표시로 피부과 원장님에게 매실 액기스 2리터를 패트병에 드리고
마지막 남은 보름동안 매일 아침 동백섬 10바퀴를 도는 것으로 동아 마라톤을 준비했다.
하지만 대회 전날까지 마라톤에 참가를 한다는 말을 가족들에게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름전만 해도 마라톤 시합을 나가는 사람을 가정 파괴범으로 몰았었는데...

시합전날이 되어서야 와이프에게 동아 마라톤을 나간다고 얘기를 했다, 눈치를 양껏 보며...
아...  와이프 눈에서 뿜어 나오는 그 싸늘함이란...
그 다음 나와야 할 얘기들은 도저히 꺼낼 수가 없다.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가 되는데, 토요일 기차로 서울에 올라간다고...

도망을 쳤다.
서울가는 기차편에서 전화로 보고를 올렸다.
와이프는 전화기에 대고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들리진 않았다^^
서울에 도착해 야관방을 배정을 받는데 조그만 방에서 6명이 칼잠을 잤다.
아니, 나는 잠을 거의 자질 못했다.
42.195km를 달려야 하는데 뜬눈으로 밤을 새는 것이란...
잘려고 엄청 노력을 했지만, 뛸려고 발걸음을 내 던져도 제 자리인 마라토너의 마음처럼
정말 똑 같이 잠을 들수가 없었다.

잠을 못 잤다고 먼저 뛰라고 하질 않더라... 동아 마라톤은.
새벽에 출발지인 광화문으로 향하는 행렬에서 선배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다.
- 10km 까지는 절대로 오버 페이스를 하지 마라.
- 달리는 행렬의 중간이 아닌 바깥쪽으로 달려라.
- 5km 마다 놓여진 물을 계속  마셔 줘라.
. . .
많은 조언 중에서 정말 잊지 못한게... 늦게 뛰면 음수대에 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지방 대회의 준비 부족으로 인한 현상을 말씀하신 것이리라.
그래, 일단 물은 마실수 있도록 해야 되겠지!

출발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달려나갔다, 조금 빨리.
함께 출발한, 3시간 20분이 목표라는 정순홍님을 놓쳐 버렸다, 5km 지점에서
혹시나 물을 못 마실까봐...^^ .
뒤를 십여 차례 돌아 봐도 보이지 않는다.
목도 아프고 자세가 나질 않아 포기하고 다시 속력을 내었다.
이제 혼자서 3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는 것이 실감하긴 일렀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10km, 20km, 달리는 것이 생각 보다 쉬웠고 25km지점에서는 이러다 2시간 50분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SUB 3"는 대단한 것이라던데.... (달리는 내내 즐거웠다.)
하지만 처음 달려보는 그것도 풀코스를... 겁없고 건방진 초보 달림이를 신은 가만히 놔두진 않았다.
하체 종아리가 뻣뻣해 온다.
호흡엔 큰 무리가 없는데 다리를 잘못디디면 쥐가 날 듯....
25km 이후부터는 쥐가 나면 큰일이라는 마음과 더 빨리 뛰고 싶어도 지금까지 온 속도의 반에 반도 안되는 느림보 속도로
조심조심 달리, 아니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 신기하다.
마라톤에 임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업을 하며 잘나갈 때의 건방진 모습을 꾸짓듯 달리기에서도 나를 가만두지 않는 것 같고
잠실 운동장까지 마지막 한시간 동안의 달리는 머리 속 내내
가족, 나의 미래, 나의 주변인들 모습이 떠오른다.
빗물이 나의 눈물을 감춰 줄것이라는 생각으로 울며 또 울며 뛰었다.
이제는 새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여야 겠노라고...
이 한시간 동안은 너무도 좋고 훌륭한 생각들만 해서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종아리 통증으로 설설기고 있을 때 아마 천명 정도가 내 앞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25km 지점까지 오는 동안 내가 지나친 사람들이 모두다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아마도 사회생활에서라면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남에게 지지 않으려 하겠지만
지금 이것은 포기가 아닌 나의 현재 모습이며 그들의 능력인 것이다.
이 세상은 욕심으로만 살수가 없는 것이다.
얻고자 하는 결과에는 반드시 정당한 경쟁과 그에 따르는 노력이 따라야 하며
"3시간 17분 52초"라는 변경 불가능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명패가 따라 붙게 된다.

잠실 주 경기장에 들어서니 나와 같은 생각과 고통, 그리고 기쁨을 찾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10여분을 소리내어서 울었다.
곁에는 동호회 선배님들이 계셨지만 전혀 부끄럽지가 않았다.(사실 고글로 감췄다^^)
내가 42.195km를 뛰어 냈다는 것이 실감이 왔다,
마라톤 입문 한달만에 풀코스를 뛰었다고 주변에서는 칭찬도 해 주고
백여명의 동호회 사람들이 모여 자리를 함께 하며 축제의 분위기다.
우리 모임에는 아무도 포기를 한 사람이 없었으며 코스가 좋아 모두들 좋은 기록을 내었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마라톤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나누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웨이트 운동으로 근력을 더 키워주고 달리기에 대해서도 더 공부하며 채찍질 할 것이다.
80kg가 나가는 체중을 10kg 감량을 하고 스피드 훈련에 중점을 두어
내년에는 눈물이 없는 , 아니 감격의 눈물을 흘릴수 있도록 해 보아야 겠다.

동아마라톤이 끝난 다음날 아침, 딸아이와 함께 동백섬을 나갔다.
다리는 푹푹 쑤셔 왔지만 절룩절룩 뛰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전속력으로 여섯 바퀴를 돌았다.
이틀만에 하체의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마도 내년엔 고통도 없고 눈물도 없이 기쁨만이 있을 것이란 조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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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런걸 설상가상이라고 하져 (by ........) 세상에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by jjs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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