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날씨가 서늘할 것이라고 점퍼를 걸쳤다.
하루 이틀 밤 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니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갔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나 더 걸치고 나간 것이다.
도시의 외곽,
인근 읍면에서 접근하는 도로는
통행 차량이 없어서 한산하다.
달포 전에는 강도가 지나간 길이지만
오늘은 지나가는 차가 더 적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길 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는 것과
제복을 입었다는 사실이 내 근무를
피곤하게 한다.
통행 차량이 적으니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인근 아파트의 층 수도 세어 보고
가끔 지나가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기도 한다.
그것도 지쳐서
무릎을 돌리고 아픈 다리를 굽혔다 폈다하는 찰나
연두색 벌레 한 마리가
아스팔트를 좌에서 우로 횡단하고 있다.
주변 가로등 빛에 날개의 투명한 색이 비치는 것을 보니
아마 여치 종류일 것이다.
이 녀석의 궤적을 살펴 보기로 했다.
느린 걸음으로 도로를 횡단하고 있는데
그런 걸음이라면 지나가는 차에
희생 될 것이 뻔하다.
다행히 통행하는 차량이 많지 않아
두 대의 차는 무사히 지나쳤다.
노란 두 줄의 중앙선에선 한 참을 머물러 서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쉬고 있는 듯도 하다.
다시 벌레가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앞에서 오는 차가 아닌
뒤에서 오는 차를 신경 쓸 차례이다.
두개의 차선 중에 하나, 즉 1차로를 통과하고 있는데
다행히 2차로로 차가 지나갔다.
아파트의 검은 그림자 너머로
희뿌연 불빛이 오늘 내일 중으로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전하는데
아뿔싸!!
한낱 미물,
여치 비슷한 벌레는 다 건너간 도로를
다시 건너오고 있다.
잠시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절대자가 있어서
우리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면
저 벌레와 다름이 무었일까?
지금까지는 행운이 있어서 차에 치이지 않았지만
언제 뭉개질 지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중앙선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이다.
녀석을 집어서 길 가장자리
풀 숲으로 던질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자연의 일부인 것을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본적인 생각으로 그냥 두었다.
처음 길을 건너갈 때도 노심초사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갔던 길을 다시 건너오는 녀석을 보면서
공연히 내 가슴이 뛴다.
뒤에서 차 소리가 들리면
어느 차선으로 오는지,
저 녀석의 속도에는 화를 면할지 못 면할지….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다가
내 앞에서 오는 차,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내 뒤에서 서게 된 그 차량을 뒤돌아보고
다시 눈길을 돌린
그 자리엔
아무런 흔적이 없다.
날아갔거나, 내가 못 본 사이에
어떤 차에 치었는지도 모른다.
안경을 고쳐쓰며
눈이 뚫어져라 바라본 도로 어디에도
그 녀석의 잔해는 없다.
그냥 마음 속으로
잘 갔으려니
아무 일 없으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점퍼 속으로 더운 바람이 머무는 듯해 바라다 본 길가엔
메타세콰이어와
회화나무 가로수가 옅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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