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하나 넘어서 낚시터를 지나고
고목나무가 있는 정자를 끼고 냇물을 따라 오르면 작은 절이 하나 있습니다.
전에는 잣나무 숲과 밤나무가 많은 좁은 길을 따라 오르는 정취가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공사로 파헤쳐 져서 옛날의 아름다움은 반감된 상태입니다.
그래도 냇물은 적은 양이지만 물이 항상 흐르고
가끔은 물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는 그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복수초 군락에 사진을 찍으러 갔던 곳입니다.
절은 시간이 갈 수록 점점 커져갑니다.
처음에는 양옥처럼 생긴 절 답지 않은 곳이었지만
지금은 대웅전도 짓고 천탑, 천불도 있는 그런 절이 되었습니다.
그 절 옆으로 흐르는 작은 냇물은 항상 물이 맑고 시원해서
여름이면 냇물을 찾아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곳입니다.
냇물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냇물 옆에 자그마한 약수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약수터라고해야 개울 옆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을 받고자 바위를 두어 뼘 정도를 판 것이 전부이지만
거기 약수는 시원하고 물 맛이 좋다는 것을 와 본 사람만 아는 곳이죠..
오늘 오래간만에 자전거를 타면서 거기 약수터엘 가 봤습니다.
어느 집안의 산소인지 산소를 가꾸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
임도 비슷한 길에서 보면 절이 내려다 보이고
그 절 옆의 냇물과 약수터 가는 작은 오솔길이 보입니다.
절의 옆 면, 그러니까 냇물과 절의 경계엔 볼쌍사나운 시멘트 담장이 둘러쳐져 있지만
약수터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단풍나무와 고로쇠나무, 그리고 잣나무의 뿌리를 밟고
내려가야 합니다.
땀이 나기 시작했고 고글에는 벌써 안개가 자욱한 즈음이라
길에서 개울로, 개울가 약수터로 가는 발걸음은 희망에 가득찹니다.
절의 신자들 보다는 일반인이 더 많이 오는 것 같은 약수터엔
인적이 없습니다.
작은 시냇물이 떨어지면서 나는 졸절거리는 소리와
새소리가 전부입니다.
소나무인지, 잣나무인지 침엽수의 판자를 교차하여 만든 약수터의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 봅니다.
물의 양이 많지 않습니다.
깨끗해 보이는 청색 바가지를 들고 샘물을 다시 들여다 봅니다.
샘물 속은 고요 그 자체이고
괴어 있되 넘치지 않는 평화가 있습니다.
남들처럼 바가지를 물에 넣어 가볍게 윗 쪽을 젓다가 멈춥니다.
'맨 위에 있는 물'인데
그 물을 퍼서 밖으로 던지려는 내 행동이 어딘가 모자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버리려던 동작을 멈추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들처럼 바닥에 던지면서 생각했습니다.
괴어 있는 맑은 물을 퍼서 바닥에 던지는 것은
혹시 괴어 있는 물의 표면에 무엇이 있거나 바가지를 믿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맑은 샘물이라도 그 푸는 도구에 대한 불신이
맑은 샘물, 그것도 맨 위에 고이 떠 있는 물을 퍼서 던지게 하는 것입니다.
바가지 보다 깨끗하지도 않고
세속에 얽매여서 더럽기까지 한 목을 위하여
꺠끗한 샘물을 퍼서 던지는 것이지요.
손은 물을 퍼서 던지는데 익숙해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만은 깨끗하다고,
나만은 깨끗해야 된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물을 한 번 떠서 던지고는
다시는 던질 염치가 없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물이 흔들리지 않게 듬뿍 뜹니다.
한 번 던져 버린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듬뿍 뜬 한 바가지의 물을 다 마십니다.
언덕을 올라오면서 몰려왔던 갈증이 한결 덜할 즈음
투박한 솜씨로 뚜껑을 만들어 덮은 사람의 손길과
먼저 샘물의 길을 흩트리지 않고 바위를 쪼아 내려갔던 손길을 생각합니다.
꺠끗하지 못한 목구멍을 위해 바가지를 의심하고
맨 위에 떠 있는 샘물을 퍼서 버린 내 행동을 곱씹습니다.
사진은 으름덩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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