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S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며, 나의 가슴속에 못다이룬 꿈들을 오로지 가슴에
묻고, 눈물만 삼키고 만다.
대회에 참가하기위해.. 아들과 함께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해맑은 웃음을 지을수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나도 좋은 아빠, 좋은 부모 만나서 저렇게 즐기면서 살수 있었으면.........
하지만, 나는 안다..아무리 내 가슴에 하소연하고, 불평해도 소용없다는것을..
다만 사랑하는 우리 엄마의 가슴만 더욱 아퍼질것이라고.. 그래서 단 한번도 말한적... 내색한적없다.
엄마의 고통..또한, 내가 아는 것보다는 훨씬 많겠지?
사십평생을 재봉틀앞에 앉아, 먼지를 마시며.. 자식이라는 것 때문에..산다는것을.. 모성애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라 믿는다.
엄마 아빠의 성격은 정말루 달르긴 아주 많이 달렀다..
어느 누가 부부는 사라가면서 닮어간다고 했는가.. 예외가 있다면 바로 내가 사는 환경일것이다.
결국에 결말은 서로의 가슴만 찢어지고, 평생을 머리가 파뿌리가 될때까지 산다는것을 이루지 못하고..
얼마전까지 엄마아빠같이 사용하던 방에는.. 엄마 홀로 차가운 벽을 보면
흐느껴 우시던 엄마의 모습에 외로움과 나의 가슴이 찢어지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사십평생의 노력에 결과가 바로 이것이 었던가.. 엄마가 너무도 불쌍하고 정말 미쳐버리겠다.어떡해 도와드리고 싶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의 아빠라하는분은 못본지가 어언 한달여 지나는듯 하다.사실 보고도 싶지 않다.
내 나이 열일곱.. 아직은 내적,외적으로 덜 성숙했다 생각한다.
하지만 슬픔은 누구보다 많이 느끼고, 친구들과 주먹다짐을 하거나 누구의 앞에서던 반드시 눈물 흘리지 않았던 내가.. 집에 큰소리가 나면 외이리도 나약해져서 눈물만 흘렸던가..
이제는 엄마와 나 그리고..형이다. 대학교를 다닌다는 형은 집안일에 통 관심을 갖지도 않고 그런다.. 엄마만 죽어나는거 같다. 비록 나의 고통이 엄마의 고통의 비한다면 얼마 않되겠지만, 형의 등록금과 나의 학교 수업료와 학원비 생활비 등을 충당하기는 너무도 힘든거 같다.
비록 수입의 반이 줄어든 지는 비록 한달밖에 않지났지만, 아빠라는 분이 자꾸 눈에 밟히고, 어렸을때의 좋은 기억들뿐 커서는 통 욕얻어먹고 자란것뿐이
없는듯 싶다..
나를 아들로 생각한적 없다는 무심코 툭툭 내던지는 말들이 어렸을때는 왜 이렇게 가슴이 매여서 이때까지 기억나게 하는것일까..
나의 머리속은 복잡하다.
초등학교 때 부터 타고 싶었던 산악자전거라는것을 이제나 시작해 볼려고 했는데..엄마가 처음으로 오늘 술을 드시면 막 우시면서 나를 안으셨다.
미안하다고.. 너희들을 고생시켜서 엄마는 가슴이 찢어질꺼 같다고..
그말을 들으니.. 내가 너무도 헛되게 살고 공부도 잘 않하고 그랬던것이 생각난다.. 형과 나는 부모님의 이혼전과 후의 모습그대로 살고 있었는데..
엄마는 다시 산다는 마음으로 산다고 하셨다. 허나, 형과 나는 할일 다하고 그러는와중에.. 엄마는 봉제공장서 먼지를 마시며 일하고 돌아와 힘들게 누워계시는 엄마있는데, 나 자신은 나의 순간의 쾌락만을 위해 자전거를 사달라고 사정도 모르고 쫄랐던 내가 왜 이리도 밉고 바보스러운지..
얼마전 공장서는 같이 일하는 나이도 적은 한 여자가 엄마한테 시비를 부치고 싸우다가 이혼한년이라는 소리를 했다하면서..집에 돌아와 화를 가라 안치시지 못하고, 이렇게 만든 아빠를 원망했다.
나는 반드시 성공해서, 첫째로.. 나를 17년동안 키워준 아빠가 그렇게 원하는 그 빚은 돈으로 다 갚고.. 평생 엄마를 모시고 살겠다.
엄마가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공부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산악자전거의 흥분과 떨림이 영 가시지가 않아 걱정이다..
두서가 없이 글을 쓴거 같네요.. 제 심정을 조금 담아 글을 올립니다.
너무도 답답해서요.. 그렇다고 누구의 조언이나 연민등을 받기위해 올린글이아닙니다. 너무도 답답하고 힘들어서 글을 올립니다.
왈바 식구들께 항상 좋은일만 있으시길 바라고요..
건강도 좋고 돈 명예도 좋지만, 가족과 나를 양육해주시는 엄마의 사랑을 저도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할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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