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죽마고우를 떠나보냈습니다.

靑竹2010.02.25 23:49조회 수 1476댓글 23

    • 글자 크기


                                  

                친구를 보내고 하루를 보내니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힘없이 자전거를 끌고 나가니

            움이 트고 있는 가지에 매달린, 나뭇가지가 투영된 빗방울이 나의 눈물처럼 매달려 있었다.

                  

 

 

"청죽인가? 나 많이 아파."

 

작년에 세상에 둘도 없던 죽마고우이자

술고래였던 공무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더 이상 술을 드시면 안 됩니다"

 

벌써 십몇 년 전부터 녀석은 의사의 경고도 무시하고

아픈 옆구리에 손을 짚고 걸음을 걷는 상태로 늘 술을 찾았다.

오랜 세월 술에 원한이 사무친 나였기에

술로 사는 녀석을 말리느라 얼마나 다투었던가.

 

 

"아프니까 자네 얼굴이 왜 그렇게 보고 싶은지 모르겠어."

 

그런데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는 술에 절어 있었다.

 

'이 친구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게야."

 

 

언젠가 인연에 관한 글을 썼었다.

세상을 살며 만난 이런저런 인연들이 많았다.

좋은 인연도 있고 나쁜 인연도 있었지만

대체로 마음 깊이 상처를 받는 쪽은 좋은 인연이었다.

 

'아, 인연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언젠가부터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일이 무서워졌다.

그러나 부모, 형제, 죽마고우들을 비롯한 질기고 깊은 인연들에

내가 상처를 받기 이전에 내가 과연 그들에게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으며

상처를 준 일이 없었던가를 생각하면 늘 회의적이었다.

그런 게 늘 가슴이 아팠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멀어진 그 인연들을

과연 내가 죽기 전에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늘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번민을 했었다.

소원해진 인연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세월이

벌써 십여 년을 넘게 덧없이 흘러왔던 것이다.

비록 휴대전화는 있었으나

세상을 등지다시피 사는 내겐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어느 전화든 거의 받지 않았고 거는 일은 더구나 없었다.

 

아는 교수님과 갑장님과 나, 이렇게 셋이 어울려

라이딩을 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어쩐지 꼭 받아야 할 전화 같다'

 

하는 생각이 전류처럼 머릿속을 강하게 흘렀다.

 

 

"여보세요?"

 

"나야, 동일이. 어쩐 일인가? 자네가 전화를 다 받누만."

 

"응. 어쩐지 받아야 될 전화 같기에 받았어. 정말 반갑네. 핫핫핫."

 

 

전화를 건 친구 역시 죽마고우로 늘 같이 붙어다니며 어울리던

나를 포함한  다섯 단짝친구들 중 하나인 친구였다.

크게 웃으며 대답을 했는데 어쩐지 친구의 목소리가 어둡다.

 

 

"주영이 말야."

 

"응? 주영이가 왜?"

 

"위독해.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데 의식이 없구만."

 

 

어떻게 자전거를 탔는지 경황도 없이 집으로 돌아와서

그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떤 상태지?"

 

"응. 의사 말로는 한 시간을 넘기기 어렵대."

 

 

그러나 불과 30분도 안 되어 전화벨이 울렸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기를 드니 비통한 친구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야, 주영이 갔다."

 

"아, 이런..이렇게 보내면 안 되는데. 난 어떡하라고."

 

우리 둘은 서로 말 한 마디 못하고 수화기를 들고 계속 울기만 했다.

딸아이가 놀랐는지 날 진정시키려 냉수를 떠오고 등을 토닥인다.

 

결국 세상에 둘도 없던 죽마고우인 그녀석과

마주보면서 말 한 마디 못 나누고 원통하고 허무하게 보내고 말았다.

 

부평에 있는 병원으로 뛰어간들 이미 늦었다.

간경화로 생을 마친 친구를 화장해서 납골당에 안치시켰다.

하늘을 보니 허공은 여전히 투명했고 창공은 푸르렀다.

 

"왜 이렇게 날씨가 화창하누."

 

"그러게."

 

부평역에서 전철을 타고 의정부 회룡역에서 내려

꿈결 속을 헤매듯 허우적거리며 집을 향해 아주 느린 걸음을 걸었다.

늦은 오후의 석양이 까슬까슬해진 눈을 후볐다.

 

 

봄비 속에 나가 보니 자연은 여전히 윤회를 거듭하는데

사람의 삶이라는 게 참 덧없고 허망하고 슬프네요.

 

 

 

 

 

 

 

 

 

 

 



    • 글자 크기
당뇨가 무섭다면, 지금 당장… (by 바보이반) 혹시 건축관련 단열 문제 잘 아시는분 계시나요? (by rampkiss)

댓글 달기

댓글 23
  • 땅속에서나마 친구들의 애도를 듣을 수 있다면 헛된 삶을 사신분은 아닐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아직 친구분들을 떠나보내실만한 연배가 아니신데 안타깝습니다. 고인의 명복과 평안을 빕니다.
  •  깊은 친구의 우정.

