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여름을 달리고 있습니다.
며칠전만 해도 내복을 입고 밤이슬을 맞았는데
하루 이틀 사이에 봄은 간데 없고
한여름인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 어떤 것은 이루었고
또 어떤 것은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습니다.
노루귀를 찍었고, 복수초도 찍었으며
얼레지를 찍는 것 까지는 성공하였는데
배꽃과 복숭아 꽃을 찍을 일이 남았습니다.
배꽃은 잠시 시간을 내서 찍었지만
뭔가 부족한 생각이 들게하였습니다.
교대근무를 하는 터라 시간이 남들같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무료한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오줌누고 아래 볼 시간도 없는 일상입니다.
사무실 밖, 역과 연하여 있는 연두색 철망 가에 민들레가 한창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오직 자기의 갈 길만을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오가지만
봄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을 민들레는
봄인지 여름인지 모를 날씨에 그의 소임을 다하기에 바쁜 듯 합니다.
녹색 휀스에 때가 묻었건 그 피어있는 곳이 공사에서 나온 나쁜 토양이건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노란 색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가는 봄이 아쉽습니다.
며칠 전 옷깃을 여미며 길가에 서 있을 때에
달빛인지 아니면 주변 아파트의 보안등 빛인지 모를 희미한 빛에 유난히 빛나던
조팝나무의 꽃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군락지어 피어났을 피나물의 노란 색도 마주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오늘은 연 사흘 낮 근무라 꼼짝 못하고 빨리가는 봄을 놓칠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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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곳,
후배가 방치되었을지도 모르는 오토바이를 살펴보는 사이
주머니 속에 있던 카메라를 꺼냅니다.
설마 이런 것을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짧은 시간이지만 셔터를 누릅니다.
앞에 초점이 맞았군요.
이번에는 오른 쪽,
왼쪽에 촛점이 맞고~~
젊은 연인이 허락되지 않은 도둑 데이트를 하듯
내 주변에 있는 봄은 그렇게 가는 듯도 하여
별안간 찾아 온 여름날씨보다 더 큰 갈증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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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근무하는 곳
전철역 바로 옆에 있는 이 아파트는 벽면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무실 뒷문을 열고 내다보면
오늘 날씨처럼 벽면의 그림은 여름입니다.
다른 철에 본 그림은 무덤덤하였는데
오늘 보니 생기가 넘치는 듯 합니다.
봄을 이대로 여의기는 싫어서 특단의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어차피 가는 길에 잠시 짬을 내기로 합니다.
관내는 전철역과 아파트 단지와 과수원, 채소단지의 비닐하우스가 산재한 곳이라
어디로 가던지 과수원을 만날 수 있는 잇점이 있습니다.
특단의 방법중 하나는 내가 운전해서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후배직원에게 십분만 여유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전성기는 지나 버린 복숭아과수원,
그 곳이 가고 싶은 곳입니다.
전에는 비가 오거나, 카메라가 없거나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 갔던 곳이지만
더 늦기 전에 오늘은 가는 봄 마지막 숙제를 하고 싶은 것이지요.
복숭아 농장입니다.
이미 전성기를 지낸 꽃잎은 시들시들합니다.
똑딱이라면 어떻습니까.
앞에는 마늘이 자라고, 그 뒤로 푸른 풀 위로 복숭아 나무들이 시들은 꽃잎을 이고
가을의 풍성한 결실을 다짐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한창 꽃이 필 시기에 두억시니같이 다가 온
맹추위에 놀랐을 터,
가까이 또는 멀리서 꽃잎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죠.
후배에게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더 시간을 끌 염치와 소재가 부족할수록
눈은 끈적이며 놓친 봄,
잃어버린 복숭아의 꽃잎처럼 늘어집니다.
숙제를 마쳐야되겠다는 조바심이
숙고하면서 사진을 찍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고
그것마져도 감사해야 하는 마음이
가고있는 봄,
이미 가버렸을 지도 모르는 봄을 붙잡고 늘어지는 마음과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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