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으로 삶은 감자 세 알을 챙겼다. 도락산을 향해서 가던 길, 오늘따라 차도가 왠지 싫어 외진 길을 택해 가다가 밤나무가 무성한 곳에 다다르니 허구한 날 싸돌아다니면서 밤 한 톨도 안 주워온다는 마누라의 책망이 떠올라 자전거를 세우고 두어 됫박 밤을 주웠다. 문득 시장기가 돌아 모기가 극성스럽게 달려드는 밤나무숲을 벗어나 볕이 드는 길로 나앉아 삶은 감자를 베어 물었다. 초코바, 김밥, 떡, 빵, 양갱 등 그간 도시락으로 싸가던 것들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삶은 감자가 가장 맛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빛 단색의 단순함, 그러나 차분한 우아함으로 치장한 이름 모를 풀포기들 이상의 평점을 줄 생각이 없는 나의 심술기 없는 인색함을 알 리 없는 코스모스들은 곧고 길게 뻗은 길가에 드문드문 피어 잡초와 관목들 사이에서 유별난 색상으로 초가을 바람에 나긋나긋 흔들리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일찍 집을 나섰으나 밤을 줍다 보니 어느덧 해가 서산에 기울어 도락산 싱글을 타기로 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하는 수 없이 근처에 나 있는 짤막한 임도로 접어들어 시나브로 달렸다.
소풍 가는 날이면 전날부터 '행여라도 비가 내리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자다 말고 문을 열고 나와 하늘을 수없이 올려다 보았다.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여 잠들곤 했었다. 봄가을에 한 번씩 가던 소풍은 언제나 가슴이 벅차게 설레던 행사였다.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소풍을 가는 장소로 거의 매번 선택한 곳이 사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야산이었기로 소풍을 가는 날이면 지치도록 먼 거리의 학교까지 일단 등교했다가 집 가까운 곳으로 되돌아오는 꼴이었지만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이 마냥 들뜨고 좋았었다.
소풍이 없는 계절인 여름철에 이따금 소풍 기분을 내려고 혼자서 그 야산에 몇 번 갔었다. 아버님 생신에 쓰신다며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어머니의 엄명을 무엄하게 어기고 김 서너 장을 몰래 횡령한 다음, 간장에 비빈 보리밥을 둘둘 말아 싸들고 갔지만 천오백여 명의 전교생이 우글거리며 놀던 그 산엔 인적이 없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심통이 나서 돌멩이를 냅다 던진 땅거미가 몰려오던 숲에서 푸드득 날아오르는 장끼 소리에 내가 되레 뜨악 놀라 집을 향해 줄행랑을 치곤 했었다.
초로에 접어든 나이에 소풍 삼아 나섰던 홀로라이딩은 그때처럼 여전히 을씨년스러웠고 장끼 역시 서너 차례 발치 옆에서 푸드득 날아올랐지만 이제 제법 감성으로 녹일 줄 아는 을씨년스러움에 돌을 던지던 심통은 나지 않았고 놀란 장끼에 덩달아 놀라던 가슴은 대체로 평온을 유지한 채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숲길을 무덤덤하게 달리다. 자극이 없는 이런 무덤덤함도 때로 행복일지라.
십자수님의 쾌유를 빕니다.
몇 년 전, 백부님 문상을 갔던 3일 동안
불경스럽게도 때때로 자전거 생각이 간절하게 났을 정도로
자전거를 좋아하는 저이기에 올해 자전거를 접으시게 된 심정을
조금이나마 미루어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몸조리 잘 하세요.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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