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출근길

구름선비2009.10.03 09:02조회 수 816댓글 6

    • 글자 크기


하필이면 추석날 근무입니다.
근무라고 해서 아들로서의 의무, 아비로서의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식솔들을 이끌고
가까운 고향집엘 내려갔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별을 보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딸내미는
시골에 내려가서 밤이 올 때마다 별을 보는 산책을 즐겨하게 되었고
그 산책 동행으로는 거의 내가 선택되곤 합니다.

달이 밝으니 달도 보고, 별을 살피면서 숲과 산 그림자 난
외진길을 걷는 낭만을 터득했나 봅니다.

 

주변에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동네 고개에 올라서면
숲 사이로 고속도로의 불빛이 가끔씩 보입니다.
주변의 골프장 불빛만 아니면 별과 함께
또 다른 정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도권에 사는 분들이 자주 찾는 화야산 임도 밑 마을이
저의 고향입니다.
가끔은 저의 고향집 앞으로 한 무리의 라이더들이 지나가곤 하는데
나가서 말이라도 붙여 볼 생각을 갖고 다가서면
그냥 지나쳐 가기 일쑤라 대화를 나눈 사람은 몇 되지 않습니다.



추석 전날 밤을 보내고
아침에 직장으로 출근하기로 하였습니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혹시나 있을 변수를 생각해서
고향집에서 자고 출근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오래간만에 내려간 아들이 마누라와 아이만 떨구고 갔다는
아쉬움을 간직할지도 모르는 노모를 위해서 자고 출근하기로 한 것이지요.



옛날 신사용자전거로 학교를 가던 길은
포장된 곳이 4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 '촌길'이었습니다.
청평호반을 따라 유원지가 즐비하였지만
그래도 길의 상태는 '영 아닌' 그런 곳이었지요.

그 때 아침에 등교를 하는 길은 집에서 약 50분이 걸렸고
하교하는 길은 두 시간이 다 되는 곳이었습니다.
등교때는 딴힐이고, 하교때는 업힐이었다는 말입니다. ㅎㅎ

 

고향에서 그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으니
15리는 가야 같이 자전거를 타는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1년 선배도 한 명 있어서 셋이서 다녔었지요.
그 선배는 당시에는 드문 '싸이클'을 타고 다녔었는데
젊은 나이에 저 세상 사람이 되어서
동창인 같이 다니던 녀석과 만나면 그 형 얘기를 하곤 합니다.

================================================

아침 바람이 제법 찹니다.
계곡을 따라 난 길에는
물봉선이 물기를 약간 머금고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옛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봉선의 꿀을 빨던 생각이 납니다.

아스팔트로 된 좁은 길은 드라이브를 하는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가끔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있으면 속도를 줄이고 서로 눈치를 봐야하는
그런 길이지요.

계곡을 달려 청평호반에 다다랐습니다.
어제 저녁때 내려갈 때는 황혼을 지난 어스름한 어두운 하늘이 비쳐서
은빛으로 빛나는 수면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오늘 아침의 수면은 작은 파도와
이제 일기 시작하는 안개가 전부입니다.

옛날 통학길이면 내 눈썹은 안개에 젖어
'도사'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출근하는 시간은 지나서
안개가 퍼지기 때문일 겁니다.

그 때는 그 안개 때문에 자주 감기가 걸리기도 하였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텅빈 지방도를 홀로 달리느라니
나홀로 레이서가 된 기분입니다.

국도에 이르러서도 쳇증이 전혀 없는 도로는
추석날 아침의 출근이라는 무거운 마음이 전혀 들지 않게합니다.

북한강을 내려다보니
이제 조금씩 안개가 짙어지기 시작합니다.

오디오의 볼륨을 높입니다.
오늘 듣는 재즈의 선율은 더 아름답습니다.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댓글 6
  • 앗, 저도 오늘 출근했습니다..;

    사실 추석에 대해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연구소 통틀어 보안 직원들 빼고는 저 혼자 출근한 것 같고, 점심 거리 찾아서 길거리를 해메이다가 대부분의 점포가 닫은 것에 추석임을 실감했습니다.. 

    역시, 추석은 민족의 대 명절이 맞나 봅니다. 구름 선비님 일 마무리 잘 하시고 퇴근도 잘 하세요.^^

  • 참...서정적인 글입니다......

    신작로...먼지 날리는 버스 뒤를 따라 뛰어가던....통학 시절과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저런 풍경 속에서 출근한다면....하루 일의 시작이 감미로울 것 같습니다만...

    현실은...ㅎㅎㅎㅎ

  • 옛날(?) 버스에는 뒤에 창문 청소용 손잡이가 달려있었죠

    몰래 그거 잡고 한두정거장 정도는 타고 다녔습니다 ㅎㅎㅎㅎ 지금 생각하면 죽을려고 환장한 거지만요 그래도 그때 버스는 속도가 참 느렸던것 같았습니다 ㅎㅎㅎ

  • 구름선비글쓴이
    2009.10.4 20:21 댓글추천 0비추천 0
    roddick님,
    연구소에 근무하시는군요.
    저는 다행히 문을 연 식당이 있어서 거기서 민생고를 해결하였는데
    제대로 점심 식사를 못하셨겠군요.

    풀민님,
    아마 안개가 좀 더 끼었다면 풍경이 좋았을 겁니다.
    추석 잘 보내셨어요?

    쌀집잔차님,
    저는 시골이라 버스보다는 벌목한 나무를나르는 산판차,
    가을에 옥수수를 나르거나 무우등을 나르는 트럭엔 매달려 본 적이 있습니다.
     
  • 집에서 아픈몸 추스리느라 ...눈치 엄청 보다가 하루해가 졌다는 ㅋ
  • 그러고보면 구름선비님 직업도 제대로 3D업중 하나이십니다

    요즘 아이들 그 거리로 학교다니라고 하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겠지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드디어 복구했습니다. 와일드바이크 심폐소생의 변!39 Bikeholic 2019.10.27 2681
15855 야자시간에 생각해봤어요.. (주절주절) zamtungwy 2003.10.15 153
15854 야심한 시간에 남산(?) 가신 분들~~~ ^^ 진이 2003.05.21 225
15853 야심한 시각 웃어보세요. ㅋ 솔개바람 2005.09.20 303
15852 야심한 밤에 듣기 좋은 음악 존레논 - Imagine 관촌수필 2004.06.26 182
15851 야식 zoomtres 2005.11.11 189
15850 야식 zigzag 2005.11.11 394
15849 야식 한국산호랑이 2005.11.11 255
15848 야식 박공익 2005.11.11 292
15847 야식 iceman1691 2005.11.11 183
15846 야시시한 광고...위에있는 코나 자전거가... 보고픈 2004.10.06 421
15845 야시시한 광고 ㅎㅎ;; bktsys 2004.10.06 472
15844 야시시한 광고 디아블로 2004.10.06 272
15843 야생도라지님은 졸업후에??? 레이 2003.10.14 156
15842 야생.........산의크기로 보아서는 충분히 서식이 가능... sangku 2004.01.02 273
15841 야생......... Vision-3 2004.01.02 251
15840 야생 멧돼지 만난 공포 나뭇골 2005.10.31 441
15839 야생 멧돼지 인자요산 2005.10.31 317
15838 야생 멧돼지 kuzak 2005.10.31 371
15837 야생 멧돼지 hl3hhq 2005.11.01 296
15836 야밤에 중랑천으로 오십셔-_- soonsims 2003.08.03 272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