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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것

Biking2003.03.24 20:40조회 수 20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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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큰애기 갈치 배때기 맛 못 잊는데

박형진

보리 누름철이다.
산에 나뭇잎 우거져 밤낮으로 짝을 찾는 소쩍새 뻐꾸기가 울고 갯벌에는 도요새가 날아와 칠게를 쫓아 종종걸음을 치는 때이다. 이맘때부터 바다는 풍성하기 짝이 없어 조기 민어 농어 우럭 돔 불거지, 손바닥 같은 갈치, 팔뚝 같은 삼치, 서대 장대 벌두리, 상어 홍어 덕재, 중하 대하 백하, 쭈꾸미 낙지 고너리 젓거리, 오징어 꽃게 가재 꼬록 쏙 등 포·회·찌개·젓거릿감이 물 반 고기 반으로 섞여 있고, 갯벌에는 굴 반지락 가무락 살조개 미영조개 맛조개 키조개, 소라 배꼽 고둥 삐뚤이와 지충이 꼬시래기 파래 톳 샘이들이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널려 있다.
이 바닥이 어디던가? 서해 하고도 칠산바다, 그 중에서도 조금 때마다 고깃배로 미어터지던 변산반도 아니던가? 어업을 하는 사람은 말할 것이 없지만 어업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흘에 하루씩은 바다에 나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데인 것이다.
산벚이 필 때 못자리하느라 꽃 볼 새 없던 사람들도 모내기 전 이맘때는 일이 조금 한가해져서 바구니 끼고 바께스 들고 호미 갈구리 챙겨서 갯것을 하러 나간다. 물때 맞춰서 그렇게 나가기만 하면 무엇이 됐든 돌아올 땐 모두 다 한 바구니씩 채워 주는 것이 이 바다의 덕성인데 갯것도 다 취향이 달러서 어떤 사람은 굴만 따고 어떤 사람은 바지락만 캐고 어떤 사람은 게만 더듬고 어떤 사람은 고둥만 쫓아다니고 어떤 사람은 꼬시래기나 지충이만 뜯고 술 좋아하는 남정네들은 술안줏감을 찾아다닌다. 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 때의 갯것 많이 나는 해창 합구 성천 하섬, 유동 죽막 격포 활목 띠목의 처처 곳곳 바닷가는 그러니까 삼사동네에서 모인 술꾼 남정네들, 살림꾼 아낙네들로 한바탕 우지끈 우지끈, 하하하 호호호 생기가 넘치는 것이다. 그렇게 갯것들을 하노라면 목이 마르고 배도 고픈데 어느덧 물이 다시 들어와 갯벌과 바위는 아무 일 없었듯이 다시 잠기어 내일을 마련하고 바다에서 나온 사람들은 마을 들머리 가게에 들러서 저마다 가져온 한두 가지씩의 갯것을 손질해 놓고 아낙네 남정네, 목마른 한 잔의 탁배기를 들이켜는 것이다. 그렇게 잡아 온 갯것들은 적당한 방법으로 손질하여 젓을 담고 장아찌를 박고 지지고 무쳐서 저녁 밥상에 올리는 것이다. 그 싱싱한 바다를 올려서 늙으신 부모를 봉양하고 어린아이들을 먹이는 것이다.
정월 그믐 무렵부터 나오던 쭈꾸미가 알이 여물어서 대갈통이 딱딱해지면 대신 오징어와 자리를 바꿔서 바다 사람들을 살찌운다. 보리 쓰러지는 것 아랑곳없이 큰 비바람이 한번 칠산바다를 몰아때리면 오징어란 놈들이 저 먼 바다에서부터 몰려오는데 어디 오징어뿐이랴, 가득가득 알이 찬 꽃게 하며 중하 대하며 고너리 젓거리며 장대서대며 가재 꼬록 쏙이며 고기란 고기는 죄 몰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업을 하는 사람들도 크고 좋은 고기는 자기가 잡는다고 대고 먹을 수가 없는 것이어서 그런 놈들은 내다 팔고 찌끄럭지를 먹기 마련인데 그러나 이 바닷것은 하찮은 고기가 더 맛이 있고 찌끄럭지가 반찬으로 더 유용한 것이다. 보리 누름철에는 거의 모든 바닷것 갯것들이 알이 차는 때이라 크건 적건 하찮건 하찮지 않건 다 제각각의 독특한 맛이 있어 사실은 누구도 지지 않는 것이다.
