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우물터에 들리신 어느분이 오늘이 월급날인데 돈은 구경도 못한다는 안타까운 푸념을 하시는바람에
갑자기 옜날 월급봉투 받던 그때가 생각이 났네요.
돌아가고 싶어도 절대로 갈 수 없는 그시절 그때가 불쑥 불쑥 그리워 지는걸보면 늙어 간다는 얘긴데..
(선배님들께는 죄송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고 즐거운 웰빙라이딩 이어가세요~~)
제가 첨으로 받은 월급이 81년도에 8만 몇 천원 정도였는데 학생으로 취업 나갔을때이니 한달 월급은 아니었던것 같고,
암튼 비료포대 종이에(누런색 질긴종이) 담겨 있었습니다.
겉봉투에는 많지도 않은 쥐꼬리 월급에서 소득세,, 갑근세.. 등 이해하기도 어려운 말들 잔뜩 써놓고 야금야금..
아주 벼룩의 간을 빼먹어요.
의료보험료니 근로자연금이니 그런건 그당시엔 없었던것 같네요.
암튼 그 첫 월급 받아서 엄마 내복 한벌과 기억도 잘 안나는데 형제들 선물을 조금씩 산것 같습니다.
월급날이 되면 회사에서 월례 진풍경이 연출됩니다.
우선 걸려오는 전화가 무지 많이 늘어납니다.
대부분 술집에서 외상값 갚으라는 전화입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정문앞에서 기다리는 이쁜 아가씨들, 우락부락한 아저씨들 제법 많았죠.
그때만 해도 카드나 핸드폰 등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술집에서 큰회사 직원들 한테는 명합에 싸인받고 외상을 주었습니다.
저는 술을 못하는지라 잘 모르지만 주당소리 듣는 사람이면 월급의 반 이상은 그리로 날라갔을 듯 하네요.
자리에 없다고 거짓전화 받아주고, 뒷문으로 도망가도록 숨겨주느라 착한 보고픈 고생 많았습니다.
저는 워낙에 착해서 월급날이면 같이 자취하는 친구들을 위해 마늘치킨 한마리 사들고 일찍 집에 들어 갔을겁니다.ㅎ
처음 입사해서 2년정도는 회사에서 숙식하다가 또 2년정도를 친구들과 차취를 했었는데
그땐 세상에 친구들 밖에 없는줄 알았습니다.
돈 없는 불쌍한 학생들 참 많이 사 먹였는데, 이넘들 이제 좀 갚을때도 됐을터인뎅..
나중에 결혼후에는 이날이 공식적으로 우리가족 삼겹살 먹는날이 되었고요.
아~ 참 한가지가 더 있군요.
술값에 쪼들리는 주당들이 써먹는 방법인데 급여담당 아가씨한테 초콜릿 들고가서 빈 봉투를 얻어와서는
타자쳐서 조작하는것ㅎㅎ
제가 워낙에 아가씨들한테 인기가 좋왔는지라 봉투 얻어다가 비싸게 팔아 먹었습니다. 믿거나말거나..
암튼 이게 있어서 대형 가정불화 많이 막았습니다.
글구 월급날 부서단위로 현금 수령해오면 돈이 한포대는 족히 되는데 이거 각각 나누려면 한나절은 걸립니다.
백원, 십원, 일원.. 동전까지 나누려면 머리에 쥐나죠
나중에 백원 이하는 우수리로 떼어서 껌사서 돌렸는데(나중엔 불우이웃돕기) 이거 제 아이디어인건 아시죠?
ㅎㅎ늘어 놓다보니 지 자랑만 합니다. 팔불출..
어쨌든 이시절엔 돈 벌어오는 가장의 어깨가 이날만큼은 으쓱해 질 수 있었습니다.
호랑이띠 연상의여인 보고픈걸도 이날은 순한 양이 됩니다.
쥐꼬리 월급봉투지만 두손으로 받으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잊지 받았는데..
아! 모야 정말~~
어느날 갑자기 세상이 막 변하면서 가장으로서 권위를 인정받던 한달중의 단 하루
그 하루마져 이젠 돌아가시고 말았네요. 오호통재라.
어제까지 볼펜&타자기 세상이었는데 어느날 출근하니 컴퓨터가 갑자기 툭 튀어 나오더니,
하루가 다르게 온라인에. 신용카드까지,
눈 돌아가고 숨막히고 어지럼증 생길 정도로 세상은 마구 변해갔습니다.
처음에는 월급은 통장으로 들어갔지만 월급봉투는 주더군요. 근데 그거 집에 가져가봐야 집사람이 두손으로
받을일도, 인사를 전할일도 없습니다. 완전 앙꼬없는 찐빵인데..
그마져도 어느때 부터인가 없어지고, 삥땅은커녕 동전하나 구경 못해본지가 십 수년도 넘은것 같습니다.
에구 붕쌍한 신세..
빵빵한(입김으로 불어서) 월급봉투 가슴속에 품고는
마늘통닭 한마리로 골목길에 냄새 진동시키며 어깨에 힘주고 대문 두드리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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