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자연, 달, 그리고 자전거.
풀샥이냐 하드테일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한다는 건 아마도 두 기종을 모두 장만하기가 여의치 않은 경제 사정 때문일 확률이 높다. 풀샥 자전거를 워낙 좋아해서 먼지가 풀풀 날리는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눈독을 들이곤 한다.
크로몰리 하드테일 자전거를 꾸미고 나서 1년여인가 열심히 도로 라이딩 위주로 누비다가 불현듯 싱글 코스에서 안정감을 주는 풀샥이 그리워졌고 산을 주로 타고 싶어지는 바람에 부속을 모두 풀샥으로 옮기고 이 크로몰리 프레임을 장롱 위에 얹어 두었었는데 그게 벌써 2년쯤 되었나 보다.
▲52년생이신 디지털 님. 280랠리에 참가, 26시간 대의 엄청난 기록으로 13위를 차지하는 무시무시한 체력의 소유자시다. "같이 갑시다 청죽님." "네? 아이고, 싫습니다. " "왜요?" "제가 어려서 무슨 힘을 쓰나요? 제가 디지털님 나이가 되면 한 번 나갈까 합니다." "핫핫핫" 하여간 부러운 분이다.
어려서부터 한강은 내게 많은 추억을 안겨 주었다. 30년을 살던 서울을 떠나 의정부로 이사온 지 이제 십 년이 다 되었다. 의정부에서 한강까지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어려서는 전설이었고 자라서는 추억이었던 한강이 이따금씩 보고 싶어서 한강을 자주 다녀오곤 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한강에 다녀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드는가 싶더니 이제 가 본 지도 벌써 한 해 하고도 반 년은 더 지난 것 같다. 뭐 홀로라이딩이라 풀샥으로 다녀도 상관은 없지만 체력 소모도 그렇고 시간이 좀 많이 걸린다는 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한강이 더할 수 없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다시 크로몰리를 장롱 위에서 내려 꾸몄다. 역시 풀샥에 견주어 보면 같은 힘으로 페달링을 할 경우 대략 4~5km/h 정도 평속이 더 나오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산악지대의 울퉁불퉁한 노면의 정보를 내게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즐거운 왜곡을 선물했던 올마운틴에 길들여졌던 탓에 아무 생각 없이 작은 요철을 보고도 그냥 안장에 앉아서 달리다가 '탕'하고 엉덩이에 전해져 오는 강한 충격에 화들짝 놀라곤 한다.
야심한 밤, 중랑천을 달리면서 사색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첫째, 저속일 것. 둘째, 어느 정도 고단 기어일 것이 그것인데 너무 저단으로 놓으면 페달링을 하는 발놀림이 바빠 자칫 산만해지기 때문이다. 한여름일지라도 중랑천의 야간 라이딩은 언제나 시원했다. 요 며칠 그렇게도 무던히 쏘다녔던 중랑천의 호젓한 밤길을 달리노라니 당시에 느꼈던 감각이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드테일의 마지막 선택이라 생각하는 이 크로몰리 자전거와의 해후는 가끔 '내가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닐까?'하던 생각들이 기우였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마흔 살에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느꼈던 벅찼던 감동과 열정 가득했던 시절들의 세세한 추억이며 느낌들이 이 쫄깃쫄깃하고 날렵하게 생긴 크로몰리 자전거로 중랑천의 밤길을 달리면서 다시 새록새록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반갑다. 크로몰리야.
많이 그리웠단다.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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