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추석날 근무입니다.
근무라고 해서 아들로서의 의무, 아비로서의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식솔들을 이끌고
가까운 고향집엘 내려갔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별을 보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딸내미는
시골에 내려가서 밤이 올 때마다 별을 보는 산책을 즐겨하게 되었고
그 산책 동행으로는 거의 내가 선택되곤 합니다.
달이 밝으니 달도 보고, 별을 살피면서 숲과 산 그림자 난
외진길을 걷는 낭만을 터득했나 봅니다.
주변에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동네 고개에 올라서면
숲 사이로 고속도로의 불빛이 가끔씩 보입니다.
주변의 골프장 불빛만 아니면 별과 함께
또 다른 정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도권에 사는 분들이 자주 찾는 화야산 임도 밑 마을이
저의 고향입니다.
가끔은 저의 고향집 앞으로 한 무리의 라이더들이 지나가곤 하는데
나가서 말이라도 붙여 볼 생각을 갖고 다가서면
그냥 지나쳐 가기 일쑤라 대화를 나눈 사람은 몇 되지 않습니다.
추석 전날 밤을 보내고
아침에 직장으로 출근하기로 하였습니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혹시나 있을 변수를 생각해서
고향집에서 자고 출근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오래간만에 내려간 아들이 마누라와 아이만 떨구고 갔다는
아쉬움을 간직할지도 모르는 노모를 위해서 자고 출근하기로 한 것이지요.
옛날 신사용자전거로 학교를 가던 길은
포장된 곳이 4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 '촌길'이었습니다.
청평호반을 따라 유원지가 즐비하였지만
그래도 길의 상태는 '영 아닌' 그런 곳이었지요.
그 때 아침에 등교를 하는 길은 집에서 약 50분이 걸렸고
하교하는 길은 두 시간이 다 되는 곳이었습니다.
등교때는 딴힐이고, 하교때는 업힐이었다는 말입니다. ㅎㅎ
고향에서 그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으니
15리는 가야 같이 자전거를 타는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1년 선배도 한 명 있어서 셋이서 다녔었지요.
그 선배는 당시에는 드문 '싸이클'을 타고 다녔었는데
젊은 나이에 저 세상 사람이 되어서
동창인 같이 다니던 녀석과 만나면 그 형 얘기를 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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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바람이 제법 찹니다.
계곡을 따라 난 길에는
물봉선이 물기를 약간 머금고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옛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봉선의 꿀을 빨던 생각이 납니다.
아스팔트로 된 좁은 길은 드라이브를 하는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가끔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있으면 속도를 줄이고 서로 눈치를 봐야하는
그런 길이지요.
계곡을 달려 청평호반에 다다랐습니다.
어제 저녁때 내려갈 때는 황혼을 지난 어스름한 어두운 하늘이 비쳐서
은빛으로 빛나는 수면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오늘 아침의 수면은 작은 파도와
이제 일기 시작하는 안개가 전부입니다.
옛날 통학길이면 내 눈썹은 안개에 젖어
'도사'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출근하는 시간은 지나서
안개가 퍼지기 때문일 겁니다.
그 때는 그 안개 때문에 자주 감기가 걸리기도 하였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텅빈 지방도를 홀로 달리느라니
나홀로 레이서가 된 기분입니다.
국도에 이르러서도 쳇증이 전혀 없는 도로는
추석날 아침의 출근이라는 무거운 마음이 전혀 들지 않게합니다.
북한강을 내려다보니
이제 조금씩 안개가 짙어지기 시작합니다.
오디오의 볼륨을 높입니다.
오늘 듣는 재즈의 선율은 더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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