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립니다.
사막 기후나 다름없는 뉴델리에서 비는 언제나 좋은 소식이지요.
제 차가 깡통차이기는 하지만
천장을 통해 들려오는 빗방울 소리가 유난히 요란하더군요.
아니, 이건 비가 아니라 우박입니다.
한 겨울이라 해도 영상 7도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는 이곳에서
2월의 우박은 분명 기현상입니다.
겨우내 심한 안개와 매연으로 눈이 다 따가울 지경이더니
2월들면서 한결 공기도 깨끗해 지고
온도도 쾌적한 것이 바야흐로 최고의 계절이 찾아 왔습니다.
일 주일 새 두번째 비도 내리고
오래 산 사람들 말에 의하면 3월 중순이 되면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한다네요.
일부 나무들은 본격적인 더위를 앞에 두고 낙엽을 떨구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박을 보니 3-4년 전 독일 라이프찌히 지역을 여행할 때 겪었던
놀라운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6월이었는데 그쪽 사람들 표현대로 '테니스 공' 만한 우박이 쏟아지더군요.
튼튼하다는 독일 자동차도 유리창이 다 깨지고
차체에는 곡괭이로 무수히 찍힌 듯한 깊은 자국이 남고.......
우박이 멈추고 거리에 나와 보니
마치 짱돌 해변처럼 얼음 덩어리들이 수북히 쌓여 있더군요.
참으로 무서운 경험이었습니다.
엊그제가 추석이더니
설이 낼로 다가왔습니다.
나이가 먹는 다는 것은 정서가 메말라 지는 것과 동의어 인듯 합니다.
어릴 적 키우턴 염소가 죽었을 때
식음전폐, 골방에 틀어 박혀 울던 기억이 새로운데
엊그제 한국인이 고용한 현지인 운전기사가 사고로 죽었어도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못하겠더군요.
그토록 마음 설레던
손꼽아 기다리던 설이 코앞인데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고향 친구들 얼굴이
돌아가신 어머님의 말씀이 어렴풋이 떠오르긴 합니다.
"늘 네 몫은 챙겨야 한다"
유순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막내 아들의 앞날이 걱정스러우셨던 것이지요.
"네 인생이니 알아서 살아라"
90순을 한참 넘어 100세를 바라보시는 아버님 말씀입니다.
제가 방학때 집에 와서 정오가 넘도록 잠을 자고 눈을 비비며 나오는 제게
재수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녀도
아버님은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못마땅한 투의 이 말씀 외엔....
참 이상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라면서 부모님이나 어른들로 부터 무심코 들은 말들이
하나 하나 쌓이면서 평생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이 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과연 나는 내 자식들에게 무심코 무슨 말을 던지고 있는지 되돌아 봅니다.
설을 앞두고 이정도 사색에 빠질 정도면
제가 아직 감정이 메말라 버릴 전도로 완전히 늙어 버리진 않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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