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를 보내고 하루를 보내니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힘없이 자전거를 끌고 나가니
움이 트고 있는 가지에 매달린, 나뭇가지가 투영된 빗방울이 나의 눈물처럼 매달려 있었다.
"청죽인가? 나 많이 아파." 작년에 세상에 둘도 없던 죽마고우이자 술고래였던 공무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더 이상 술을 드시면 안 됩니다" 벌써 십몇 년 전부터 녀석은 의사의 경고도 무시하고 아픈 옆구리에 손을 짚고 걸음을 걷는 상태로 늘 술을 찾았다. 오랜 세월 술에 원한이 사무친 나였기에 술로 사는 녀석을 말리느라 얼마나 다투었던가. "아프니까 자네 얼굴이 왜 그렇게 보고 싶은지 모르겠어." 그런데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는 술에 절어 있었다. '이 친구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게야." 언젠가 인연에 관한 글을 썼었다. 세상을 살며 만난 이런저런 인연들이 많았다. 좋은 인연도 있고 나쁜 인연도 있었지만 대체로 마음 깊이 상처를 받는 쪽은 좋은 인연이었다. '아, 인연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언젠가부터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일이 무서워졌다. 그러나 부모, 형제, 죽마고우들을 비롯한 질기고 깊은 인연들에 내가 상처를 받기 이전에 내가 과연 그들에게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으며 상처를 준 일이 없었던가를 생각하면 늘 회의적이었다. 그런 게 늘 가슴이 아팠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멀어진 그 인연들을 과연 내가 죽기 전에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늘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번민을 했었다. 소원해진 인연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세월이 벌써 십여 년을 넘게 덧없이 흘러왔던 것이다. 비록 휴대전화는 있었으나 세상을 등지다시피 사는 내겐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어느 전화든 거의 받지 않았고 거는 일은 더구나 없었다. 아는 교수님과 갑장님과 나, 이렇게 셋이 어울려 라이딩을 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어쩐지 꼭 받아야 할 전화 같다' 하는 생각이 전류처럼 머릿속을 강하게 흘렀다. "여보세요?" "나야, 동일이. 어쩐 일인가? 자네가 전화를 다 받누만." "응. 어쩐지 받아야 될 전화 같기에 받았어. 정말 반갑네. 핫핫핫." 전화를 건 친구 역시 죽마고우로 늘 같이 붙어다니며 어울리던 나를 포함한 다섯 단짝친구들 중 하나인 친구였다. 크게 웃으며 대답을 했는데 어쩐지 친구의 목소리가 어둡다. "주영이 말야." "응? 주영이가 왜?" "위독해.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데 의식이 없구만." 어떻게 자전거를 탔는지 경황도 없이 집으로 돌아와서 그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떤 상태지?" "응. 의사 말로는 한 시간을 넘기기 어렵대." 그러나 불과 30분도 안 되어 전화벨이 울렸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기를 드니 비통한 친구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야, 주영이 갔다." "아, 이런..이렇게 보내면 안 되는데. 난 어떡하라고." 우리 둘은 서로 말 한 마디 못하고 수화기를 들고 계속 울기만 했다. 딸아이가 놀랐는지 날 진정시키려 냉수를 떠오고 등을 토닥인다. 결국 세상에 둘도 없던 죽마고우인 그녀석과 마주보면서 말 한 마디 못 나누고 원통하고 허무하게 보내고 말았다. 부평에 있는 병원으로 뛰어간들 이미 늦었다. 간경화로 생을 마친 친구를 화장해서 납골당에 안치시켰다. 하늘을 보니 허공은 여전히 투명했고 창공은 푸르렀다. "왜 이렇게 날씨가 화창하누." "그러게." 부평역에서 전철을 타고 의정부 회룡역에서 내려 꿈결 속을 헤매듯 허우적거리며 집을 향해 아주 느린 걸음을 걸었다. 늦은 오후의 석양이 까슬까슬해진 눈을 후볐다. 봄비 속에 나가 보니 자연은 여전히 윤회를 거듭하는데 사람의 삶이라는 게 참 덧없고 허망하고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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