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샥이 좋아 인터넷을 싸돌아다니며 풀샥 자전거의 이미지를 물어다 놓은 게 물경 1기가를 훨씬 넘었었건만 아들놈이 컴퓨터를 먹통을 만들며 포맷을 시키는 바람에 모조리 날리고 말았었다. 이렇게 글에 인용하다가 저작권에 걸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처음부터였지만 지금 타고 있는 풀샥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예전에 나온 올마라 트래블도 작은 편이다. 장차 내가 가장 타고 싶은 풀샥 자전거 1순위인 터너 5spot. 스탠드오버가 낮아 숏다리의 비애를 피하기에 가장 적합할 듯하다.
어릴 적엔 자전거를 접할 기회가 매우 드물었다. 그것도 자동차랍시고 검정 고무신을 포갠 사이에 지푸라기를 끼워 모래를 싣고 질질 끌고 다니는 게 장난감 오락이었고 굴렁쇠로 쓸 만한 쇠로 된 고리를 손에 쥐는 건 대단한 행운이기도 했다. 그런 환경이었으니 자전거는 실로 엄청난 문명의 산물로 비쳤다.
당시 막걸리를 배달하는 양조장의 커다란 짐 자전거라든가, 연례행사처럼 우리집을 방문해 대나무를 몇 그루씩 사서 싣고가곤 하던 대나무공예가의 짐 자전거 등이 이따금 동네에 출현했었는데 아직 청소년기였던 외삼촌들과 동네 청년들은 자전거 주인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너도나도 자전거를 탄다고 열을 올렸었다. 조그만 난 커다란 덩치의 육중한 자전거를 타기엔 엄두가 나지 않았고 때로 외삼촌이 모는 자전거의 묵직한 짐받이에 동승할 기회를 얻곤 했는데 문제는 울퉁불퉁한 시골길에서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는 덜컹거림이었다. 앞에서 자전거를 모는 외삼촌들이야 신이 나서 환호성을 올리며 페달을 밟아댔지만 짐받이에서 연신 비명을 지른 탓에 자전거라는 매커니즘에 그리 호의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전거의 무게쯤이야 거의 무시하는 편이라 그런지 에어샥 보다는 반응이 늘 정직할 듯한 코일샥에 언제나 눈이 간다.내가 장차 타고 싶은 풀샥 2순위인 산타크루즈 헤클러.뜬금없이 블릿까지 넘보지만 나이와 거꾸로 가다가 경을 칠 지도 모를 일이라 눈감다.
이러구러 세월이 흘러 마흔이 되던 해 다시 접하게 된 자전거. 근 5년여 하드테일을 타던 중 우연히 접해 본 풀샥의 느낌은 실로 대단하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처음 자그마한 요철들을 지나면서 마음 속으로 대비했던 충격들은 흡사 월척이 걸린 대낚을 굳게 잡은 손에 전해져 오는 '투두둑'하는 느낌처럼 지극히 순화되어 전해지는 것이었다. '아, 이 즐거운 왜곡은 또 뭐란 말인가?'
대한민국을 특징짓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경쟁'을 꼽는다. 이런 경쟁 사회에서 키워진 관성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여럿이 어울려 타자니 내가 예찬까지 하게 된 이 풀샥은 적어도 하드테일이 주류인 사람들 사이에선 포용되기 어렵다.
언젠가 거의 왕복 80여 킬로미터의 거리를 출퇴근하던 시절에 중랑천에서 의정부 아지매 부대들과 조우하는 바람에 라이딩에 합류하게 됐었는데 평소 같으면 웃으며 여유 있게 뒤따라갔을 내가 그녀들을 따라가느라 아주 죽는 줄 알았다. 그만 파김치가 되고 만 것이다. 당시엔 올마에 가까운 풀샥이 그 정도로 도로에서 경쟁력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은 모르고 '이거 요즘 자전거를 안 탄 것도 아니고 꽤 열심히 탄 편인데 이게 무슨 꼴이람?'하는 생각만 했었으니 내가 어지간히 둔하긴 둔한 위인인가 보다.
▲이건 아마 천재소년님의 자전거로 기억한다. 타 보고 싶은 풀샥 3순위인 니꼴라이 fr. 천재소년님의 글을 보고 싶은데 요즘 뭘 하시는지.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지만 자유를 택하기로 한 이유 중에 풀샥이 가진 진수를 맛보기 위한 의도도 있다. 요즘은 페달을 밟으며 경주마를 모는 기수처럼 풀샥이 요구하는 리듬까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돌들이 많고 패인 웅덩이들이 많은, 필시 하드테일이 가기 싫어할 만한 한적한 길들을 찾아 호젓하고 여유있는 라이딩을 즐긴다. 게다가 단거리라기엔 좀 긴 거리의 도로라이딩마저도 요즘 난 이 풀샥을 쓴다. 워낙 유유자적 다니다 보니 예전엔 터무니없이 느리게 느껴졌던 20km/h 정도의 속도가 이제 제법 빠르게 느껴지고 30km/h를 넘기면 현기증마저 나니 속도에 대한 감각마저 풀샥에 맞춰 현실적으로 변했나 보다 클클.
가끔 훌쩍 집을 나서 먼 지방으로 장거리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 때면 장농 위에 곱게 모셔둔 크로몰리 하드테일 프레임이 그리워 가슴이 뭉클하지만 마음으로 작정한 날까지 난 단지 이 품성이 유들유들한 풀샥과 함께 산천을 누빌 생각이다.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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