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시골 길을 걷고 있었다.
마침 말년 휴가를 온 아들이 급히 차를 쓸 일이 있다고 하여
아들에게 차 키를 내 주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시골로 가기로 했었다.
버스에서 내려 십리나 되는 길이었지만 옛날 학창시절의 추억에
젖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서였다.
이틀은 일하고 이틀은 쉬는이른바
4조 4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간 근무를 마치고 쉬는
'비번'날 오후가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 되었다.
그 날도 오전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간단한 배낭을 하나 멘 채였다.
가방에는 아내가 싸 준 간식과 정종 한 병,
종이컵이 전부였다. 버스정류장에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아버지의 산소에 가 볼 생각에서였다.
한 이 년 동안 자전거로 통학을 했고
버스에서 내려 걸어다니기도 했던 길이지만
옛날의 정취는 거의 없는 편이다.
무분별한 개발은 이 시골마을도 그냥 두지 않고 있어
작은 개천을 사이에 두고 양 쪽으로 난 계단식 논의
황금색을 향한 향연을 빼면 옛정취를 떠올리기에는 부족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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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금색에 못 미친 논들을 바라보며 옛날의 향취를 느끼고 있던 즈음
별안간 하늘이 깜깜해지며 그 일이 일어났었다.
포장된 길이었지만 별안간 앞이 깜깜해지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의 어둠에 눈이 적응되기 시작했을때는
아마 이게 세상의 마지막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몰려오고
내 아이들과 아내, 직장 일이 걱정이 되어 집과 직장으로 전화를 했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이웃 동네 친구네 집에 가서 알게 된 일은
태양폭발로 의심되는 자연현상과 도시의 마비, 사고 등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언론의 반복 보도 뿐이었다.
그 날,
친구의 차를 빌어타고 가까스로 도착한 국도는 아수라장이었다.
많은 차량이 충돌해 있거나 전복되어서 가는 길을 더디게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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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밤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마 희생자는 줄었을 것이다.
별안간 일어난 일로 당황한 운전자들이 아무 대책 없이 사고를 낸 일이 많아
희생자는 적지 않은 수였다.
그동안 달라 진 것이 있다면
전 세계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는 것이고
별안간 일어난 자연의 폭거로 인한 두려움들이다.
낮과 밤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졌지만
밤에는 문을 걸어잠그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천체간 인력이 달려졌다고도 하고
이러다가 다른 행성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동안 몇 번 정상에 가까운 햇빛을 보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암흑에 가까운 상태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야간 통행금지 정책을 펼 것이라는 말을 언론에 흘리고 있었고
언론도 이에 딴지를 걸지 않았으며 여론이 찬성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security업종의 주가가 상한가를 치는 가운데
같은 업계가 많은 수의 젊은이들을 채용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자연의 교란으로 지구의 인력이 변했다는 말과
앞으로 식품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화두가 되었다.
벌써 채소 등에 대한 매점매석이 벌어져
내 업무의 대부분도 절도, 강도 등의 범죄 예방과 진압,
매점매석 신고에 대한 대응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될 경우라면 핵발전소를 더 많이 세워야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그게 불가피한 일이라는 인식이 높다.
많은 사람이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연일 계속되는 근무로 신경이 날카로와졌고
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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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수업이 있는 딸내미의 모닝 콜 소리가
꿈속의 나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현실이 아니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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