그물에 걸리는 것 중에 보리새우라는 연붉은 색이 나는 작은 새우가 있는데 이놈이 가을에 잡히면 갈아서 김장 담그는 데 쓰고 이때 잡히면 절구에 갈아서 마늘 고춧가루 소금에 버무려서 양념젓을 담가 놓는다. 이것을 한 두어 달 익히면 여름 칠팔월이 되고 이때는 점심에 상추쌈을 많이 하는 때인지라 상추쌈에 삼삼하게 익은 이놈을 된장 대신 쌈장으로 쓰는 것이다. 이때는 날이 뜨거우므로 상추쌈에 배를 불리고 담배 한 대 꼬나물었다가 그늘 찾아 낮잠 한숨씩 자는 때라 부른 배에 그늘잠이 자칫 탈을 부를 수가 있으나 본디 새우젓과 게장은 밥을 빨리 삭히는 것이라 하여 예로부터 등짐장수가 먹지 않았다는 것처럼 이놈과 상추쌈을 하면 아무리 배터지게 점심을 먹어도 밥 안 삭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삼삼하게 익은 보리새우 양념젓의 그 화한 맛이라니…. 가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이게 너무 비싸고 잡히지 않으니 그물질하는 사람들도 잘 먹지를 못하지만 예전엔 너무 많아서 헛간의 재거름에 버무려서 호박 구덩이에 넣을 정도였고 적당히 잡히면 우선 삶아서 알과 살을 발라 먹고 혹은 소금물에 한 사나흘 담가 놨다가 살만 빼서 젓을 담그든지 아니면 적당히 손질하고 토막쳐서 게무젓 담그듯이 고춧가루 벌겋게 젓을 담았다가 바로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먹을거리들과 방법은 고래적부터 본바닥 사람들이 아니면 구경하기도 맛보기도 어려운 것들이리라.
오징어 꽃게도 마찬가지여서 지금이니까 이렇게 귀하고 비싸지 예전에는 너무 흔하여서 모두들 배터지게 먹고도 얼마든지 내다 팔 수가 있었고 심지어 거름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고기가 흔하니 지금처럼 회로 먹기 위하여 생으로 유통되는 법도 없었고 (물론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만) 포로 만들었다가 한 죽씩 묶어서 배로 한 배씩 나갔는데 오징어 말리는 데는 우리 같은 조무래기 손도 필요할 정도였다. 이 오징어란 놈은 맛이 약간 간 것을 따서 지붕에 올려 하루볕쯤 쪼여 말렸다가 삐득삐득할 때 아궁이 불에 구워 먹어야 오징어의 참맛을 알 수 있다.
몇 수억 개인지도 모를 알을 내 품어 버린 꽃게란 놈을 보고 어느덧 보리 벨 일이 걱정스런 어른들은 <게도 보리 비기 싫어서 알 품었네그려> 하며 사람에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이 꽃게는 뻘떡기라고도 하는데 탕도 좋고 장도 좋지만 알 품지 않은 놈을 골라서 뚜껑 따고 그 속에 소금을 가득 쟁여서 다시 덮고 단지에 차곡차곡 담아 놨다가 소금이 삭을 만한 한여름철에, 그러니까 한 두어 달 지난 다음에 꺼내 먹어야 그 고소하고 깊은 감칠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월 삼월 저 아랫녘 흑산에서부터 올라온 조기는 이 칠산 바다에 다다를 즈음이면 알이 배이는데 이놈은 소금물에 한 삼 일 담가서 간을 들였다가 바닷바람에 쏘이며 볕에 말리고 적당히 마르면 보리 항아리 속에 파묻어서 보관을 하는데, 어쩌다 여름 밥맛을 잃었을 때에는 이놈을 꺼내서 쪽쪽 찢어서는 고추장에 찍어서 보리밥 물 말아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 대번 구미가 당기는 약인 것이다. 농어는 또 어떤가? 유월 농어라 하여 앉은뱅이도 일어서고 곱사등이도 펴진다는 이 유월 보리 누름철부터 잡히는 농어는 배를 갈라 보면 희게 빛나는 기름이 꽉 들어차서 버릴 것 하나 없는 창자를 싸고 있고, 그러나 그 중에도 가운데 토막은 맛이 좀 덜하니 소금으로 독간을 해서 단지에 담아 놓고(이것도 소금이 삭을 무렵에 꺼내서 쪄 먹는다) 맛있는 창자 대가리 꼬랑댕이만 끓여서 먹는데 벌겋게 끊이면 매운탕이요 미역 넣고 끓이면 농어미역국인 것이다.
