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감시하는 것도 아니건만 '한 번 오른 업힐 코스는 절대 내리지 않는다'는 신념을 그런대로 아둥바둥 지키며 산다. 자전거 타는 일을 게을리하면 체력이며 지구력이며 떨어지게 마련이라 그런 경우엔 그런 코스들을 아예 가지 않는 방법으로 필시 신념을 깨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용의주도하게(잔머리 쪽으로 혐의를 두기도 하지만) 피한다.
나의 현재 체력은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기에 '오늘은 ○○코스를 올라 보고 싶지만 지금 체력과 컨디션으로는 어려울 거야'라는 판단 아래 '등정불가'라는 과감한 사전 처방을 내리곤 하는데 이런 코스들은 대개 지구력과 체력을 부단히 요구하는 업힐 코스들이다. 어떤 코스들은 너무 힘이 든 나머지 등정에 성공하고 나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 이전에 "비싼 돈 쳐들여 자전거 사서 이 무슨 개고생이람" 하면서 입안에서 욕지거리부터 맴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란다.
그런데 같은 업힐이라도 싱글코스를 타다 만나는 크고 작은 여러 구간 중에 성공과 실패를 밥 먹듯 되풀이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오늘은 어찌어찌 올랐는데 이틑날엔 내리고 또 다음날은 어찌어찌 또 올라가니 이런 코스의 경우는 '한 번 오른 업힐 코스는 절대 내리지 않는다'라는 신념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체력과 지구력을 요하는 외에 테크닉을 추가로 요구하기 때문에 신념을 지킬 대상에서 이런 코스들은 애초부터 제외시켰다.
본디 몸치 소질이 강한 나로선 테크닉까지 발휘해야 되는 상황이 사실 좀 부담스럽다. 잠을 덜 잤거나 몸이 피곤하다거나 아니면 요 며칠 잘 올랐다는 자만심 탓에 제대로 자세를 완벽하게 갖추지 않고 적당히 오르려 한다거나 돌출된 바위와 나무뿌리를 보며 전에 없이 더 겁을 먹는다거나 하는 등의 수많은 변수들을 짧은 순간에 모두 제어하기엔 역량이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선상에서 접하는 코스라고 생각되는데 난 이런 코스들을 일컬어 이른바 '임계점코스'라고 명명하는 바이다. 물론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니 다른 이들에겐 해당이 없는 명칭이겠지만...
거의 절반 정도의 확률로 등정에 성공하곤 했던 하나의 임계점코스에서 오늘은 위에서 내려오던 하얀 등산모를 쓴 어여쁜 아지매가 멈춰서서 구경하는 상황이라 기필코 성공해야 되겠다는 열망이 있었는데 거의 다 오를 찰나에 무당이 작두를 타듯 나무를 잘라낸 밑둥치로 앞바퀴를 올리며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울컥 드는 게 마음 같아선 며칠 날을 잡아 새벽부터 밤까지 진을 치고 연습을 거듭해 임계점코스군에서 탈락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비 오듯 흐르는 땀에 숲바람을 맞으면 이제 제법 선득하다.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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