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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누이의 모습을 찾다

탑돌이2009.09.08 00:57조회 수 510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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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6월 중순 심야였습니다.

계절적으로 가장 무더운 시기였음은 나중에야 알았지요.

시차로 인하여 일찍 눈을 떳고

밤새 켜 놓은 에어컨 바람에 머리도 묵직하기도 하여

시원한 바람이나 쐴 요량으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음에도 

숨이 허걱 막힐 지경입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섭니다.

 

제법 고급 주택들이 늘어선 골목을 지나 모퉁이를 도는 순간

40년도 전에 보았던 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누이는 창백한 하늘색 사리를 입고 있었고

홀쪽한 바지는 말목 부분에서 댓님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허리를 다소곳이 굽히고 한손으로 무릅을 괴고

다른 한손으로는 말총 같은 빗자루를 들고

대문 앞을 쓸고 있었습니다.

 

쓸려 나가는 것이라고는 은단만한 모래 뿐임에도

마치 밥먹고 난 뒤 양치질을 하듯

하루의 의식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허리까지 흘러 내리는 삼단같은 머리는 하얀 천으로 몇차례 단호하게 묶여 있었는데

가느다란 허리 쯤에서 옆으로 흘러 내렸습니다.

 

그 누이는 낯선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였는지

흘긋 처다보고는 이내 대문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의식의 망각속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습니다.

 

 

어느 외국 특파원이 묘사 했듯이

Global and medieval

이곳은 세계화의 첨단성과 중세성이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달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면서도

도시 하수도관은 곡괭이로 파내어 나무상자에 담아 머리에 이어 나르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벤츠 S시리즈와 나란히 나무바퀴 소달구지가 도로를 공유하는,

도로 한복판에 소들이 나들이 나와  되새김질을 해도

새로운울 것 없고 아무도 눈길한번 주지 않는 그런 모습...

 

하루 일당 2천원을 받고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하는 노동자와

연봉 1억원이 적다고 이직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

 

이들의 미덕은 다양성을 받아 들일 줄 아는 유연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듯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외래인의 눈에는 극심한 혼란도 이들에게는 일상적인 삶의 공식으로 받아 들여지는 듯 합니다.

 

흐려졌던 눈에 촛점이 잡히듯 낯선 세상이 또렷한 상이 되어

익숙하게 다가 옵니다.

경이로운 세상이 다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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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리지 말아야할 것 또 하나!!!!! (by ........) 잊을 수도 있지요...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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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이국의 낯선땅에서 힘드실텐데 이렇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니 행복하시겠습니다~~~~^^
  • 인도를 일컬어 '마음의 고향'이니 '신비의 나라'니 하는 게

    서양인들의 우월감에서 기인한 오리엔탈리즘에 의한 것이라고도 합니다만

    저도 때로는 아직도 버젓이 카스트제도가 존재하고 있는 인도의 현실이

    종종 이해가 잘 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 생각마저  제삼자의 시각이겠지요.

    정작 본인들 자신이 유연성을 가지고 그런 현실들을 받아들이며

    행복하게만 살아간다면야...

     

    다양성을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은 정말 가치 있는 덕목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오.

  • 얼마 전 제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주방 일을 하시는 아주머니께

    나름 나이 든 체를 하면서 옛날 가발공장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 분의 반응은 '나는 그 때 그렇게 살지는 않았다'는 것이어서
    좀 머쓱해 지기는 했지만

    사실 우리 어릴 때의 누이들이란
    가난한 살림에 어떻게든 어린 동생들 뒷바라지라도 하려는 일념에
    서울행 열차를 타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그런 분들이었지요.

    세월이 좀 흘러서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이 되었지만
    그 분들의 희생정신으로 이만큼 사는 것이니
    절대 잊어서는 안되고, 아이들에게도 말해 주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누나는 없지만
    옛날을 생각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 글을 서정적으로 참 잘 쓰시는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 사실,

    우리들에게도 다양성이란게 존재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연유와 주어진 환경과 여러 요소들에 의해서 억눌리게 될 수도 있겠고

    자신의 성격적인 면...등....다양한 요소들에 의해서 펼쳐지지 못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오랜만에 탑돌이 형님 특유의 살가운 글을 읽게되는군요...

  • 누이의 환생처럼 보이는 것이, 전생의 연이었나 보네요 ^^

    게으름이 죄가 되지 않는 곳, 인도......

    유일신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신이 존재하는 나라라지요?

    인도, 언젠가 장기여행을 갈 곳 중 한 곳입니다. ^^

  • 바보이반님께
    탑돌이글쓴이
    2009.9.9 01:44 댓글추천 0비추천 0
    사람마다 각기 섬기는 신이 있다고들 하니 최소한 10억 위 이상의 신이 있을 걸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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