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6월 중순 심야였습니다.
계절적으로 가장 무더운 시기였음은 나중에야 알았지요.
시차로 인하여 일찍 눈을 떳고
밤새 켜 놓은 에어컨 바람에 머리도 묵직하기도 하여
시원한 바람이나 쐴 요량으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음에도
숨이 허걱 막힐 지경입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섭니다.
제법 고급 주택들이 늘어선 골목을 지나 모퉁이를 도는 순간
40년도 전에 보았던 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누이는 창백한 하늘색 사리를 입고 있었고
홀쪽한 바지는 말목 부분에서 댓님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허리를 다소곳이 굽히고 한손으로 무릅을 괴고
다른 한손으로는 말총 같은 빗자루를 들고
대문 앞을 쓸고 있었습니다.
쓸려 나가는 것이라고는 은단만한 모래 뿐임에도
마치 밥먹고 난 뒤 양치질을 하듯
하루의 의식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허리까지 흘러 내리는 삼단같은 머리는 하얀 천으로 몇차례 단호하게 묶여 있었는데
가느다란 허리 쯤에서 옆으로 흘러 내렸습니다.
그 누이는 낯선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였는지
흘긋 처다보고는 이내 대문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의식의 망각속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습니다.
어느 외국 특파원이 묘사 했듯이
Global and medieval
이곳은 세계화의 첨단성과 중세성이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달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면서도
도시 하수도관은 곡괭이로 파내어 나무상자에 담아 머리에 이어 나르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벤츠 S시리즈와 나란히 나무바퀴 소달구지가 도로를 공유하는,
도로 한복판에 소들이 나들이 나와 되새김질을 해도
새로운울 것 없고 아무도 눈길한번 주지 않는 그런 모습...
하루 일당 2천원을 받고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하는 노동자와
연봉 1억원이 적다고 이직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
이들의 미덕은 다양성을 받아 들일 줄 아는 유연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듯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외래인의 눈에는 극심한 혼란도 이들에게는 일상적인 삶의 공식으로 받아 들여지는 듯 합니다.
흐려졌던 눈에 촛점이 잡히듯 낯선 세상이 또렷한 상이 되어
익숙하게 다가 옵니다.
경이로운 세상이 다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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