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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자전거 타는 맛을 알어?

joamtb2003.06.25 14:14조회 수 60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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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에서 옮김>

"너희가 자전거 맛을 알아?"          -오마이뉴스 이국언 기자  -



"저녁마다 나가서 배웠습니다. 무릎이 깨지고 어깨를 다쳐가면서도 또 나와서 탔습니다. 여편네들이 가랑이 쫙 벌리고 뭔 짓이냐는 그 양반 마누라도 결국은 다 탑디다."

온동네 사람이 자전거를 타는 마을이 있다. 남자들의 얘기가 아니다. 칠순이 내일 모레인 할머니들. 팔순이 넘은 할머니들의 얘기다.

"지팡이 짚은 사람 빼곤 다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광산구 용동마을. 70여호 남짓한 이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는 부녀자는 28명 정도. 한 집 건너 한 집은 자전거를 타는 셈이다. 다섯 명 정도를 제외하곤 모두 회갑이 지났다. 모두 손자까지 있는 할머니들이다. 다섯 명 정도는 회갑을 바라보는 나이들이다.

행정구역상 광주시에 속하지만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이 농촌 마을은, 마을 인근에 평동공단이 조성되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 자전거 붐이 일어난 건 4∼5년 전. 한적하면서도 넓은 아스팔트 길이 생기면서부터다.

<자전거 타는 모습에 괜히 시기심 생겨>

이 마을에 자전거를 퍼트린 건 '학동댁'(70). 처음엔 눈에 거슬리게 보이면서도 어느새 사람들은 '질투'가 생기면서 괜히 부러워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흔이 다된 사람도 타는데 60 먹은 사람이라고 못 타겠느냐는 시기심이 생긴 것.

자전거를 배우느라 무릎에 물이 차 한동안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는 '나주댁'(63). 나주댁은 눈이 온 날도 나가서 배웠다고 한다.

"아들이 뭐라고 할까봐 저녁밥 먹고 말도 안하고 나갔습니다. 남이 볼까봐 안 보인데 가서 오늘 죽으나 사나 기어이 뿌리를 뽑자고 덤벼 들었지라."

말심 좋다는 '장성댁'(69)의 말이 이어졌다.

"12시 넘고 새벽 1시가 넘었습디다. 지금은 전기불이라도 있는데 그때는 진짜 달빛보고 연습했습니다."

자전거를 배울 욕심에 팔을 다치기도 한 장성댁은 그날 기어이 자전거를 타고야 말았다고 한다. 자정을 넘겨가는 투지를 보이며 하룻밤만에 자전거를 배운 것이다.

일찍 허리가 굽은 편인 '인천댁'(68)은 "하나둘 타고 다니니까 나도 기어이 타고 싶었다"며 "영영 못 탈 것으로만 알았는데 실상 타고 보니까 쉽더라"고 말한다. 시퍼렇게 멍이 들고 손등을 시멘트 벽에 부딪혀 지금도 흉터가 남았지만, 내리막길을 달릴 때나 커브를 돌 때의 그 상쾌한 기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허리 못 쓰는 사람일수록 배워야 하겠더라"며 "자전거 핸들을 잡게 되면 자연스럽게 허리가 펴지게 된다"고까지 말한다.

<남자들 눈 피해 저녁마다 모여 연습>

자전거 붐이 한창 일 때 동네 부녀자들은 남자들의 눈을 피해가며 매일밤 저녁을 먹고 난 뒤 마을 멀리 한적한 곳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눈이 펄펄 내려도 쌓이지 않을 정도만 되면 무조건 나가다시피했다는 것.

매번 넘어져 다치기 일쑤였지만 다쳐도 쉬쉬했다고들 한다. 늙어서 자전거 타다 다쳤다고 우세(비웃음)라도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보수적 관념이 뿌리깊게 남아 있던 상태에서 남자들의 눈총도 적지 않았다.

"동네 못된 짓 하고 다닌다고 구식 어른들이 뭐라고 합디다. 상놈의 동네 구석 될라고 그러느냐고."

광산댁 할머니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깥 할아버지의 질책에 자전거를 타고 싶어도 탈 수 없었다. 다치기나 하면 무슨 창피며 또 동네 소문날까 싶다는 것. 할아버지 호통에 어쩔 수 없었던 광산댁 할머니는 몇 해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뒤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나이 76세 때였다.

"아들네들이 언제 배웠느냐고 모두 웃습디다. 운동도 되고 얼른 무슨 일 보러 갔다 올 수도 있어서 편리합니다."

광산댁 할머니는 다시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 갔다.

이 마을에서 우체국과 농협이 있는 옥동 동사무소는 1.5㎞ 남짓 떨어져 있다. 걸어서 족히 30분은 걸리고 1시간 간격으로 있는 마을버스는 시간 맞추기가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 불편해도 버스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남자들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약주 한잔이라도 걸치는 날엔 아무리 바쁜 소리를 해도 함흥차사가 되기 일쑤였다.

할머니들은 자전거의 편리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한다. 조미료 하나 사러 가고, 고추를 갈러 가고, 소재지에 머리를 하러 나가더라도 이제는 '쏜살같이' 다녀올 수 있다는 것. 논에 일 보러 가고 공단에 일을 나갈 때도 자전거는 고장 한번 없이 그렇게 요긴할 수가 없었다.

<"눈 펄펄 내린 날 자빠지고도 신났다">

자전거는 오히려 남자들을 편하게 했다. 전처럼 웬만한 잔 심부름 때문에 자신들을 불러들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시합도 벌이고 했습니다. 어울려서 공단을 몇 바퀴 돌기도 하고, 자빠지고도 너무 신이 납디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좀 지나자 용감해졌다. 이들은 자전거 타는 모습을 과시하고 싶은 욕심에 괜히 남의 동네 앞을 지나가기도 했고, 또 일부러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런 까닭이었을까. 어느새 이웃 마을인 지죽동과 영천마을에도 자전거가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두 마을 아주머니들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앞에서는 뭐라고 할지 몰라도 지금도 못 탄 사람들은 뒤돌아서서는 다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는다. 또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처럼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스스로 배워야 합니다. 남이 잡아주거나 부축해 주면 습관이 돼 더 못 배웁니다."

인천댁은 이제 남다른 비법까지 전하고 있다. 장성댁은 더 젊어서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미련하게 바보같이 살았어. 진작 배웠어야 하는 것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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