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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탄 시디굽던 노인(정말 이상적인 비유) < 모대학원 사이트에서 퍼왔어요. >

이진학2003.07.17 14:18조회 수 43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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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4년 전이다. 내가 갓 게이머가 된지 얼마 안 돼서 용산구에 올라가 살 때다.

용산역에 왔다가는 길에, 게임 시디를 한 장 사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용산역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게임 시디를 구워서 파는 노인이 있었다.

게임을 한 장 사 가지고 가려고 구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를 것 같았다.

"얼마 알아보고 왔소?"

"한 장에 5천원 아닙니까?"

"한 장에 만2천원이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다른 곳은 5천원이던데..." 했더니,

"시디 한 장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 없는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구워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이미지를 뜨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뜨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클릭하고 저리 클릭하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다이렉트로 구우면 다 될 건데, 자꾸만 이미지만 뜨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구워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TV에서 "카드 앵벌이 싸구려"를 방영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이미지 안 뜨고 CD to CD로 구워줘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구울 만큼 구워야 시디가 돌아가지, 공시디에 라이터 지진다고 돌아가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굽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용팔이시구먼,

카드 앵벌이 한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방영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구워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인식이 안되고 뻑이 난다니까. 시디란 제대로 구워야지,

굽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이미지 뜬 것을 숫제 1배속으로 걸고

태연스럽게 새턴을 켜고 야구권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흥분해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시디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게임 시디다.

방영 시간을 놓치고 녹화본을 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용팔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용산역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용팔이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용팔이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시디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구웠다고 야단이다.

통신 판매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싸구려 벌크 시디로 구우면 얼마 못 가서 시디가 인식이 잘 안되다가

데이터가 쉬이 날아가며, 무리하게 고배속으로 구우면 다운이 잘 되고

동영상이 끊기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복사 시디는 고급 화이트 골드 시디에

스카시 방식 레코더를 사용해 저배속으로 구워 좀체로 뻑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시디는 한번 동영상이 끊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복사 시디를 구울 때 이미지를 미리 뜬 뒤에 이미지가 제대로 떠졌는지

가상 시디 이미지로 잡고 에뮬레이터로 확인을 한 뒤에 비로소 굽는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IDE 방식의 레코더로 CD to CD로 직접 굽는다.

금방 굽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몇 시간씩 걸려 가며 이미지 뜰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중고 게임기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중고 플스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재생 렌즈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정품 렌즈는 세 배 이상 비싸다.

정품 렌즈란 다른 중고 플스에서 떼어낸 수명이 다 된 렌즈가 아닌 신품 렌즈인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신품인지 가변 저항을 조절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용팔이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정품 렌즈를 달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시디를 굽는 그 순간만은 오직 잘 돌아가는 시디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불법 복사 시디를 만들어 냈다.

이 시디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게이머에게 용팔이 소리를 듣는 세상에서, 어떻게 잘 돌아가는 복사 시디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오이 3개에

오렌지맛 쿠우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단속이 떠서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용산역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무너질 듯한 용산역 밑으로

용산견이 잠을 자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용산견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시디를 굽다가 우연히 용산역의 마스코트인 용산견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그랫쿠나 무서운 쿠믈 쿠엇쿠나!"

초난강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DVD 레코더로

플스 2 DVD를 굽고 있었다. 전에 플스 1 시디를 4배속 레코더로 굽던 생각이 난다.

플스 1 복사 시디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플스 1 복사 시디 판다는

스팸 메일도 날라 오지 않는다. "파이날 환타지 쎄븐"이니, "도끼매끼 메모리알"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년 전 시디 굽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도 언제나 언제까지나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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