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어제 저녁때 쯤의 눈발은 가슴을 오그라들게 했습니다.
어떻게들 지내시나요?
요즘 靑竹님 글이 보이는 것이
게시판이 한 결 따스해 보입니다.
며칠 전 스탐님의 글도 읽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이제야 몇 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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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직장에 출근할 때 검은 가방을 하나 가지고 다녔습니다.
동네 친구가 가방을 만드는 사람이라
저에게 특별히 하나 만들어 준 것인데
서류를 넣어 다니기에 적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류 가방이죠.
이 가방 안에 들어가는 물건들이 몇 가지가 됩니다.
우선 CD가 두 장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피스 프로그램CD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픽 프로그램CD입니다.
그 외에도 제가 만든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의 기술적인 메모를 한 노트 한 권,
참고해야 할 서류 몇 개 등입니다.
CD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고,
노트 또한 내가 만들어 준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어
급히 구원 요청이 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런 가방을 올해 초부터,
엄밀하게는 지난 해 말부터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철밥통이라는 저희 직장도 어느새
일반 회사와 비슷하게 성과 관리를 하게 되었고
그 등쌀에 근무지를 옮기고나서 부터의 일입니다.
작년 2월부터의 경쟁에서 늘 하위권이었고
누계 점수로는 꼴찌를 한 자존심에
자리를 박차고 '백의종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입직경로가 최하위이고
사실상 제도적으로 저와 같은 경로의 사람들은 진급의 한계와
업무의 한계를 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거기에 불만을 느끼지는 말아야겠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마음은 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래 전에 했던 업무는 좀 설어졌습니다.
직장에서 제일 나이가 많다보니
후배 직원들이 챙겨 주기는 하지만
젊은 직원들에게 얹혀서 간다는 생각도 좀 들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제도에도 반감이 가기는 합니다.
처음 며칠 동안
항상 들고 다니던 가방을 들지 않으니
무언가 허전했습니다.
그동안 직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후배들을 향해서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는데
가방을 내려 놓고 보니
그 홀가분함과
허무한 마음이 교차를 하는군요.
이제 점차 여러가지를 내려놓게 되겠지만
처음 내려 놓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 보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래도 적응이 되는 것을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오늘 저녁도
가방을 들지 않고 출근하렵니다.
춥지나 말아야 할 터인데~~
사진은 저희동네 '영원'의 요즘풍경입니다.
영친왕의 무덤인 영원의 침전과 비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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