어느 해 여름이던가 나 사는 곳에서 몇 동네 떨어진 통포라는 곳에서 사람이 왔다. <빨리 통포 앞장불로 와서 괴기 받아 가라>는 낚시질 간 아버지의 심부름을 맡아서 온 사람이었다. 해서 동네 근방에서나 하지는 고기를 쫓아서 통포까지 갔다고 어머니는 구시렁대고 형님들은 헌 구럭을 메고 고기를 받으러 갔다. 대낮에도 도깨비 잘 나는 숯구덩이 미친년 잔등이 올 때쯤 해서 나도 나가 보았는데 농어 우럭 돔 불거지, 아버지 구럭에도 고기가 한 구럭이요 형님들 가져간 구럭에도 고기가 한구럭, 거기다가 구럭 속에 안 들어가는 꼭 내 키만한 농어는 아가미에 기드란 막대기를 끼워서 땅에 질질 끌며 오시는 거였다. 그렇게 큰 농어와 고기사태를 그때 이후 나는 여적지 본 적이 없다. 낚아온 농어가 너무 크니까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처마에 쉬미대를 걸고 마루에 앉아 쌈지의 써럭초 한 대를 말아 잡수시던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가지 말고 있다가 저놈 낄여서 먹고들 가소이?」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한데 보리새우젓 잘 담아 여름 상추쌈 싸 주시던 어머니도, 농어 낚고 조기 말려 내 밥숟갈에 올려 주시던 아버지도 가시고 어언 사십이 넘은 내가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키우던 방법으로 나도 내 새끼들을 먹이고 키우는가 싶다.
이런 것이 나의 정체성인데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바로 새만금지구가 그 품안에 든 칠산바다가 있기 때문임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그러나 조만간에 이런 것이 사라져 간다면? 몸에 소름이 돋고 모골이 송연해질 뿐이다. 가뜩이나 바다가 오염돼서 고기가 잡히네 안 잡히네 하는 이때에 설상가상으로 간척사업이라니, 땅땡이가 좁아서 그런다면 지도를 좀 보아라, 구질구질하게 이러지 말고 변산반도에서 중국 산동반도까지 싸그리 뚜드려 막아 버릴 생각은 왜 못하는가? 배운 놈들은 도대체 대가리로 뭔 생각들을 하고 자빠져 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이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멸치 갈치 전어 이야기나 좀더 해 봐야겠는데 어차피 같은 내용이 될 터이니 이왕에 써 놓은 것을 옮겨 적기로 한다. …요즈음은 멸치가 잡힐 철인데도 멸치가 잡히지 않아서 그물질하는 사람들 어깨엔 힘이 없다. 농사도 그렇고 어업도 마찬가지여서 가격은 고하간에 풍년이 들고 많이 잡혀야 사람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법인데 멸치야 무정한 멸치야, 칠산바다의 그 많던 고기들이 다 어디 가고 때가 되어도 올 줄을 모르는가― 멸치 떼가 들어와야 가을의 바다는 비로소 풍성해진다. 멸치를 뒤쫓아온 고기들이 덩달아 잡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어란 놈은 멸치처럼 떼를 지어서 멸치 뒤를 쫓아오는데 이런 놈들은 후리 그물이나 전어 그물로 한번 둘러쌌다 하면 지게 바작에 가마니를 들이대고 퍼 날라도 남을 정도로 엄청났다. 이맘때 잡히는 이놈들은 우선 꼬랑지가 가을 독사 노랗게 약이 차서 사람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바르르 떠는 것처럼 노랗게 푸들거리는 기름이 올라 있는데 이걸 그냥 비늘도 긁지 않고 굵은 소금 뿌려 한 시간 정도 놔뒀다가 저녁 아궁이 불에 석쇠 얹고 구워 놓으면 기름이 벅적거리면서 냄새가 울 안에 진동한다. 전어는 이렇게 통째로 구워서 저녁밥과 함께 손에 들고 김치 싸서 대가리부터 창자 꼬랑지 할 것 없이 모조리 뼈째 씹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멸치 뒤를 쫓아오는 것 중에 특히 갈치를 뺄 수가 없다. 애들 손바닥 같은 풀치야 많이 잡히면 풀치젓을 몇 동이씩 담그든지(이 풀치젓은 한 일 년 삼삼하게 익혀서 먹으려고 상에 올리면 고릿한 냄새가 방 안에 꽉 차 버려야 제대로 된 것이라고 했다) 엮거리를 엮지만 배에서 평생 그물을 당기는 뱃사람들의 그 두툼한 손바닥 같은 갈치는(갈치의 크기는 어른 손가락 세 개 넓이냐 네 개 넓이냐로 따졌다) 하얗게 번득이는 비늘을 대충 긁어 버리고 밭에서 막 따온 서리 호박과 함께 얼큰하게 지져 놓으면 그 쌈박한 맛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이러지 않으면 토막쳐서 소금 뿌려 한 시간 정도 간이 배게 했다가 석쇠에 구워 먹는다. 갈치의 살은 무르고 빨리 익어서 피가 끓는 한창때 나이의 장정 겨드랑이에 넣었다가도 먹는다 하였는데 이 중에도 칠산바다에서 잡히는 갈치 배때기 살은 특히 기름지고 연해서 오죽 맛있었으면 위도 큰애기가 갈치 배때기 맛 못 잊어서 뭍으로 시집을 못 간다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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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진
1958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고, 1992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 가고』, 산문집으로 『호박국에 밥 말아 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세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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