    저 또한 친구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나니 나자신이 작아 지는모습이 한때는 왔습니다.

    마음의 상처 많으시겠습니다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저도 이제 죽음이란 단어가 이제는 그렇게 어색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안타깝네요.....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뭐라...드릴 말씀이 없네요.....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죽음은 언젠가는 다가오는 것이겠지만

    막상 대하면 그 슬픔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겠지요.

    청죽님의 글을 읽고 저또한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반성하고 곱씹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비옵니다.

  • 이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ㅉㅉ

     

     

    저도 어제 문자 한통을 받았습니다.  "송림고 4기 XXX 오늘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친구의 명복을 빌어줍시다."

    동문회 회장으로부터 온 문자였지요.

     

    저와는 그리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전혀 만남이 없었지만...이름과 얼굴은 기억 하겠더군요.

     

    고등학교 동창들이 지금 몇이나 갔는지 모르지만... 저도 그다지 건강한 편이 되질 못해놔서 조심스러워집니다.

  • 마음속에서나 현실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한 이별의 공허감이란 참으로 오래도록 가더군요.

    그것도 가까운 친구분과 이별이시니 애잔하심이야 형언키 어려운 일이겠지만

    힘 내시라고 말씀 드릴 것 밖에 없군요.

     

    고인분의 명복을 빕니다....▶◀

  • 그제

    딸아이 친구를 보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퍼서  누구에게도  말안하고 있었는데

    청죽님 글읽고  처음  말합니다  ~

    이제 겨우  삼십인데  딸아이를 남기고 어떻게 눈을 감고 발길이 떨어졌나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퍼서

    우울 하였었는데  청죽님은 친구분을 보내셨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고인의 명복을 빌며... 청죽님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람은 나올 때는 순서가 정해져 있지만 갈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건강해서 천수를 다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 또한 자전거를 타기 전까지는 얼마나 비실거렸는지 모르지만...

    (그 전에 한 6개월 가량 마라톤 뛴다고 깝죽대다가 죽을뻔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나서야 건강해진거 같습니다.

     

    사람은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지요.

    청죽님께서도 마음 추스리시고 항상 기쁜 일... 좋은 일만 있으시길 빕니다.

  •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리며, 앞으로는 밝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게 삶일 지언대 나 자신도 알차게 살고 있는지 회의를 많이 갖게 되더군요.

    항상 감사하고는 살지만 조금은 모자라는 삶이 되지 않는 듯 합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세월이 흘러 갈수록...

    주위에 살던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지더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아~~ 인생은  그렇게 물같이 흘러 그자리로 되돌아 가는까닭에

    우리는 존재의 가치를 느끼며 살아가는거 겠지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사람의 삶도 자연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면 모든 욕망이 부질없는데..

    자꾸 까먹고 살다가 먼저 가신 분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 문득 다시 깨닫고 부끄러워집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 전 댓글 안달랍니다....
  • 가까운 사람은 보내고 나면 후회가 되는 법이지요.

    마음이 아프시겠습니다.
  • 아침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찔끔.

    왜이리 감상적인지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드디어 복구했습니다. 와일드바이크 심폐소생의 변!39 Bikeholic 2019.10.27 3050
183716 자전거계의 조중동...3 xtr77 2010.02.27 1607
183715 왈바 여러분 180이나 200미리 앞샥구해보려고하는데 마짱3세 2010.02.26 917
183714 오베아 오르카 2008/2009년 시트튜브상단파손 사례수집.7 paragon 2010.02.26 2029
183713 고맙다.6 뽀 스 2010.02.26 1107
183712 오랫만에 다시 찿아와 보니...2 easymax 2010.02.26 1083
183711 당뇨가 무섭다면, 지금 당장…1 바보이반 2010.02.26 1213
죽마고우를 떠나보냈습니다.23 靑竹 2010.02.25 1476
183709 혹시 건축관련 단열 문제 잘 아시는분 계시나요?1 rampkiss 2010.02.25 1039
183708 신문을 안본지..1 우현 2010.02.24 1037
183707 인라인 도로 유감2 산아지랑이 2010.02.24 1118
183706 전녀오크와 유재순씨의 통화 녹취록2 바보이반 2010.02.23 1356
183705 故배삼룡씨를 추모하며...7 bluebird 2010.02.23 1104
183704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15 목수 2010.02.22 1669
183703 오늘 제목은--->>> 4,1,1,2,3,4,3,2((뭘까요?)5 십자수 2010.02.22 1161
183702 토요일 백양산 펜텀 코스 ;;; 후기 <사진>.3 euijawang 2010.02.20 1131
183701 일 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16 구름선비 2010.02.20 1585
183700 면회 준비11 산아지랑이 2010.02.19 1241
183699 갑작스런 옆지기의 사진이야기...둘째딸 태권도관련7 선인 2010.02.19 1195
183698 핸드폰 벨소리 몇개 올려 봅니다.2 모나코 2010.02.19 1154
183697 코펜하겐 자전거 바퀴...2 stumpjumper 2010.02.18 1438
첨부 (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