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입맛이 그리 까탈스럽지 않은 편이다.
남들이 일견하기엔 먹는 양이 좀 작은 편이고
오래 먹는 습관이 몸에 배서 조금 까탈스럽게 보일지는 몰라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런 내가 나이 마흔이 거의 다 되도록
먹지 못하는 음식이 두 가지가 있었다.
과메기와 홍탁이 그것이다.
서른 중반 무렵엔가 집앞의 잘 아는 가게에 놀러갔었는데
과메기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분위기에 취한 나머지 평소 먹지 않던 것인데도
미역에 싸서 입에 넣어주는 걸 덥썩 받아먹었는데
고소한 맛이 입안에 일순 감돌긴 했지만
재차 받아먹을 정도의 감흥은 주지 못했다.
"내가 죽으면 내 무덤 옆에 커다란 술독이나 하나 묻어 다오"
"아버지, 그건 왜요?"
"나중에 늙어죽는 건 겁이 안 난다만 술을 못 먹게 될까 무서워 그런다."
"어찌 드시려고요?"
"기다란 빨대를 내 입에 물려서 묻어 다오.
나중에 성묘때 와서 보고 술독이 비었거들랑 채워 놓고 가라"
여지껏 술을 그렇게 많이 드시는 양반을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말술이셨던 아버님께선
유난히 홍탁을 좋아하셨다.
가끔씩 아버님께서 술안주로 드시던 홍탁을 권하셨는데
처음 맛보고 고역을 치르며 뱉어낸 뒤로 늘 거절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내 입맛도 변했나 보다.
불혹을 막 지났을 무렵,
취미 동호회에 회원으로 있던 여류작가 한 분이
과메기에 대한 예찬을 어찌나 맛깔스럽게 장문의 글로 표현했던지
다소 불편했던 과메기의 추억은 깡그리 날아가고
그 글에 그만 흠뻑 취하고 말았다.
내가 하도 감탄을 하니 자신의 고향이 포항이라며
한 박스를 거저 부쳐 주겠다고 했었다.
정신적으로 세뇌(?)를 당한 뒤라서 그런가?
다시 찾은 과메기의 맛은 그야말로 숨겨진 천국의 맛이었다.
홍탁에 심취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3년쯤 후의 일이다.
아버님께서 드시는 홍탁은 주로 두툼하게 썬 것이 주종이었는데
어느 날 책에서 홍탁의 유래와 맛에 대한 예찬을 써 놓은 글을 보고
또 세뇌되고 말았다.(줏대가 없는 겨 내가..)
그 뒤 어느 모임이 있어 갔더니 아주 얇게 썬 홍탁이 나왔다.
약간은 찜찜한 마음도 없지는 않아 얇게 썬 것들 중에서도
조그만 조각으로 골라 우선 초장에(초짜니까) 찍어서 조심조심 맛을 보았다.
그리고 책에서 본 내용을 떠올리며 정신적인 감응점을 찾아 혀를 놀렸다.
아, 거기에도 역시 천국의 특별한 맛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개 가격을 보면 칠레산 가오리일 게 뻔하지만
없는 살림에 먹고 싶은 걸 어떡해?
비록 칠레산일 확률이 컸지만 그나마 그거라도 올핸 참 많이도 먹었다.
오늘 티비에서 흑산도 홍어잡이 배를 따라간 리포터가 어느 집을 방문해
맛깔스럽게 곰삭은 홍탁을 돼지고기와 묵은지에 싼
홍탁삼합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침을 바가지로 흘리고 말았다.
(ㅡ,.ㅡ 저..저..오리지널 흑산도 진땡이에 3년 묵힌 묵은지에 돼지고기에..으흐흐)
게다가 이제 곧 찬바람이 슬슬 부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으니
벌써부터 과메기 생각에 군침이 돈다.
올가을과 겨울엔 구룡포 과메기를 몇 상자쯤 작살낼꼬?
못 먹는다고 포기할 뻔했던
이 행복한 두 음식을 알게 된 건 내겐 행운이다.
두 음식이 나이들어가는 내 마음에서 어느 날 만났다.
어제 산에 갔다가 힘이 좀 남아돈다고 저녁을 먹고 나서
야심한 밤까지 장거리 도로라이딩을 했더니 펴졌나 봅니다.ㅋㅋ
오늘은 그만 쉬고 말았습니다.
감당할 만큼만 타잣!!!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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